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좋은 토론에는 손석희와 노회찬이 있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이 당대 최고의 TV토론 진행자라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당대 최고의 토론자였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MBC ‘100분토론’에서 줄곧 진행자와 토론자로 만나며 2000년대 한국사회 토론문화를 선도했다. 노회찬 의원은 손 사장이 8년 넘게 진행한 ‘100분토론’에서 무려 32회 출연하며 최다 출연자의 타이틀 또한 갖고 있다.
훗날 세상에 알려졌듯, 손석희 진행자는 이명박정부의 MBC장악 시나리오에 의해 ‘100분토론’에서 쫓겨났다. 노 의원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었던 마지막 방송에서도 특유의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발언이 길지도 않은데 (손석희 진행자가) 자르고 그래서…. 개인적인 소원이 제가 사회를 보고 손 교수님을 토론자로 앉혀서, 가차 없이(웃음)…. 그게 제 소원이었는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노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난 23일, 손 사장은 ‘앵커브리핑’을 진행하지 않았다. 대신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의 생방송인터뷰를 내보냈다. 남은 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24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제목은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였다. 손 사장은 ‘비통한 자들, 즉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한다’는 미국 사회운동가 파커J.파머의 말을 인용하며 KTX 승무원들의 부당해고투쟁과 황상기씨의 삼성 직업병 투쟁을 “거대한 바위에 균열을 낸 계란”으로 비유한 뒤 노 의원을 향해 “그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전하려 했던 메시지 또한 계란을 쥐고 바위와 싸웠던 무모한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손 사장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그렇게 미련하고…또한 비통한 사람들은 다시 계란을 손에 쥐고 견고한 바위 앞에 서게 될 것인가”라고 말하며 앵커브리핑을 마쳤다. 평소보다 가라앉았던 그의 목소리가 슬픔의 무게를 짐작케 했다.
그렇게 최고의 진행자는 최고의 토론자를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