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중흥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쳤던 최덕현 교사는 두 번에 걸쳐 해직됐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설립에 참여하다 노태우 정권에서 해직교사가 된 게 첫 번째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그는 그렇게 ‘빨갱이 선생’이 됐다.

그리고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그는 다시 한번 해직교사 신분이 됐다. 박근혜 정권은 2013년 10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9조 2항에 따라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둔 전교조에 노조 설립신고서 반려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노조 단결권을 침해했다며 정부의 시정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를 ‘노조 아님’(법외노조)이라고 통보했다.

최 교사는 “전교조 집행부 전임으로 나왔다가 법외노조 통보를 받고 그 후속 조치로 직권면직됐다. 저와 같은 사람이 34명”이라며 “전임을 마치면 바로 학교 현장으로 복귀하고 싶었다. 해직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졌다기보다 학교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19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이 만나 결과를 내놓을 때만 해도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는 해결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당시 김영주 장관이 “(법외노조 직권취소) 법률검토를 해 가능하다면 청와대와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 ‘결단’이 나올 걸로 예상했다.

하지만 다음날 6월20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가 일방으로 직권취소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바꾸려면 본안사건을 다루는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을 받아봐야 하는 것이 하나이고, 두 번째로는 관련 노동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 이 두 가지밖에 없다”며 “그런데 대법원 재심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 입장은 관련 법령의 개정을 통해서 이 문제를 처리한다. 이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주무장관과 면담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 취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전교조 입장에선 청와대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게 전교조는 눈엣가시였다. 고(故)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따르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인용을 취소하도록 지시한 내용이 2014년 9월22일에 기록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날짜에 맞춰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2015년 6월2일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인용했다. 전교조는 해당 문건에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시키기 위해 사법농단을 계획한 걸로 본다.

2013년 10월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근거가 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전임자와 단체교섭 등 노조의 활동을 제약한다며 집행정지 신청을 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본안 재판에서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고, 대법원 판결이 계류 중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정지 관련 검토’ 문건에서도 사법농단 흔적이 나왔다. 문건에는 “2심 본안 사건 처리와 관련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곧 법원 정기 인사 시기도 다가오고, 해당 재판장(민중기 수석부장판사) 교체(법원장 발령) 가능성이 높다”고 적시돼 있었다. 그리고 실제 2심 본안 재판장이 교체되면서 법외노조 적법 판결이 나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2014년 10월7일자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가 나온 것도 정권과 대법원의 재판 거래 정황을 짙게 하고 있다. 6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9월19일 서울고등법원이 ‘고용부의 노조 자격 박탈 처분을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우선 멈춰달라’는 전교조의 집행정지신청을 받아들이자 고용노동부는 법외노조 상태로 되돌려달라는 재항고 이유서를 그해 10월8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항고 이유서를 대법원에 공식 제출하기 하루 전인 7일 임 전 차장의 컴퓨터에 재항고 이유서라는 이름의 서류가 발견된 것이다.

한겨레는 “법원행정처가 고용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미리 받아보는데 그치 않고 최고법원 법률 전문가로서 법리 검토를 대신 해주거나 대법관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논리를 반영해 수정해줬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 정부의 사법농단 계획에 따라 전교조가 탄압을 받은 흔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를 정상대로 되돌리는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는 현 정부의 선택지에서 멀어져가는 모양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지난 1일 “전교조에 대한 ‘노동조합 아님 통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고 권고하고, 방안으로 즉시 직권 취소와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2항 조기 삭제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위원회 권고안을 받고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노동부 장관 입장을 통해 “전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행정 조치를 취소하는 것보다는 법령상 문제가 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재발을 방지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적폐청산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안을 사실상 거부하며 법령 개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청와대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최덕현 교사는 “지난 정권의 법외노조 통보라는 행정조치가 부당했다는 것은 법적으로도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학교 현장에서도 이젠 정부가 왜 이럴까, 배신이냐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현 정부는 일관되게 법 개정을 통한 법외노조 해결을 말하는데 지나치게 법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정당성이나 정의라는 게 있는데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찬운 교수(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정권출범 1년 3개월이 되어 가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인즉, 그 사건이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라는 것이다. 그걸 이유라 대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행정청이 실수를 자인하고 자신의 처분을 스스로 거둬들이는 것은 사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과거 정권이 내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직권 취소하고 법외노조 근거가 됐던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삭제하는 것은 대통령령 개정사항에 해당돼 현 정부가 바로 시행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왜 직권 취소 결정을 하지 않는 걸까.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저희도 답답한 노릇이다. 과거 정권이 전교조를 탄압하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그 적폐를 1년3개월째 계승하는 꼴 아니냐”고 비판했다.

송 대변인은 “과거 행정부와 사법부가 모종의 재판을 두고 시기와 결과를 조율한 정황이 드러났으니 법외노조 처분 사건 재판은 사법농단이고 원천무효라고도 볼 수 있다”며 “행정개혁위원회에서도 법외노조를 통보할 당시 외압이 존재했다는 결과를 밝혀냈고 직권 취소하라고 권고까지 했는데 이를 따르지 않는 장관 입장이 나온 것은 또 다른 부당한 외압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청와대 참모진이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지나치게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져 저울질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해석이 안된다”며 “법외노조 통보를 받고 피를 철철 흐르고 있는데 응급처치는 하지 않고 나중에 시간 봐서 수술하자는 것과 뭐가 다르냐. 정부의 주인이 바뀌면 과거 잘못된 행정 조치를 번복하고 정상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직권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은 까닭을 좀처럼 찾기 어려우면서 내년 ILO(국제노동기구) 설립 100주년에 맞춰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했다. 한국의 필요성으로 거론되는 핵심협약 비준 내용에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이다. 해당 협약이 비준되면 법외노조 통보 근거가 됐던 교원 노조의 해직자 조합원 자격 제한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고 전교조 지위가 회복된다.

송 대변인은 “내년은 ILO 설립 100주년이고 2020년은 총선이다.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 문제를 늦춰 이 시기 성과를 내려고 입법과제로 산정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전교조의 노동기본권은 보장 받지 못해 하루 하루가 힘들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단식농성 하던 조창익 위원장은 22일째인 6일 오전 가슴통증을 호소해 응급실로 이송됐다. 전교조는 검사결과에 따라 단식 농성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