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 계엄령 문건의 진상보다 군 내부 갈등이 부각되자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냈다. 약자를 대변해온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가 가결됐다. 약자를 대변했던 노회찬 의원의 장례가 마무리됐다. 보수신문은 이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상”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국군기무사령부 간부들이 국회에서 계엄령 문건을 놓고 공방을 벌이면서 사안이 본질과 멀어진 채 진실게임과 하극상만 주목 받았다. 

정부가 직접 나섰다.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의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왜 이런 문서를 만들었고 어디까지 실행하려 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르자 진실규명이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송영무 장관을 비롯해 관련자들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 27일 중앙일보 보도.
▲ 27일 중앙일보 보도.

그러나 청와대의 의도처럼 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까지 이 갈등에 개입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꼴이 됐다. 중앙일보는 “대통령까지 나선 계엄문건 진실게임, 송영무 거취는...”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사안을 ‘진실게임’으로 규정하고 “기무사의 반격이 심상치 않다”며 갈등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는 전쟁에 빗댄  “계엄 문건 내전 직접 진압”이라는 표현을 쓰며 비슷한 논조를 보였다. “자질논란 송영무 경질로 가나”(한겨레) “송 국방 경질 시사”(조선일보) 등 송영무 장관 경질 여부에 주목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인권변호사 김선수 대법관 임명동의 가결

약자를 대변하는 대법관이 탄생했다. 국회는 26일 본회의를 열고 김선수 변호사를 비롯해 대법관 후보자 3명의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노동·인권 사건의 변호를 주로 맡아왔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다. 골프장 보조원 노조 설립, 서울대병원 노동자 법정수당 지급, 공무원노조 창립 등에 영향을 미쳤다. 법원이나 검찰을 거치지 않은 변호사가 대법관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김선수 변호사의 임명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는 엇갈렸다. 보수신문은 단신으로 다루거나 기사를 내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보도하지 않았으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3단 스트레이트 기사로 다루면서 자유한국당의 반발을 부각했다. 앞서 김 변호사 지명 때부터 보수신문과 종편은 그가 편향됐다며 비판해왔다.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사설.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사설.

동아일보는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사법개혁비서관 등으로 일한 점을 들어 그간 자진사퇴를 요구해왔다”며 “청와대가 사법부를 침탈하려 한다”는 한국당의 반발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진보성향 단체인 민변의 창립 회원으로 회장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을 변론하는 등 대법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인사청문특위 내의 야당 입장을 전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사설을 내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 신문이 김 변호사 임명을 반기는 이유는 ‘다양성’에 있다. 한겨레는 김 변호사가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 출신이라는 한국당의 반발에 “야당으로서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법원 다양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비춰 보면 노동자 등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30여년 한길을 걸어온 김 후보자가 갖는 상징성의 무게를 간과한 것 같아 아쉽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역시 “기록이 아닌 현장 경험을 통해 노동자를 이해하고 노동사건을 바라보는 대법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회찬을 보내며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가 가결된 날 또 다른 약자의 대변인은 떠났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장례가 마무리됐다.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빈소를 찾았다. 26일 저녁 진행된 추모식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한겨레는 “전태일, 김근태, 박종철 등 수 많은 민주 영령이 약자를 대변하며 진보적 가치 확산을 위해 헌신한 그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정치인 노회찬이 추구했던 정치는 권력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 가치의 정치”라며 “시민들은 그를 잃고 나서야 그가 추구했던 진보적 가치가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경향신문의 사설 제목은 “약자의 대변인 노회찬을 보내며”다.

▲ 27일 경향신문 보도.
▲ 27일 경향신문 보도.

한겨레, 경향신문, 그리고 서울신문은 추모문화제 소식을 다뤘다.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서 만납시다”(경향신문) “‘노 의원, 우리 같은 꼴찌 위해 버티지’... 6411번 버스는 웁니다”(서울신문) “‘영정 앞에 놓인 새 구두, 직접 신었다면 잘 어울렸을텐데’”(한겨레) 등 현장에서 나온 안타까움을 전했다.

진보 정치인이었던 그의 대한 태도 역시 언론마다 차이를 보였다. 그의 죽음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그의 삶을 조명한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설을 내지 않았다. 27일 한국일보 황상진 논설실장은 진보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상대 진영을 포용할 줄 아는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며 ‘보수진영에도 노회찬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론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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