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상품을 팔아먹는 바람잡이 구실로 전락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상품 진열을 넘어 효능을 강조하며 사용법까지 알려주고 그 시간대에 홈쇼핑에서는 해당 상품을 판매한다. 건강보조식품에 집중된 까닭은 소비자들이 그 효능·효과를 알아내기 어렵고 그래서 방송의 공신력이 상품 구매결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인들은 건강보조식품에 민감하다. 몸에 좋다고만 하면 극성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 보조 식품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 그 틈을 노리고 종편과 홈쇼핑 채널, 상품판매업자들이 합동작전을 벌인다.

방송법 경계를 파고드는 간접광고

방송법에는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상파와 종편 등이 광고를 직접 판매하지 못하고 미디어렙을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한 것도 그러한 취지다. 방송사와 광고주 사이에 담합이 이루어지고 프로그램은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상업적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간접광고가 등장하면서 그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프로그램속으로 광고물이 쑥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광고처럼 다양한 표현 기법이나 크리에티브를 발휘하는데는 여러 제약들이 있다. 화면의 크기와 시간도 규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상파나 종편은 미디어렙을 통해서 판매하니 은밀한 짬짜미도 쉽지 않다. 그래서 방송사와 광고주들은 정상적인 간접광고가 아니라 음성적 협찬에 더 관심을 갖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프로그램의 내용전개 또는 구성과 무관한 간접광고 상품 등을 노출하고 부각시켜 시청 흐름을 현저하게 방해하는 내용은 규제한다고는 하지만 심의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 흐름에 맞지 않은 에피소드를 뜬금없이 끌어들이거나 특정 장면을 두드러지게 하고 출연자의 상품 관련 발언을 삽입하는 등 잔꾀가 동원된다. 공공적 성격이 높은 지상파에서도 불법적 협찬이 그치지 않는다.

방송은 이미 광고가 되어버렸다

얼마전 SBS의 ‘런닝맨’에서는 게임을 진행하기에 앞서 출연자들이 각각 커플을 선정한 후, 협찬회사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셀카를 찍으며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 보여주는 등 특정기능을 여러 차례 시현하고, KBS-2TV ‘황금빛 내 인생’은 등장인물들이 협찬사의 매장(외식업체, 제빵업체)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특정 외식업체의 서비스 장점을 부각시켜서 제재를 받았다.

특히 TV홈쇼핑방송과 연계 판매는 불법적 협찬의 가장 나쁜 행태다. 교양으로 포장한 건강 프로그램에서 특정 제품과 성분을 홍보하면 비슷한 시간대에 홈쇼핑채널에서는 판매한다. 애초에 프로그램이 홈쇼핑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기획되고 제작되기 일쑤다. 상품 판매업자가 돈도 내고 프로그램 내용도 개발해 주문하는 원청업체이고 방송사는 제작과 편성만 대행해주는 하청업체 꼴이다.

시청자만 없는 방송정책

방송통신위원회가 2017년 40일 방송분을 조사했더니 종편 4개사의 26개 프로그램에서 110회동안 방송한 내용이 홈쇼핑사의 상품 판매방송과 총 114회 연계 편성되었다고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온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공신력있는 정보로 포장했고 소비자들을 현혹했다.종편에서 섭취방법, 효능, 특장점을 소개하는 방식과 TV홈쇼핑에서 상품판매를 위한 홍보 시연장면이 유사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비자를 꾀는 미끼 광고물에 불과하다. 더구나 방송에 나오는 그 정보조차 확실히 공인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번 조사는 종편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더 공신력과 영향력이 높은 지상파에도 유혹을 손길을 뻗어갈 수도 있다. 마침내 방송이 온통 상업적 상품 판매장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 ▲ 방통위의 홈쇼핑 연계편성 실태점검 보고서.
▲ ▲ 방통위의 홈쇼핑 연계편성 실태점검 보고서.
연계 판매에 가담하는 방송사와 홈쇼핑 그리고 상품판매업자는 이익으로 뭉쳐진 작전세력이다. 여론을 조작하고 의식을 조종하여 물품을 파고 시청자의 주머니를 갈취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방송의 상업적 오염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마저 교란하는 행위이다. 부당거래는 그만큼 이익이 많고 가담자들에게 돌아오는 몫도 크다. 방송사로서는 채널 사업권만 갖고도 밑천없이 돈을 챙길 수 있으니 구미가 당길 법하다. 어느날 갑자기 불거진 사안도 아니다. 이미 만연해 있고 날로 기승을 부린다. 시청자들의 불만과 짜증은 임계점을 향한다. 종편 재승인과정에서도 여러 번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동안 방송통신위원회는 손을 놓고 팔짱만 끼고 있었다. 법에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 이용자의 복지 및 보편적 서비스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고 되어있다. 도대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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