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은 정부 말 듣고 ‘와, 장애등급제 폐지네’ 합니다. 모르니까요. 그러나 복지 내용은 그대로 두고 조사표만 바꾸는 게 폐지입니까?”

지난해 9월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광화문역에서 5년째 이어가던 무기한 농성을 풀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 장애인 권리의 3대 적폐인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탈시설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이를 논의할 민관협의체를 꾸리기로 약속해서다. 전국 190여개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가 결성한 전장연이 2012년 농성을 시작한지 1842일째 되던 날이었다.

광화문 농성 중단 1주년을 앞둔 8일 오후 전장연이 청와대 근처에 다시 모였다.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가 지지부진할 뿐만 아니라, 애초 취지와 엇나가고 있어서다. 이들은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투쟁계획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9월5일 박능후 장관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서울 경기 인천 광주 대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120여 명이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 8일 오후 ‘장애등급제 완전폐지·권리 쟁취 투쟁 계획 선포 기자회견’에서 변경택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8일 오후 ‘장애등급제 완전폐지·권리 쟁취 투쟁 계획 선포 기자회견’에서 변경택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8일 오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제 완전폐지·권리 쟁취 청와대 앞 농성단 투쟁 계획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8일 오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제 완전폐지·권리 쟁취 청와대 앞 농성단 투쟁 계획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능후 장관이 농성장에 방문해 함께 만들기로 약속한 핵심과제들이 1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란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통합시키고 복지 수혜자 입장에서 접근해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사회를 맡은 양유진 전장연 활동가는 “문재인 정부와 전장연은 둘 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 알맹이가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3월5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발표했다. ‘5차 계획’은 장애인 복지 체계를 돌봄·이동·고용·소득 등 4가지 범주로 나눴다. 돌봄과 이동 지원은 2020년, 고용과 소득 지원은 임기 말인 2022년에 지원을 시작하도록 했다. 또 장애는 ‘6개 등급’으로 나누지 않고 ‘정도’를 기준 삼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종합계획과 판정체계 가운데 정부가 약속한 ‘3대 적폐청산’과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된 점이다. 내년에 시작하기로 한 ‘돌봄’ 부문에서 오히려 신규 장애인거주시설 입소를 지원한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탈시설’ 기조에 역행하는 대목이다. 전장연이 요구한 시급한 과제였던 장애인연금 확대, 즉 ‘소득’ 부문은 임기 말로 미뤘다. 전장연이 3월26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정부 면담을 요청하며 천막농성을 다시 시작한 이유다.

▲ 8일 오후 ‘장애등급제 완전폐지·권리 쟁취 투쟁 계획 선포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8일 오후 ‘장애등급제 완전폐지·권리 쟁취 투쟁 계획 선포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얘기하려면 근본으로 OECD 최하위인 장애인 복지예산을 평균치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등급제가 유지된 31년 동안, 우리는 겨우 그 정도만 바꾸려고 싸우고 고생하지 않았다”며 “복지 서비스를 수혜자에 맞춰 설계하고, 필요한 만큼 주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우리의 요구는 명확하다. 장애등급제를 그냥 폐지하는 게 아닌 완벽한 폐지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정부를 믿고 우리는 농성을 접었다”며 “약속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고도 요구했다. 양유진 활동가는 “더 이상 단계적 폐지라는 핑계를 대지 말고 정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빨리 내야 한다”고 말했다.

▲ 8일 오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CVID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8일 오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CVID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박경석 대표는 “농성을 철수한 지 1주년이 되는 9월5일 박능후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며 “장관 본인이 이야기했던 것들을 직접 만나 등급제 논의가 어떻게 되는지 분명한 답변해달라”고 했다. 전장연은 “이날 문재인 정부가 예산 확대에 진정성 있는 답변을 하지 않으면 9월18일 서울역 농성을 시작한다”고 투쟁계획을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