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서OO, 머니투데이 더리더 박OO, 뉴데일리 이OO, 한국경제(한경닷컴) 이OO, 국제신문 전OO, 서울신문 이OO, 중앙일보 배OO, 국민일보 백OO 기자, 싱글리스트 강OO, 뉴스 1, 스포츠한국, 스타뉴스는 7월 11일부터 7월 12일에 거쳐 ‘김지은 호텔 잡았다’ ‘본인이 직접 호텔 예약’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지난 12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판 과정에서 나온 ‘도넘은 보도리스트’를 공개했다. 7월11일 해당 사건의 4회째 공판이 있었고 피고인 측 증인신문이 있었다. 언론은 해당 공판에서 피고인 측 증인들의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공대위가 꼽은 “김지은 호텔 잡았다” 류의 보도 외에도 “김지은, ‘비서마누라’로 불렸다”, “혼인경험, 고학력” 등의 보도도 나왔다. 

▲ 지난 7월13일 오전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회원들이 ‘증인 역고소’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7월13일 오전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회원들이 ‘증인 역고소’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보도의 특징은 단순히 선정적 기사와는 또 다른 2차피해를 낳는다. (물론 선정적 보도 역시 큰 문제다.) 선정적 보도의 극단적 사례가 중앙일보의 ‘안희정 첫재판, 김지은이 제출한 산부인과 진단서엔’, 국민일보 ‘원치않은 성관계에 의한 출혈, 김지은 산부인과 진단서 들여다보니’, 조선일보 ‘원치않은 성관계로 출혈, 산부인과 진단서 제출한 김지은씨’와 같은 기사라면, “김지은 호텔 잡았다” 류의 보도는 안희정 측의 ‘전략’ 즉, 피해자를 ‘거짓말하는 사람’, ‘안희정을 좋아한 사람’으로 몰고가는 것에 조력했다는 것에 있다. 

26일 서울 마포구 창비빌딩에서 열린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피해: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긴급토론회에서는 이런 보도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 2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창비 서교빌딩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2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창비 서교빌딩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김지은 호텔잡았다”와 같은 보도에 대해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공적인 업무를 사적화 시키고 개인화시켜서 악의적인 프레임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비서 업무에서 숙박 예약 등은 통상적인 업무인데도 이를 마치 ‘합의한 성관계’, ‘비밀스런 관계’의 뉘앙스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를 한 기자들은 “재판에서 나온 말을 쓴 것뿐”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이런 사건 보도에서는 ‘관행’이 아니라 ‘저널리즘 윤리에 기반을 둔 판단’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재판은 검찰 측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재판 전 과정의 비공개를 요청했으나 재판부가 피해자 증언만 비공개하기로 한 것이어서 양측의 입장을 균형있게 보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의 “재판에서 나온 말을 보도한 것뿐”, “사실 보도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변명은 성폭력 보도에 대한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수아 교수는 “성폭력 가이드라인이 이번 재판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며 “기자들이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재판 보도’로 여기면서 성폭력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은 △언론이 일방적 주장을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얻은 공식적인 정보라 해도 보도가 필요한 내용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슈가 된 사건의 피해자라고해서 사생활 영역까지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희정 재판 보도에서 이 가이드라인이 지켜진 보도는 몇이나 될까.

▲ 한국기자협회 성폭력사건 가이드라인의 일부.
▲ 한국기자협회 성폭력사건 가이드라인의 일부.
특히 김수아 교수는 피고인 측 증인들의 증언을 그저 따옴표 안에 넣고 헤드라인을 만든 언론에 “언론은 피고인 측의 말에 초점을 두고 이를 ‘사실’이라 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사실’은 재판에서 그 말이 있었다는 것이지, 그 말 자체가 진실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수아 교수 말에 따르면, 만약 김지은씨가 호텔을 잡은 것을 헤드라인으로 쓰려고 한다고 해도 “김지은 호텔 잡았다”가 아니라, “안희정 측 증인 ‘김지은이 호텔 잡았다’고 말했다”가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증인들의 증언을 따옴표 안에 넣고 전달하는 보도에 대해 김수아 교수는 “이런 보도는 ‘피해자가 피고인을 좋아했지만 뜻한대로 되지 않아 모함하는 여성’이라고 주장해 면죄를 받으려는 피고인의 전략을 ‘사실’로 중계해 줌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가속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런 증인들은 안희정 측 측근으로 구성됐었기 때문에 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안희정 측을 조력하는 기사가 된다. 

배복주 상임대표는 “피고인 측에서 채택한 증인들의 적절성도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피고인 측 증인은 피해자가 방송에서 피해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합의된 성관계’라고 말한 비서실장, 피해자를 성희롱하고 성추행한 가해자,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댓글을 수백개 단 후임수행비서, 피고인의 배우자였기 때문이다. 

배복주 상임대표는 “이들은 피해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증언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인물들이고 증언은 대부분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피해자 비난이었다”며 “이런 이들의 증언을 채택한 것도 문제고 공개로 진행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은 거기에 더해 이런 증인들의 증언을 그대로 보도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안희정 측 주장들이 그대로 보도되는 것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다고도 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조항을 보면 “정당한 사유 없이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않은 내용”을 금지하고 있고, 제23조(범죄사건 보도)에서는 “방송은 피고인, 피의자, 범죄혐의자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 범죄행위가 과장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증인들의 자의가 섞인 주장들을 그대로 중계하듯 보도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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