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업스커트(치마 속을 올려다보며 찍는) 몰카 104번 찍은 남자 대학생은 무죄. 땅땅땅.”

“담당 환자 불법촬영한 산부인과 남자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있으므로 신상공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땅땅땅.”

“여기 이분은 헤비 업로더네요. 300테라를 웹하드에 올리셨어요. 그냥 보내긴 아쉬우니깐 5만 원 내고 가세요. 땅땅땅.”

불법촬영 근절을 외치는 여성 4만5000명(주최측 추산)의 목소리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퍼졌다. 익명의 여성들이 결성한 ‘불편한 용기팀’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네 번째로 열었다. 참가자들은 정부에 디지털 성범죄와 불법촬영을 뿌리 뽑을 종합 대책을 요구했고 집회를 둘러싼 언론 보도를 비판했다.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드레스코드에 맞춰 붉은색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드레스코드에 맞춰 붉은색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집회 참가자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둘러싼 정부의 미흡한 대책을 비판했다. 주최측은 성명에서 “(불법촬영물) 생산자, 유포자, 소비자뿐 아니라 숙박업소, 숙박어플로 연결된 웹하드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조사하고 수사하여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는 웹하드업체와 문제적 콘텐츠를 걸러내는 필터링 업체, 피해자로부터 의뢰를 받아 영상 삭제를 하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 간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업체는 사실상 짬짜미를 해 영상을 올리고 삭제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이들의 유착에 대한 특별 수사를 요구하는 청원에는 7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물론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법무부는 지난 1일 불법촬영물을 유통하는 웹하드 업체를 형사처벌하고 불법수익을 환수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불법촬영물 ‘헤비 업로더’ 아이디 297개 명단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관련 웹하드 사업자는 공범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언에 나선 한 참가자는 “동료 시민의 인격을 박탈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이 사회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 참가자는 “우리는 공중화장실에서, 탈의실, 지하철, 길거리, 집에서조차 불법촬영 공포를 느끼며 살아왔다. 여성의 모든 것을 성적 도구로 소비하는 한국 남성들의 미개한 행태에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참가자는 “불법촬영은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당연히 견뎌야 하는 일상”이라고 지적했다.

주최측은 △정부는 여성가족부에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전 교육과정에 걸쳐 불법촬영 근절 교육을 시행할 것 △경찰은 생산자, 유포자, 소비자, 숙박업소, 숙박어플로 연결된 웹하드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조사하고 수사하여 처벌할 것 △국회는 여성 안전을 위한 입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언론이 지난달 7일 열린 3차 시위를 왜곡 및 편파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언론은 3차 집회 현장을 보도하며 “재기해” “곰” 등 표현을 부각했고, 이른바 ‘남성혐오’ 논란이 일었다.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주최측은 “언론은 왜곡보도 및 편파보도를 통해 조회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시위에 수많은 여성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집중하지 않았으며, 그동안 시위가 쌓아온 성과를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사실왜곡 허위보도 사죄하라” “색안경 낀 남성 언론인 자격 없다” 등 구호를 외쳤다.

이번 집회에도 주최측은 여성 기자와 참가자에게만 출입을 허용했고 참가자의 언론 인터뷰를 일절 금지했다. 남성 기자들은 시위 장소 경계선인 펜스 밖에서만 취재가 허용됐다. 남성이 집회 장소에 들어올 경우 불법촬영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이날 주최측 불편한 용기팀은 여성 취재진에게만 집회장소 출입을 허용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이날 주최측 불편한 용기팀은 여성 취재진에게만 집회장소 출입을 허용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800여 명의 경찰이 이날 광화문 광장에 배치돼 주최측 의도에 따라 참가자 출입을 제한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 서울 여성 경찰을 모두 투입했을 뿐 아니라 경기도 내 여성 경찰도 파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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