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차가 섰다. 여러 명이 내려 순식간에 강제로 차에 태웠다. 낯선 이들이 가득한 건물에 가뒀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반복해봤자 감금 기간이 길어질 뿐이다. 묶여 있기도 했다.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을 하고 나면 풀려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결정은 그들이 한다.’

이는 정신장애인들이 강제입원(비자의입원)당할 때 상황이다. 마치 독재정권의 정보기관이 시민을 납치하던 방법 같다. 보호의무자(보통 가족)의 동의와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 ‘정신질환자’가 된다. 정신병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은 번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가장 오래된 자유권인 신체의 자유가 박탈된다. 이들은 근대 이전을 살고 있다.

정신장애인들은 ‘당사자’라는 말을 강조한다. 형제복지원·선감학원 피해생존자나 신체장애인 등 복지시설에서 감금을 경험한 이들은 모두 그렇다. 그간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없었으니 누가 자신을 대리·대표한다는 개념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당사자 운동에서 당사자 한명 한명의 이야기에 좀 더 큰 무게를 두는 까닭이다.

하지만 기성언론과 같은 공론장 내부에선 일개 당사자 한둘의 목소리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지난 6월11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시각을 남기기 위해 대안언론 ‘마인드포스트’를 만들었다. 마인드포스트는 창간사에서 “우리는 우리를 표현할 언어가 없었으며 의료권력의 진단명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였다”며 “우리를 빼고 우리를 이야기하지 말라”고 선언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 관련 뉴스 뿐 아니라 당사자의 일상과 치유의 이야기도 싣는다.

▲ 마인드포스트 메인화면 갈무리.
▲ 마인드포스트 메인화면 갈무리.
미디어오늘은 지난 1일 서울 서초의 한 카페에서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을 만나 매체 창간 이유, 지향점 등을 물었다. “3년 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교수님과 직원들이 먼저 ‘정신장애인 중에 기자생활한 사람이 있으니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꺼냈어요.” 기자생활을 해본 이는 박종언 국장이었다. 그때부터 당사자 10명 정도가 모여 기사쓰기 등을 준비했다.

1년 뒤에 창간하자는 계획은 미뤄져 3년이 걸렸다. 박 국장은 “정신장애인 특성상 힘든 걸 더 견디지 못해 떠나는 사람이 많았고 물론 다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기자 일을 하기란 더 쉽지 않았다. 지금은 기자 4명과 일부 시민기자 등이 기사를 쓰고 있다. 신생 매체라 광고나 후원이 열악하다. 매체 생존 자체가 큰 목표다.

박 국장은 “마인드포스트는 불편부당한 언론을 지향하지 않는다”며 “정치성·정파성을 띨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한국사회가 정신장애인을 매도하면 우리 입장에서 사회와 맞설 수 있다”며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의료권력의 시각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으로 해석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만드는 언론을 보면 보통 시민이 가진 정신장애인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 간 재산 문제로 강제입원제도를 악용하기도 해 정신병원이 감옥처럼 그려지지만 강제입원은 치료를 위해 유용한 제도라는 주장이 많다. 강제입원을 거부하는 환자를 ‘자신의 병이 얼마나 위중한지 모르는 사람’으로 묘사한 칼럼도 있다.

박 국장은 반드시 그렇진 않다고 반박했다. 시민이 정신장애인을 두려워하니 격리했고, 경험하지 못하니 존재 자체가 두려워진다. 의료 권력과 언론은 이를 자극했다는 지적이다.

“2015년 기준 범죄가 200만 건이 넘었는데 정신장애인의 범죄는 8300건, 약 0.4%였어요. 그런데 기자들이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거죠. 언론을 통해 정신장애인을 간접 경험하면서 공동체 밖으로 보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생겼죠.”

치료인가, 배제인가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의사들은 병원·요양시설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라지만 박 국장은 정신장애인을 배제하기로 사회가 합의한 결과물이라고 봤다. 전국에 정신병원은 8만 병동, 정신요양시설은 1만 병동이 넘는다. 박 국장은 “통계를 보면 정신요양시설 1만 명 중 10년 이상 거주한 비율이 65%, 20년 이상 거주한 비율이 35%”라며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사람이 62%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시설 안에 존재가 박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국장은 “1984년 정신과 병상이 1만2000개 수준이었는데 2016년에 와선 9만 병상으로 약 500%이상 증가했다”며 “국가가 요양시설에 1인당 100만원씩 주는데 이러니 수십 년씩 거기 사는 사람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신요양시설에는 시설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을 못하는 거주인들이 상당수 있다.

정신보건법 제정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의사들은 지역사회에서 받을 준비가 안 됐다며 탈원화 정책을 우려한다. 실제 지자체마다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비정규직이 다수를 차지한다. 정신장애인과 신뢰가 생겨도 금방 사람이 바뀐다. 박 국장은 “의료권력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롭다고 지적한다”며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5년 12월 정신보건법을 제정한 이후 한국의 정신건강 정책은 질병분류기호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를 받은 이들, 즉 정신질환자를 찾아내 격리·배제하는데 초점을 뒀다. 박 국장은 “과거에는 정신과에서 상담만 받아도 F코드를 받아 사람들이 정신과를 피했다”며 “최근엔 경증 우울증같은 건 빼는 등 F코드의 범위를 줄였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은 국가 정책과 맞물려있다”는 의미다.

F코드의 범위를 줄인 결과 사회분위기도 달라졌다. 박 국장은 “‘연예인들이 정신과 약을 먹는다’ 이런 내용도 기사를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신병이 특별한 게 아니라고 알리고 싶어서다. F코드를 받은 이들 중 국가에 장애인 등록을 한 이들이 정신장애인이다. 그 수는 약 10만 명으로 1·2·3급으로 나누는데 약 65%가 3급 장애인이다.

신체의 자유 박탈, 누가 결정하나

정신장애인의 인권문제가 불거지자 강제입원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2016년 국회가 전면 개정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면 이제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서로 다른 의료기관의 의사 2명이 동의해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처음엔 3개월, 이후부턴 6개월씩 연장이 가능해진다. 자신의 신체를 의사가 결정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강제입원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주장일까. 박 국장은 “1978년부터 정신병원을 없애기 시작한 이탈리아도 강제입원제도는 있다”며 “가고 싶은 정신병원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서구 선진국의 강제입원 비중은 10%대인 반면 한국은 그 비율이 70% 이상이다.

언제든 정신장애인들이 가서 쉴 수 있는 공간, 자율적으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병원이 돼야 치료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강제입원 당했던 당사자들은 길에서 앰뷸런스만 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병원 안에서 구타·강박하는데 어떻게 치료가 되겠느냐”며 “병원에서 다 회복·완치하고 사회로 나간다는 건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도 현 강제입원제도를 문제 삼는다. 현재 강제입원을 하면 일정기간 내에 국공립병원 또는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가 2차 진단을 해 1차 진단 전문의와 소견이 다르면 즉시 퇴원해야 한다. 결국 2차 진단 의사가 신체 구속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2차 진단 의사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강제입원에 동의한 뒤 고발당한 의사도 있다.

의료계에선 전국 모든 환자를 심사하기 벅차므로 사법·준사법기구에서 2차 진단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등 일부 국가는 법원이나 준사법기구가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했다. 선진국에서 한다고 한국 현실에도 맞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지난 5월부터 국립정신병원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설치해 강제입원한 이들의 입원적합성을 심사한다. 안전장치를 만든다고 인권의 수준이 올라갈까. 박 국장은 “입원된 사람이 10만 명인데 제대로 심사가 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연간 4만여 건의 심사가 예상되는데 조사원은 50여명 수준이다.

의사들이 사법입원제도로 프레임을 짜면 찬반 논쟁으로 접어든다. 당사자들은 관점이 다르다. 마인드포스트는 아직 사법입원제도 관련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임형빈 마인드포스트 기자는 “사법기구든 준사법기구든 입원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보장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 “공론화를 통해 인권 친화적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민주적인 공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신장애인 배제하는 제도 없애기

박 국장의 다른 관심사를 물었다. “정신장애인이 아닌 다른 장애인은 삶의 만족도가 55%라고 해요. 그런데 정신장애인은 31%에 불과하대요. 어떤 사람들은 정신장애를 통해 우리가 성숙해졌다고 하는데 왜 우린 다른 장애인보다 만족도가 떨어질까요.” 정신장애인은 행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노력한다. 그래도 어느 순간 마음이 무너질지 모른다.

▲ 마인드포스트 명함 뒷면.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는 마인드포스트의 주요 주장이다.
▲ 마인드포스트 명함 뒷면.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는 마인드포스트의 주요 주장이다.

삶의 만족도는 차별과 연관이 있다. 아직 한국사회는 정신장애인과 살아갈 준비가 안 됐다. 박 국장은 “몇 군데서 고치긴 했지만 많은 지역 조례에서 정신장애인은 공공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못 들어가게 하거나 문화공연을 볼 수 없도록 했다”며 “정신장애인은 의사·약사·한의사·이발사 등을 할 수 없는데 당사자에게 차별적인 면허가 20개쯤 된다”고 말했다.

한 예로 의료법에 보면 의료인 결격사유로 정신질환자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전문의가 인정할 경우 의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선원법에 보면 선박소유자의 의무로 정신질환자 승무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정말 위험할까. 전방위로 정신장애인을 배제하고 있지만 사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채 눈치 보기 바쁜 실제 다수의 정신장애인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힌 언론 속 정신장애인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지하철 탔는데 누가 중얼중얼하면 무서워하지 마세요. 자기 고통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짖는 개는 안 문다고 하죠. 아파서 혼자 소리칠 순 있지만 남에게 해코지 하지 않아요.” 이 말은 아직 대중에게 와 닿지 않는다. “경험이 태도를 바꾸죠. 당장 어떻게 바꾸겠어요.” 소망과 냉소가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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