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23일 중앙일보 중앙시평 제목은 ‘한국 경제의 생체실험… 소득주도 성장’이었다. 이 칼럼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자본주의 근간을 부정한다고 전면 공격했다. 칼럼은 한국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생체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칼럼은 소득주도 성장은 성공 가능성이 낮고 부작용이 큰 비현실적 이론인데도 문재인 정부 경제실세에 의해 새 정부 경제정책 근간으로 추진돼 위험천만하다고 진단한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7월 한달 동안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을 치면 모두 97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무더기 비판은 때론 스트레이트 기사로, 때론 자유한국당의 입을 빌려, 때론 사설로, 데스크 칼럼으로, 때론 전문가 기고로 쏟아졌다.

지난달 27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소득 주도 성장 실험한다고 이런 무모한 일을 강행한다”고 결론 내렸다. 같은 날 ‘동서남북’ 칼럼에선 “소득 주도 성장 등 좌파 정책에 나라가 흔들”린다고 다그쳤고, 그 일주일 전 한 정치철학자의 칼럼에선 “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독단적인 데다 서투르기까지 하다”고 단정했다. 이쯤 되면 ‘소득주도 성장론’은 문재인 정부 비판의 시작과 끝이다.

이처럼 일부 언론은 모든 경제불안의 원흉을 소득주도 성장론에 돌렸다. 도대체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소득주도 성장론은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의 새 경제수장이 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창했다. 당시 최 부총리는 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환류시키는 가계소득 증대를 부르짖었다.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 연합뉴스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 연합뉴스
그해 7월25일 문화일보는 데스크 칼럼에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 급속도로 심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 경제는 극심한 내수(소비) 침체에 빠져 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수출로 돈을 번 기업의 이익이 가계로 잘 흘러내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의 공식이 갈수록 심화하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000년대부터 제기한 성장 담론이다. ILO는 세계적인 저성장의 원인을 임금 격차에 따른 소득 불평등으로 진단하고 가계소득을 늘리는 해법을 제시했다.

MB정부 초기부터 주류 경제학자들은 막연한 낙수효과만 믿고 대기업 성장에 기댔다간 경제 전체가 고장난다는 걸 깨달았지만 MB정부는 그럴 자신도 배짱도 없었다. 정부만 그랬던가. ‘747공약’에 눈이 멀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12월 ‘국가 고용전략 대토론회’에서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섰던 한국은행 장동구 박사는 ‘성장, 임금과 고용 간의 관계’라는 발제문에서 해방 이후 우리 정부가 반세기 이상 굳건히 지켰던 “성장이 이뤄지면 일자리와 분배는 저절로 창출된다”는 금과옥조를 무너뜨렸다. 장 박사는 1970~2008년까지 40년 가까운 시계열적 분석을 통해 “성장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보다, 고용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년 내내 문재인 정부를 향해 퍼붓는 언론의 십자포화는 끝내 ‘포용적 성장’이란 대체어까지 만들어 냈다. 여전히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성장주도론으로 회귀하라는 언론의 악다구니가 한국경제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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