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이 사법행정권 남용이란 비판과 함께 연일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 ‘상고법원 입법추진환경 전망과 대응전략’ 문건이 집중 등장했던 2015년 당시 대법원과 MBC간에 일명 ‘권재홍 헐리우드’ 보도 관련 재판거래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다.

김재철 MBC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이 지속되던 2012년 5월17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정연국 앵커는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어젯밤 10시20분쯤 본사 현관을 통해 퇴근하려는 순간 파업 중인 노조원 수십 명으로부터 저지를 받았다.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 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 20여 분 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 2012년 5월17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2012년 5월16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당시 경영진은 보도본부장 퇴근 저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했으며 최형문 기자회 대변인에겐 정직 6개월, 왕종명 기자에겐 정직 1개월 징계를 통보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당시 영상을 공개하며 권재홍 보도본부장과 조합원들 간 신체 접촉이 없었다고 반박했으며 MBC기자회는 “17일 뉴스는 노조를 탄압할 명분을 찾기 위한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기자들이 자사 보도가 오보라고 주장한 초유의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2013년 5월9일 1심판결과 2014년 4월11일 2심판결은 동일했다. 재판부는 MBC의 허위보도를 인정하고 정정보도 및 2000만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015년 7월23일 대법원은 1·2심 판결을 기각하며 파기환송 했다. 결국 이 사건은 2016년 2월18일 노동조합의 반론보도청구만을 인용하는 판결로 종결됐다.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MBC 경영진은 2월19일 보도 자료를 내고 “노조가 신청한 ‘정정보도’가 아닌 일부 내용에 대한 ‘반론보도’만 인정돼 전체적으로 회사 입장을 수용했음을 의미한다”며 “당시 뉴스데스크 보도는 진실한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MBC조합원들과 권재홍 사이에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이 없었음에도 그들 사이에 직간접적인 물리적 접촉이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부분 등 일부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지 않는 부분은 있으나, 사건 보도의 전체적인 취지가 조합원들이 권재홍에게 고의적 공격행위를 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이상, 이는 권재홍이 당분간 방송진행이 어렵게 되었다는 결과를 야기한 본질적 원인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심어준다고 보기 어려워 사건의 세부적 경위에 관한 과장된 표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결국 이 사건 보도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내용의 중요부분이 객관적 사실에 합치되므로 보도 내용이 허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 김장겸 전 MBC사장. ⓒ이치열 기자
▲ 김장겸 전 MBC사장. ⓒ이치열 기자
2015년 대법원 판결 당시 MBC보도본부장은 김장겸 전 MBC사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2015년 4월27일부터 2년간 제5기 대법원 양형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양형위원회 자문위원은 양형기준이나 양형정책에 관한 의견을 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일반인보다 대법원 인사들을 만나기 쉬운 위치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바로 전날인 7월22일자 MBC ‘뉴스데스크’ 뉴스플러스 코너에선 “대법원, 업무 과부하…상고법원이 대안이다?”란 리포트가 등장했다. MBC는 “대법관 한 명이 1년에 처리해야 하는 상고심 사건이 3000건이 넘어 그야말로 과부하 상태”라고 전하며 “대법원 접수 후 최종 판결까지 걸리는 기간이 해마다 늘어 비효율을 고치겠다며 대법원이 내놓은 대안이 상고법원 제도”라고 소개했다. 반대 의견도 일부 담겼지만 취지는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MBC는 “실질적인 4심제가 될 수 있다”는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주장을 소개한 뒤 “대법원은 4심제 시비를 피하기 위해 상고법원을 대법원 건물 안에 두고, 2심도 1심에 대한 재심사 위주로 충실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MBC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날인 7월24일에도 ‘이브닝 이슈’ 코너에서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던 이진강 변호사를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이진강 위원장은 조선일보 등에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칼럼을 쓴 인물로, 당시 양형위원회 민간위원이던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공적 관계가 있었다.

이날 7분여 간 출연한 이진강 위원장은 “국민들 입장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충실한 재판을 좀 해 주고 신속하고 비용 덜 들이는 재판을 해 줬으면, 바라는 그런 측면”이라고 말한 뒤 “상고 법원제도야말로 국민들을 아주 위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날 방송에서 앵커는 양형위원회가 하는 일을 물은 뒤 화제를 바꿔 “요즘에 보면 국회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상고법원을 설립해야 된다, 이런 논의가 지금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상고법원 홍보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MBC경영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던 ‘권재홍 헐리우드’ 패소판결이 대법원에서 기각된 전날과 다음날 상고법원 홍보성 리포트가 등장했다. 앞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2015년 문건과 관련 SBS는 “(상고법원 홍보를 위해) 방송사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됐는데, MBC에 대해서는 이미 접촉을 마쳤다고 적었다”고 보도했다. 

▲ 2015년 11월24일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2015년 11월24일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는 2015년 11월24일 ‘뉴스데스크’에서도 “오늘 국회에서 1년 만에 상고법원 설치안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며 상고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리포트를 냈다. MBC는 “무전취식에 벌금형까지 대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통에 사건 적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여야의원 168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상고법원 관련 법안, 하지만 내년 19대 국회 임기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되게 된다”고 보도했다.

김장겸 전 MBC사장은 6일 미디어오늘에 “짜깁기 식 소설 쓰지 말라. 작문이 대단하고 터무니없다. 왜곡보도 일삼지 말고 더 이상 연락 말라”며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원고측 소송을 담당했던 신인수 변호사는 6일 통화에서 “1심과 2심 판결처럼 대법원 판결도 나올것이라 예상했는데 파기환송돼서 뜻밖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강혁 민변 언론위원장(변호사)은 “이 사건보도는 ‘조합원들이 권 앵커의 신체에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주는 허위의 보도라는 판단이 보다 설득력 있게 보인다”며 “허위 보도를 인정한 1·2심 판단을 정면으로 뒤집은 대법원 판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강혁 위원장은 “대법원이 MBC사측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하는 것에 시기적으로 맞물려, MBC도 양승태 대법원이 열망하던 상고법원 도입에 관한 우호적 보도를 집중시켰다면 대법원과 MBC사이에 모종의 거래관계가 존재했던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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