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꿩이 저 멀리 날아간다. 입만 열면 꿩이 먼저 반응하니, 저렇게 날아간 새가 몇 마리나 될지 이젠 세는 것도 지겹다. 오갈 데 없어 제주양로원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오재선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면 쏘아올린 축포처럼 꼭 새가 난다.

내가 제주도 꿩과 대화하는 최초의 인간이거나, 새와 소통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진 건 아니다.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려 새가 비상하는 것도 아니다. 오재선 선생의 오른쪽 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왼쪽 귀도 기능을 많이 잃었다. 그에게 내 말을 전하려면 크게 소리지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귀 멀쩡한 제주도 꿩이 먼저 반응해 푸드덕 날아간다. 오 선생은 비상한 꿩이 어딘가에 착지할 즈음에야 입을 연다. 망가진 오 선생의 몸은 여러 면에서 꿩보다 느리다.

먹고 살기 위해 수차례 일본으로 밀항했던 오재선은 1983년 고향 제주로 돌아와 정착했다. 제주경찰이 1986년 4월 오재선을 끌고가 간첩으로 조작했다. 여러 고문이 자행됐고 이때 귀를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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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에서는 허위자백을 했지만 오재선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사람을 때릴 리 없는 판사님에게 모든 걸 말하면 누명을 벗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경찰에게 고문당해 거짓 자백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재판부는 오재선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양승태 판사였다.

오재선은 항소했다. 2심 재판장은 서성 판사였다. 오재선이 아무리 억울함을 말해도 서 판사는 귀가 어떻게 됐는지 똑같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교도소에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은 오재선의 오른쪽 귀는 계속 기능을 잃어갔다.

고문으로 몸 망가지고, 법원 확정으로 ‘공인 간첩’이 된 오재선. 그는 1990년대 초 세상에 나온 뒤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다. 2005년부터 제주양로원에서 살고 있다. 그는 현재 제주양로원 ‘넘버2’다. 그보다 양로원 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딱 1명뿐이다.

양승태 판사는 훗날 대한민국 의전서열 3위인 대법원장이 됐다. 판결로 군사정권에 협조한 젊은 판사 양승태는 늙어서 통크게 정권과 재판을 거래한 듯하다. 지난 6월 1일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현정 PD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현정 PD
“저는 재판 독립의 원칙을 정말 금과옥조로 삼는 법관으로서 40여년을 지내온 사람입니다.”

오재선의 2심 재판장 서성 판사는 훗날 대법관이 됐다. 그는 퇴임 후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후배 법관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현직에 있을 때 처신을 바로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법관은 항상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제물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고 남을 위해 베풀며 적극적 청렴을 실천해야 합니다.”

서성 대법관은 퇴임 후 대형 로펌 세종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오재선 선생은 국가로부터 월 70만 원을 받는다. 양로원 비용을 내면 20만 원 남는다. 그는 이 돈으로 한 달을 산다.

재판 독립을 금과옥조로 여기고(양승태), 항상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서성)고 강조한 두 판사. 말은 앵무새 교과서 읽듯이 바르고 고운 것만 골라 했지만, 재판은 법과 양심을 따라 하지 않았나 보다.

두 사람이 심판했던 오재선 사건은 현재 재심이 진행중이다. 제주지법은 오는 8월23일 선고를 한다. 결과가 나오면 양승태, 서성 두 전직 대법관은 과거 자신들의 판결에 대해 무슨 말이든 하면 좋겠다.

▲ 박상규 셜록 기자.
▲ 박상규 셜록 기자.
좌고우면하지 말고 제주양로원의 꿩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해주길 바란다. 무죄가 선고되면 오재선 선생 들을 수 있게 크게 반성의 멘트 날려주시길. 오 선생이 청각을 잃은 배경에는, 자기 책임을 망각한 법관들의 오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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