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달 31일 “국민 80.7% 여성혐오, 남성혐오 ‘심각하다’ 인식”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7월20~25일까지 20~50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였다. 일부 언론은 이 보도자료를 인용해 기사를 쓰기도 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응답자 중 80.7%(매우 심각 28.5%, 약간 심각 52.2%)가 성별 기반 혐오표현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성별에 따라 남성보단 여성이, 연령별로는 어린 세대일수록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두 번째로 ‘탈코르셋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에 입장을 물었다. 시위를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36.3%였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40.4%였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중 72.5%는 ‘그런 운동이나 시위로 인해 오히려 페미니즘, 성차별, 여성혐오 같은 사회이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확대될 것 같아서’를 이유로 들었다. 지지한다는 응답자 중 63.9%는 지지 이유로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과 여성에 대한 처우가 어떻게든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서’를 꼽았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에서 7월31일 발표한 설문조사를 인용한 기사들.
▲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에서 7월31일 발표한 설문조사를 인용한 기사들.

또한 응답자 75.6%는 ‘김치녀’, ‘한남충’ 같은 표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한 이들 중 53.2%는 해당 표현을 ‘써본 적 없다’, 35.1%는 ‘거의 써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남성혐오’ 사용한 질문 적절한가

미디어연구센터는 김치녀를 여성혐오 용어, 한남충을 ‘남성혐오’의 대표 표현으로 보고 설문을 진행했다. 하지만 ‘남성혐오’는 용어 자체로 논란이 있다. ‘남성혐오’란 말이 성차별을 은폐하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혐오는 소수자를 차별하는 용어로 정의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소수자일 수 없다. 남성 중 장애인, 남성 중 성소수자 등은 소수자·약자로 구분하겠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기득권층 대다수는 남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을 동일한 집단으로 묶은 뒤 그 집단을 소수자로 규정할 순 없다. ‘비장애인 혐오’나 ‘이성애자 혐오’라는 말이 없는 이유다. 따라서 ‘남성혐오’를 여성혐오와 대등한 용어로 사용하는 순간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가려진다는 주장이다.

물론 남성을 향한 모욕표현이므로 한남충 같은 표현이 ‘남성혐오’라는 반박도 있다. 미디어연구센터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용어를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해 결과적으로 편향된 질문을 던졌다.

▲ 7월31일자 미디어이슈 4권 7호 '여성혐오, 남성혐오에 대한 인식'
▲ 7월31일자 미디어이슈 4권 7호 '여성혐오, 남성혐오에 대한 인식'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보도자료의 근거가 된 미디어이슈(Media Issue) 4권 7호 ‘여성혐오, 남성혐오에 대한 인식’ 리포트를 보면 미디어연구센터는 ‘여성·남성혐오 표현 관련 경험 및 인식’을 주제로 첫 번째 설문을 진행했다.

‘김치녀’ ‘한남충’과 같은 표현을 들어보거나 사용해본 적이 있는지, 이런 표현에 대해 드는 느낌 등을 물었다. 타인을 공격하는 표현에 대해 드는 느낌을 물으면 자연스레 부정적인 답변이 많이 나오게 된다. 응답자 중 58.6%가 ‘거북하고 불편하다’, 19.3%가 ‘모욕적이다’, 8%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런 질문을 한 뒤 두 번째 주제로 탈코르셋 운동·혜화역 시위 지지여부를 물었다. 탈코르셋 운동·혜화역 시위가 혐오논쟁 공론장 중 하나인 만큼 부정 여론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불법촬영 피해자가 남성일 때와 여성일 때 경찰의 태도가 달랐다’는 시위 참가자의 주장이 사전에 나온 뒤 지지여부를 물었다면 답변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

보도자료에는 빠진 중요한 내용

설문결과 중 의미 있지만 보도자료에는 빠진 문항도 있다. 이 때문에 설문 전체를 다룬 리포트의 결론과 보도자료의 결론이 서로 달랐다.

보도자료에선 ‘여성혐오·남성혐오 해결방안’으로 ‘언론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팩트체크를 통해 성별 관련 혐오에 대한 허위정보를 걸러낸다’는 답이 34.6%로 가장 많았다고 했다. 보도자료를 인용한 기사들도 이를 결론처럼 인용했다.

▲ 성별 기반 혐오 및 혐오표현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 결과. 자료=7월31일자 미디어이슈
▲ 성별 기반 혐오 및 혐오표현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 결과. 자료=7월31일자 미디어이슈

하지만 아래 내용은 보도자료엔 나오지 않았다. 미디어이슈(Media Issue) ‘여성혐오, 남성혐오에 대한 인식’ 리포트를 보면 탈코르셋 운동·혜화역 시위지지 응답자는 여성(50.8%)이 남성(21.8%)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또한 혐오표현 관련해 ‘여성에 대한 반감이나 증오가 여성에 대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문에 동의한 응답자가 84%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해당 리포트에선 위 내용 등을 근거로 “성별 간 존재하는 뚜렷한 인식 차이가 여성혐오, 남성혐오의 기반이 되고 있으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결국 성별 간 혐오표현 문제는 일부의 단발적인 자극·갈등이 아니라 성 역할과 평등·인권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설문의 주요 내용이 보도자료에서 빠지면서 결론을 왜곡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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