밤 10시. 빌딩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비상등을 킨 차가 즐비한 왕복 8차선 도로, 무려 6개 차선을 막고 선 차들 사이를 비집고 아이들이 제각기 총총걸음을 걸으며 차에 탄다. 총 1000여 개 학원이 밀집한 이곳. 바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학원 수업이 종료되는 시간의 풍경이다. 대치동 주차 민원은 매월 400여 건에 이를 정도로 구청에 쏟아진다. 그래도 학부모들은 내쫓기 어렵다. 강남구는 수서경찰서와 협의해 학원·학부모 차량 임시주차 허용구간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결국 부모 이기는 당국은 없다.

‘10 to 10’(텐 투 텐). 대치동에선 흔히 쓰이는 ‘은어’ 중 하나다. 2010년을 전후해 대치동 학원가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텐 투 텐'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몸도 축나고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주변의 우려가 있을지언정, 학부모들의 열정을 꺾을 순 없다. 원장 특강→인터넷 강의를 통한 개념 정립→문제 풀기→수업 조교들의 1:1 풀이 등으로 구성된다. 방학 3주 수업에 수백만 원을 부르지만, 점심 저녁 고급 도시락까지 제공하는 이 시스템을 포기할 부모는 없다.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학원은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다.

▲ 서울 대치동 학원가. ⓒ 연합뉴스
▲ 서울 대치동 학원가. ⓒ 연합뉴스
이런 유난을 떠는 건 결국 명문대 진학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학벌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선 여전히 학벌의 기제가 작동한다. 그걸 몸소 겪고 있는 엄마 아빠들이 ‘내 새끼 교육’을 그리 쉬이 포기할 리 없다. 대치동 학원 불이 꺼질 수 없는 이유다.

2022년 대입 개편안이 8월 말에 발표된다. 현행 정시모집(수능 위주) 비율 23.8%를 4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수시를 통해 학생 선발의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했지만, “재수생 양성 제도"라는 비아냥만 남긴 채 결국 정시로 회귀하는 셈이다. 중학생이 대치동에서 고 1, 2 수학을 선행학습을 하는 건 그만큼 정시로 갈 수 있는 문이 좁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낙오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입 제도가 갈팡질팡하면서 망가진 과목 중 하나가 수학이다. 제7차 교육과정(2002학년~2008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생) 인문계 학생들은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 경제학과로 진학한 학생들은 낭패를 봤다. 경제학과에서 중요한 미적분을 모르는 학생들을 놓고 가르칠 수 없어 다시 학원으로 돌아오는 촌극이 벌어지고 나자 8차 교육과정에서 이를 부활시켰다.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였지만, 학생들만 실험용 쥐가 돼버린 셈이 됐다.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대입 제도가 바뀌면 ‘대치동 학원’은 1주일도 안 돼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놓는다. 엄마들은 잘 차려진 밥상에 돈을 지급하고 밥상을 통째로 사들인다. 대입 제도가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대치동만 노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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