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댐 붕괴사고를 둘러싸고 시민사회가 한국 정부와 기업에 근본 책임을 제기했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댐 사고 공동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시민사회TF는 이날 “이번 댐 사고는 단순재해가 아니라 대규모 개발을 추진할 때 고려할 절차를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인재”라고 주장했다. 공사 계획 때부터 공사, 사고, 사후 대응까지 한국정부와 한국기업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라오스 세피안 세남노이 댐 사고 공동대응 TF를 꾸렸다고 밝혔다. 사진=김예리 기자
▲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라오스 세피안 세남노이 댐 사고 공동대응 TF를 꾸렸다고 밝혔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사는 지난달 23일,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주에 있는 세피안 세남노이 수력발전댐의 보조댐이 무너지면서 벌어졌다. 이 사고로 보조댐 아래 자리한 13개 마을이 수몰됐다. 8월5일 기준 라오스 정부는 34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실종했다고 밝혔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단체들은 현재 700여명이 실종됐으며 이들 모두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이 댐은 SK건설이 짓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이 사업에 공적개발원조(ODA) 기금을 지원했다.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에서 최초로 955억원을 지원한 민관협력사업으로,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 태국전력공사 자회사와 라오스 국영발전회사가 합작했다.

시민사회TF는 먼저 사고가 난 현재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이 사고 원인을 서로 다르게 설명하며 책임을 떠넘긴다고 했다. SK건설은 집중호우로 댐 일부가 ‘유실’돼 사고를 불렀다고 주장하는 반면, 서부발전은 지반이 꺼지며 댐이 ‘붕괴’했다고 주장한다. 시민사회TF는 “‘유실’이면 운영 문제이고, ‘붕괴’라면 설계나 시공이 문제가 된다. 각각 시공과 운영을 맡은 SK건설과 서부발전이 서로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는 “연구자들은 부실한 시공과 운영이 모두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지역에 내린 폭우가 2009년보다 적었고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부실공사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3일 전 댐 안전에 이상을 발견하고도 대응하지 못했고 △유실이 시작된 뒤 비상방류를 6시간이나 지체했기에 운영도 허술했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라오스 에너지광산부 감마니 인티라스 장관도 지난달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아마도 보조댐에 금이 간 상태였을 것이고 이 틈으로 물이 새 댐을 무너뜨릴 만큼 큰 구멍이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 뉴욕타임스 7월28일 라오스 댐 사고 보도 영상 갈무리
▲ 뉴욕타임스 7월28일 라오스 댐 사고 보도 영상 갈무리

이강준 이사는 “시공기간 단축이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SK건설은 지난해 3월 당초 계획보다 4개월 앞당겨 물을 채우는 작업을 실시했으며,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업은 시공사가 완공 후 운영해 수익을 얻도록 해(BOT 형태), SK건설이 운영시기를 앞당길수록 수익을 챙기는 구조였다.

참사의 씨앗은 한국정부와 기업이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부터 존재했다고 시민사회TF는 지적했다.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사업계약을 체결할 때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고 △환경영향평가때 지적사항도 해결되지 않았고 △한국정부가 UN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사업은 당초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함께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ADB는 1차 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한 후 금융지원을 철회했다. 환경영향평가가 △건기만 고려해 이뤄졌고 △사업 공청회에는 지역주민 아닌 공무원이 주로 참가했고 △정작 지역주민들은 댐 건설을 몰랐던 게 이후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강준 이사는 “지역주민 이주대책이 포함된 7개 장은 현재도 비공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은 2015년 해당 사업 지원을 최종 승인했고, 같은 해 댐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해당 환경영향평가 보고서가 권고한 조치들마저 실행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라오스 세피안 세남노이 댐 사고 공동대응 TF를 꾸렸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윤지영 피스모모 정책팀장,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사진=김예리 기자
▲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9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라오스 세피안 세남노이 댐 사고 공동대응 TF를 꾸렸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윤지영 피스모모 정책팀장,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사진=김예리 기자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한국정부와 기업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국제사회 권고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현필 국장은 “2013년 UN은 이미 ‘한국정부 예산이 투여되는 사업이 아닌 개별기업 프로젝트라도 인권침해 발생 우려가 있다면 한국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짚었다. “지난 9월 한국이 가입한 UN 사회권규약위원회는 ‘한국기업들의 국내외 활동으로 발생한 인권침해 주장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들이 사법적·비사법적 절차를 거쳐 구제를 요구하도록 보장하라’고 최종권고했다”고도 했다.

이날 시민사회 TF는 한국정부와 SK건설, 서부발전에 △진상조사 피해지역 복구와 △장기적 재건 계획 마련 △민관협력사업 정책 개혁 △세이프가드(한국수출입은행이 2016년 실시한 수칙으로 해당 사업으로 인해 지역주민 피해와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기 위함) 이행 의무화 등을 요구했다.

윤지영 피스모모 정책팀장은 “시민사회TF는 위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촉구활동과 더불어 세피안 세남노이 댐 사고 조사 및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모니터단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국제적 연대 차원에서 태국 시민사회가 현지에서 여는 ‘라오스 댐 비즈니스 미스터리’ 포럼과 동시에 진행했다. 태국은 이번 합작사업에 전력공사 자회사가 참여했다. 한편 라오스에서 활동해온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가는 “라오스 시민사회의 경우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정부여서 독립적 활동이 어렵고 정부기관과 연계해 이뤄진다”며 “특히 사고 현지와 같은 오지는 국제단체와 해외언론이 접근해 검증하기 상당히 어렵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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