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친노·주류·비주류로 분류하고 법률가 블랙리스트 필요성을 거론한 문건이 발견됐다. 지상과제였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정부 개헌론에 힘을 실으려 했던 정황도 확인됐다. 7월31일 법원행정처가 추가로 공개한 양승태 코트(대법원) 시절 196개의 문건은 사법개혁을 위해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황망한 정도로 참담함을 안겼다.

지금 시점에 권석천 JTBC보도국장이 쓴 ‘대법원, 이의있습니다’는 양승태 코트의 ‘사법농단’을 이해하고 사법개혁의 해법을 찾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권석천 보도국장은 1년 전인 2017년 7월 출간한 이 책에서 참여정부 시절의 이용훈 코트가 한국 사법부 역사에서 처음으로 입장의 다양성을 실험하며 새로운 판례와 빛나는 소수의견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지음. 창비.
▲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지음. 창비.
양승태 코트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정확하다. 양승태 코트는 서기호 판사와 이정렬 판사를 ‘제물’로 ‘튀는 언행을 하면 판사 지위도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 법관 사회를 위축시켰다. 이후 대법원을 지배한 건 보수 이데올로기였으며, 정권과 유착이었다.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에는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론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다 찾아서”, “법원 지도층과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로 추정되는 발언내용이 담겨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7월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3대0’ 판결이었다. 권석천 국장은 “양승태 코트 들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특징은 전원일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1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08건 중 36.1%인 39건이 ‘13대0’이었다.

권 국장은 “양승태 코트 들어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판사들을 중심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현상이 심해졌다”고 지적했으며 “양승태 코트 중반부터 시작된 ‘상고법원 도입’ 드라이브는 사법의 관료화와 법원의 정치화를 증폭시켰다”고 비판했다. 특히 법원의 정치화는 노동사건에서 두드러졌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무효소송은 항소심까지 승리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로 뒤집혔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현정PD
▲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현정PD
오늘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걸까. 그는 책에서 “법원행정처 간부와 판사들이 국회를 드나들며 여야 의원들을 접촉했다”고 비판하며 “판사들이 대국회·대언론 로비에 동원되면서 1970~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정치판사 논란이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이후 상고법원 도입 법안은 좌초됐고, 재판의 독립이란 소중한 가치는 위협받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국장은 양승태 코트의 실패로 인해 “진실이 법정에서 가려지지 않다보니 법정 주변에 ‘재판 결과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브로커들이 설치고 다닌다”고 비판했으며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검찰공화국 시스템이 복원되고 검찰정치가 활성화됐다. 사법의 책임이 작다고 할 수 없다. 양승태 코트가 그려온 궤적은 이용훈 코트로부터의 탈피였다”고 주장했다.

권 국장은 “법원이, 판사들이 독점한 정의는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독점만큼 위험하다”고 주장하며 “그 누구도 정의를 독점할 수 없다. 법원이 판결한 이상 그 결론이 어떠하든 따라야 한다는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판사들도 정의를 선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왜 정의인지 설명하고 논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권 국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0년부터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다 2007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법조팀장과 사회부장 등을 지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법부 견제를 위해 언론계가 뛰어난 법조기자들을 많이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법조기자 권석천의 눈에 비친 이용훈 코트는 특별했다. “내가 이용훈 코트에 주목한 까닭은 이용훈 코트가 유독 공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논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용훈 코트의 소수의견은 힘이 셌다.”

그는 “보수의 것도, 진보의 것도 아닌 대법원”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용훈 코트의 역사를 쫓는다. “재판의 독립은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 우리는 그 답을 이용훈 코트 6년에서 찾아야 한다.” 양승태 코트의 사법농단 앞에서, 한국사회는 사법개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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