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촬영 스태프 김아무개(30)씨가 지난달 31일 자신의 집에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지난 2일 알려지면서 이날 김씨가 장시간 노동 끝에 과로사한 것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다.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노조에서 공개한 김씨의 촬영일지를 언급하며 사실상 사인을 과로사로 규정했다. 과로사는 곧 김씨의 사망에 SBS와 드라마제작진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김씨는 독립제작사 소속으로 카메라 초점을 맞춰주는 ‘포커스 풀러’란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다. 사건이 알려진 2일 당시 김씨 사인을 과로사로 추정할 근거는 희망연대 방송스태프노조가 공개한 김씨의 촬영일지가 유일했다. 이를 보면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약 75시간 근무했다. 이는 출근시각부터 퇴근시각까지 계산한 시간으로 SBS 측이 휴게시간 등을 제외하고 판단한 5일간의 김씨 노동시간은 약 64시간이었다.

▲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사진=SBS 홈페이지
▲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사진=SBS 홈페이지

보통 드라마 제작은 한 팀(A팀)으로 시작해 막판에 다른 한 팀(B팀)을 투입한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한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초반부터 B팀을 투입했다. 노동 강도를 줄이자는 분위기에 발맞춘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A팀 내에서도 카메라를 두 대 사용했다고 전해졌다. PD들은 화면 톤 유지를 위해 카메라 한 대 사용을 선호하는 걸 고려하면 역시 노동 강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5일 촬영기간 중에 실내세트장에서 일한 날도 있었다. 29일 촬영이 끝난 직후 김씨는 일부 제작진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30~31일 이틀간 김씨는 휴일을 보냈다. 김씨의 사망은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날로 추정된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이나 과로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김씨의 건강상태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단정할 수도 없다.

한 매체는 지난 2일 “경찰 조사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기에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한 매체는 김씨가 지난달 28일에서 30일까지 폭염 속에서 촬영 스케줄에 임했다며 온열 질환 사망 혹은 과로사에 대한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보도했다”며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인용하며 확대재생산했다. 댓글 창엔 김씨의 사인을 과로사로 이해하고 SBS나 제작진을 비난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 지난 2일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촬영 스태프 사망 사실이 알려지자 사망원인이 과로사라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 지난 2일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촬영 스태프 사망 사실이 알려지자 사망원인이 과로사라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기사가 쏟아지자 노조와 언론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한 젊은 드라마제작노동자의 죽음은 언제나, 누구라도 비켜날 수 없는 예고된 죽음”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이날 “사망 원인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에 특별한 지병도 없었던 30세의 건강한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원인으로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방송사와 정부에 장시간 노동 개선책을 요구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도 이날 “아직까지 사망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김씨의 죽음이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관행이 부른 참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측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사 협상에 전향적으로 임하라”고 요구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3일 성명에서 “살인적인 드라마 제작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 단체 입장에선 마땅히 내야 할 성명들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촬영 스태프가 사망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으니 아직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방송사와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

다만 사인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은 2일과 3일 시점에서 다른 제작현장에 비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신경 쓴 제작진에게 향할 비판인지는 의문이다.

부검 결과 지난 3일 오후 김씨의 사인은 ‘내인성 뇌출혈’로 나왔다. 뇌출혈의 원인이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이라는 뜻이다.

▲ 지난 3일 고인의 사인이 '내인성 뇌출혈'로 나오자 '과로사가 아니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 지난 3일 고인의 사인이 '내인성 뇌출혈'로 나오자 '과로사가 아니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그러자 사인은 폭염이나 과로사가 아니란 보도들이 나왔다. 사인이 “과로사가 아닌 내인성 뇌출혈”이라고 보도한 매체도 있다. 부검결과 사인이 ‘과로사’라고 나오는 경우는 없다. 사인 뿐 아니라 법원 등의 해석을 거쳐 ‘과로사’로 인정받는 사례가 있을 뿐이다.

말을 아끼던 SBS 드라마본부와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제작진은 지난 4일 홈페이지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께 깊은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제작진은 유가족께 거듭 깊은 위로를 전하고, 고인과 함께 했던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잘 마무리 하고 제작환경 개선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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