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31일 밝힌 ‘사법농단’ 관련 미공개 문건을 보면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신문·방송·뉴미디어 별로 각각 홍보 전략을 세워 언론플레이를 계획했다. 행정처에서 실제 언론인을 접촉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5년 5~6월 사법정책실, 기획조정실, 상고법원 뉴미디어 홍보팀 등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검토’, ‘상고법원 관련 신문·방송 홍보전략’, ‘상고법원 신문·방송 홍보전략2(지역지·종편)’, ‘뉴미디어를 활용한 상고법원 홍보 방안’ 등 홍보와 관련해 64쪽에 이르는 문건을 작성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현정PD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현정 PD

‘상고법원 신문·방송 홍보전략2(지역지·종편)’을 보면 여론 형성을 위해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접촉한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문건 ‘접촉방안 및 진행상황’을 보면 KBS·JTBC·SBS 등 세 언론사의 메인뉴스가 언급된다. 

‘KBS 9시 뉴스’의 경우 ‘KBS 이사진을 통해 강○○ 보도본부장과 교섭’해 ‘긍정 답변’을 받았다고 돼있다. 이와 관련 강아무개 당시 KBS 보도본부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 해외에 있어서 문건을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JTBC 뉴스룸(8시)’의 경우 ‘주말 앵커인 전○○ 사회부장을 교섭’해 ‘메르스 진정 후 우호적 보도가 가능하다는 답변’이라고 적혀있다. 이와 관련 전아무개 당시 JTBC 사회부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 관심 사안이 아니라고 했지만 계속 부탁을 해서 의례적으로 ‘나중에 한번 보겠다’고 답했다”며 “나중에 상고법원을 다루긴 했지만 부탁과는 무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메르스 사태가 지난 뒤 그해 8월28일자 JTBC 주말 ‘뉴스룸’을 확인한 결과 “대법원 이외 상고심 뜨거운 감자…찬반 의견 팽팽”, “취지는 ‘사법 서비스 향상’…상고법원 갈등 쟁점은?”처럼 양쪽 입장을 전달하는 리포트가 등장했다. 

‘SBS 8뉴스’의 경우 ‘기조실장이 조만간 방○○ 보도국장을 접촉할 예정’이라고 돼있다. 방아무개 당시 SBS 보도국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가 법조출입 경험이 없어서 아마 법원에서 사람이 왔다면 기억을 할 텐데 누가 찾아오거나 뉴스를 다뤄달라거나 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2015년 6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맡은 이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상고법원 반대 의원 지역구의 지역 유력지 접촉

해당 문건에는 지역 유력지 홍보 방안으로 “지역 주민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보단 단기간에 지역구 의원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나왔으며 실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의원 중 이한성·김진태·김도읍·전해철 의원 지역구에 있는 지역 유력지 접촉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을 보면 이한성 법사위 간사 지역구(문경예천)와 관련 있는 매일신문 사장이나 논설주간 접촉방안이 나왔다. 사설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이 간사의 지역구를 전담하는 고아무개 기자(문경예천상주 담당)를 접촉하는 문제에 대해선 ‘신중 검토’ 의견이었다.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춘천)와 관련된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의 대주주와 임원 등을 검토해 사설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접촉해야 한다는 방안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김도읍 의원의 지역구(부산 강서구을) 관련 지역신문인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의 임원 접촉도 검토했다. 이들 신문에서 상고법원에 적대적인 사설 등이 나오자 전문가 칼럼·외부 기고를 통해 여론전을 펼치거나 법조기자·데스크를 접촉하자는 계획을 세웠던 것. 전해철 의원 지역구인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갑에는 영향력 있는 지역지가 없어서 중앙일간지나 방송을 통해 압박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종편의 경우 주요 패널 명단을 조사한 뒤 “패널 포섭 방식의 장점”을 소개했다.

▲ 상고법원 홍보 RESTART팀이 작성한 2015년 7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홍보 방안' 문건에 나온 종합편성채널 패널 리스트.
▲ 상고법원 홍보 RESTART팀이 작성한 2015년 7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홍보 방안' 문건에 나온 종합편성채널 패널 리스트.

기존 전략을 수정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상고법원 관련 신문·방송 홍보전략’을 보면 “종래 저명인사 기고 방식 홍보는 한계 효용이 미약한 수준이 이르렀다”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전략은 “상세한 정보보단 정서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사례를 발굴”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국민에게 이득이 되고 국민도 원하는 유일한 상고심 개선방안’으로 어필할 수 있는 동아일보 여론조사를 전방위로 홍보하자는 방안이었다.

세 번째는 상고법원 도입의 기정사실화를 전제로 보완방안을 소개하는 기사·기고가 필요하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면서 같은해 5월28일자 조선일보 3면에 실린 두 건의 기사를 예시로 들었는데 상고법원 도입을 전제로 해 국회가 내놓은 보완책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언론사 성향 구분해 다른 전략

이들은 크게 보수성향 언론과 진보성향 언론으로 구분해 전략을 달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공세적 논조로 적극 활용”해 협력을 모색했고, “긍정적 여론조사결과를 모멘텀으로 삼아 기획기사를 게재”한 동아일보에도 “강한 논조가 가능하도록 설득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중앙선데이에서 다소 비판적인 기사를 내 이후 팩트 위주 보도로 소강상태”라고 짚었다.

한겨레는 “민변·경실련 등의 영향으로 우호적 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경향신문은 “가장 활발하게 반대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신문에는 “찬반 양측 기고를 동시·순차로 게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최소한이라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뉴미디어를 활용한 상고법원 홍보 방안’ 문건을 보면 파워블로거·파워트위터리안을 접촉·섭외해 상고법원 지지글을 확산하는 방안, 법관 및 직원·그 가족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지글을 확산하는 방안 등을 홍보 방안으로 내놨다. 또한 홍보 영상·웹툰·홍보 포스터 제작 방안에는 제작 업체나 웹툰 작가 후보군과 필요한 비용 등을 적었다.

같은해 7월에는 앞서 나온 문건을 종합하는 형식의 79쪽짜리 문건을 ‘상고법원 홍보 RESTART팀’에서 만들었다. 문건을 보면 2014년 12월1일부터 2015년 7월2일까지 ‘기존의 상고법원 홍보 현황 및 성과, 개선점 등’을 분석해 향후 홍보 방안을 제안했다. 문건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상고법원 관련 일간신문 기사는 약 170건이 나왔는데 조선·동아·중앙·매경·한경·법률신문 등을 우호적 매체, 경향·한국·한겨레·내일 등을 비우호적 매체로 구분했다.

하반기 상고법원 홍보방안으로는 15개 중앙지의 경우 7월부터 10월까지 주 1회 기고를 목표로 했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는 월 1회 방송 노출을 목표로 했다.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도 리스트를 분석해 프로그램 별로 시기를 나눠 7~8월, 9~10월에 각각 집중 추진하고자 했다. 양승태 사법부의 상고법원 ‘언론플레이’는 그야말로 치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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