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성·김광일 독립PD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이들은 방송계 불공정한 관행을 폭로하고 촬영을 떠났다. 열악한 환경에서 직접 운전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유족과 한국독립PD협회는 이들의 1주기를 앞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에는 그들을 ‘다큐멘터리스트’, ‘Wildlife Filmmaker’로 기록했다. 한 동료PD는 “이번에 남아공에서 찍으려던 EBS 다큐프라임 ‘야수와 방주’편은 박환성 PD가 해오던 자연다큐를 종합하려던 작품”이라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박 PD 유족인 박경준씨에게 박 PD 작품 중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편(2012년 9월 방영)을 추천받았다. 그가 남긴 작품을 되짚으며 박 PD를 애도하고자 한다. - 편집자주

네팔 치트완 코끼리 사육센터는 치트완 국립공원 인근이라 외지인들의 주요 관광코스다. 이곳의 코끼리는 어쩌다 울타리 밖으로 나올 때 더 불안해한다. 잠깐의 자유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코끼리의 모습조차 관광객에겐 볼거리다.

사육센터에선 보통 두 살 때부터 코끼리 조련을 시작한다. 조련의 첫 단계로 새끼 코끼리를 어미와 분리해 한동안 기둥에 쇠사슬로 묶어둔다. 코끼리의 야성이 줄어들었다고 판단하면 먹이와 도끼를 이용해 조련사의 말을 듣게 만든다. 무릎을 꿇는 등 복종에 어울리는 자세를 가르친다. 조련사가 올라타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훈련이 이어진다.

▲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한 장면. 네팔 조련사가 코끼리를 때리며 길들이고 있는 모습.
▲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한 장면. 네팔 조련사가 코끼리를 때리며 길들이고 있는 모습.

조련사들이 코끼리를 열심히 조련하는 이유는 해마다 12월에 열리는 코끼리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는 남부 네팔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다. 영국에서 말을 타고 하던 폴로 경기를 이곳에선 코끼리를 타고 한다. 코끼리를 타고 하는 축구 경기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아이러니하게 축제는 서양에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네팔에서 열리지만 축제 후원사나 코끼리 주인은 대부분 서양인이다.

축제 날 코끼리는 도끼로 엄청나게 매를 맞는다.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조련사들은 가혹하게 코끼리를 다룬다. 이는 1년 내내 이어진 훈련의 연장선이다. 아직 조련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코끼리들은 우왕좌왕한다. 조련사들은 빈틈을 허용하지 않으려 코끼리들을 물속에서도 때린다. 제작진은 최근 반항이 심하던 코끼리가 두명의 조련사를 밟아 죽인 소식을 전하며 “억지로 길들인 결과”라고 말한다.

박환성 PD가 연출을 맡은 ‘소년과 코끼리’의 볼거리는 인간과 코끼리를 이분법으로만 그리지 않은 점이다. 코끼리를 좋아하는 7살 크리스와 코끼리 조련사를 꿈꾸는 14살 수실의 시선으로 코끼리 사육센터를 그린다.

크리스의 아빠는 코끼리 조련사다. 크리스는 아직 코끼리를 혼자 타는 게 무섭고 코끼리 먹이를 준비하며 행복을 느끼는 소년이다. 크리스는 아빠를 포함해 조련사들이 코끼리의 머리를 도끼로 거세게 내리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울음을 터트렸다. 아직 소년은 어른들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수실은 학교를 관두고 코끼리 조련사를 꿈꾼다. 양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수실을 때렸다. 그때마다 폭행을 막아줬던 삼촌 역시 코끼리 조련사다. 최근 삼촌은 보름 간 휴가를 다녀와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려했는데 코끼리는 상아로 삼촌을 공격해 꽤 심한 부상을 입었다. 수실은 삼촌을 걱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한다.

▲ 조련사가 코끼리를 심하게 조련시키던 중 코끼리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한 장면
▲ 조련사가 코끼리를 심하게 조련시키던 중 코끼리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한 장면
▲ 어른들이 코끼리를 거칠게 다루자 울음을 터트린 7살 소년 크리스.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한 장면
▲ 어른들이 코끼리를 거칠게 다루자 울음을 터트린 7살 소년 크리스. EBS 다큐프라임 '소년과 코끼리' 한 장면

조련사들은 악한 인간이 아니다. 거칠게 코끼리를 다뤄 실력있는 조련사인 민바두씨는 다큐프라임과 인터뷰에서 “위험한 코끼리를 맡았다고 바꿔달라고 할 수 없다”며 “위에서 정해주는대로 따르지 않으면 계속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평범한 삶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네팔 1인당 국민소득은 637달러다. 이는 북한보다 낮은 수준이다. 생존이 인권을 앞서는 공간에서 코끼리를 착취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려운 구조다. 폭력의 구조를 짠 이들은 멀리 있다. 직접 폭력을 행하는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착취한다. 네팔에선 조련사가 다치면 코끼리의 난폭을 없애기 위해 제사를 지낸다. 양을 잡아 그 피로 밤늦도록 제사를 지낸다. 인간은 자신의 희망을 기원할 때 동물을 제물로 바쳐왔다.

박 PD는 이처럼 거대한 야생동물이 자신의 힘을 잊은 채 길들여지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박 PD는 인간의 탐욕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그린 ‘호랑이 수난사’로 한국PD대상 작품상과 한국독립PD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코끼리 소년의 눈물’로 ‘코리아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우수 피칭상을 받는 등 자연다큐멘터리 전문PD로 활약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