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크로스 오버’됐다. 한때 유료방송은 곧 케이블을 의미했으나 후발주자 통신3사의 IPTV에 추월당했다. 지난해 11월 말 IPTV가입자 수는 1422만 명으로 케이블 가입자(1409만 명)를 넘어섰다. 지상파의 채널 제공대가인 재송신 수수료 협상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케이블 업계는 ‘돌파구’가 절실하다.

지난 3월 취임한 김성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은 ‘제4 이동통신’ 진출을 선언하며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실에서 김 협회장을 만났다. 그는 연합뉴스 전신인 동양통신 기자 출신으로 국민일보 정치부장, 김대중 정부 국내언론1비서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비서실장, EBS 부사장을 역임했고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금까지 정부는 제4이동통신 공모를 7회나 추진했으나 그 어떤 사업자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케이블이라고 다를까? 김 협회장은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에 도전한 사업자들과 다르게 케이블은 전국에 지하, 전신주 등을 통한 망이 확보돼 있다. 92개 권역에 지역방송 인프라도 있다. 여기에 장비만 집어넣으면 통신 기지국 역할을 할 수 있어 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성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 김성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제4이동통신 허가를 받아도 전국에 대리점을 갖춘 통신3사와 경쟁이 쉽지 않다. 김성진 협회장은 “프랑스의 프리모바일 사례를 보면 2위 케이블사업자가 3위 통신사가 됐는데 그 배경에는 온라인 판매가 있었다. 우리도 90% 이상 온라인 판매를 하면서 오프라인 판매망 구축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했다. 그는 “케이블이 통신사와 경쟁에서 모바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핸드폰만 팔겠다는 건 아니다. 자율주행차 등에는 주파수가 필요한데 이 같은 신사업을 위한 B2B 모델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케이블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상대는 통신사다. 핸드폰이 없는 케이블과 달리 핸드폰, 인터넷, IPTV를 묶어 파는 결합상품 공세로 빠르게 가입자를 늘렸다. 과도한 현금 경품을 지급하는 데 케이블은 속수무책이다.

김성진 협회장은 ‘합산규제 연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합산규제는 IPTV, 케이블, 위성방송을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해 특정 사업자가 3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 2015년 3년 일몰로 도입하고 재논의를 할 계획이었으나 재논의 없이 지난달 일몰됐다.

“통신의 영향력이 크다. 특히 KT는 위성방송이라는 독점 사업자도 갖고 있다. 일몰 연장을 해 케이블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통합방송법을 제정해 반시장적 행위에 대한 사후규제 체계가 필요하다. 자본논리와 승자독식이 아니라 서비스 경쟁을 해야 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디어 산업은 공공성이 중요하지 않나.”

그러면서 김 협회장은 “물론 합산규제가 있던 3년 동안 케이블이 도대체 뭘 했느냐, 경쟁력 확보에 소홀했지 않느냐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며 “그동안 케이블업계는 IPTV가 치고 들어와서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이제는 지역성 강화, 4이동통신 등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콘텐츠 측면에서 케이블은 최근 지역별로 직접 운영하는 ‘직사채널’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 단위 허가인 케이블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방송이다. CJ헬로는 강원도 산불 당시 4일 연속 실시간 현장 중계를 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지방선거 때 개표방송에 나선 KCTV제주방송은 지역에서 최고 시청률 17.13%를 기록했다. CJ헬로 개표방송 평균 시청률은 1.23%로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 지역을 소재로 한 CJ헬로의 직사채널 프로그램.
▲ 지역을 소재로 한 CJ헬로의 직사채널 프로그램.

김 협회장은 “어떤 지역의 개표방송은 지상파, 종편보다 시청률이 잘 나오기도 했다. 시군구단위로 쪼개서 편성하기 때문에 밀착형이 된다. 광역단체 중심으로 개표하는 중앙에서 볼 수 없는 방송을 볼 수 있다. 재난방송도 지상파는 도중에 끊고 정규편성에 들어가지만 지역채널은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측면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신사라는 ‘적’이 ‘동지’가 될 수도 있다. 개별 케이블 업체들은 통신사발 인수합병 때문에 속내가 복잡하다. 박근혜 정부 때 SK텔레콤이 업계 1위 케이블 업체인 CJ헬로 인수합병을 추진했고, 최근 LG유플러스도 케이블업계와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정황이 나왔다. 사양산업 취급 받는 케이블업계 입장에서 인수합병이 곧 ‘출구전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김성진 협회장은 “시장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는 건 맞지만, 이게 맞다 아니다 판단할 일은 아니다”라며 “출구라는 건 ‘떠난다’는 전제가 있는데 케이블이 출구를 찾을 때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가입자가 있고 상당한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다.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케이블 점유율이 굳건하다. 우리는 통신사와 경쟁하며 발전하도록 하는 파트너지 먹고 먹히는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뜨거운 감자 ‘넷플릭스’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 협회장은 “한국에서 넷플릭스는 플랫폼보다는 콘텐츠 문제가 더 부각 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강력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지상파와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유료방송채널) 모두에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서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단, 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협회장은 최근 CJ ENM계열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해 넷플릭스와 300억 원 규모의 방영권 계약을 맺은 ‘미스터 션샤인’이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한국드라마가 스튜디오 실내 촬영 중심으로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분노, 사랑, 갈등을 다뤘다면 ‘미스터션샤인’은 웅장하고 스케일이 크고 글로벌한 소재를 다룬다. 이런 드라마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기존 드라마에 눈이 들어오겠나. 케이블업계도 투자, PP와 상생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 


케이블은 지상파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상파가 방송을 케이블에 내보내는 대가로 받는 돈인 재송신 수수료 협상이 올해 말 이뤄지면서 ‘분쟁’이 예고됐다. 경영난에 처한 지상파는 매번 가격 인상을 요구해왔다.

김 협회장은 지상파의 요구에 “케이블은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데 가격을 올려달라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문제는 우리와 IPTV의 입장이 같다. 협상력 우위에 있는 지상파의 의견이 아니라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가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들이 권고안을 마련하면 그걸 토대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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