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승객·승무원 115명을 태운 대한항공 KAL858기 실종 사건의 피해자 가족과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활동가들이 김현희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스스로를 폭파주범이라고 자백한 김씨를 고소한 것은 사건 발생 31년 만에 처음이다.

KAL858기 희생자 가족회 대표자인 김호순 회장과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본부의 신성국 총괄팀장(신부) 등 9명의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는 23일 김씨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들은 KAL858기 사건이 김현희의 폭파에 의해 발생했다는 국가안전기획부 발표가 객관적 증거 없이 김현희의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났다며 이후 2001년경부터 진상규명과 함께 김현희와 가족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김씨는 가족의 요구에 일체 불응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11월 이후 국정원과 국정원 진실위원회의 15차례 면담조사 요청도 거부했다.

KAL858기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들은 고소장에서 김현희씨가 이처럼 정부나 가족회·대책본부의 면담 요구는 모두 거절하면서도 종합편성채널 방송이나 인터넷 방송의 대담프로그램 등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여 가족회와 대책본부 활동가들을 ‘친북좌파’, ‘종북좌파’, ‘종북세력’,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 ‘이적행위’, ‘민족반역자들’, ‘국정원의 전위조직’, ‘조작설 선동’ 등으로 매도해 왔다고 밝혔다.

가족과 활동가의 고소장에 따르면 실제로 김현희씨는 지난 1월4일과 5일 각각 조갑제닷컴과 유투브에 『 [조갑제-김현희 대담①] 김현희, “나를 가짜로 모는 건 역사를 바꾸려는 범죄행위”』라는 제목의 대담 동영상에서 “2003년 좌파성향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때는 또 정부 차원에서 국가기관, 방송사, 이런 뭐 천주교 신부들, 뭐 시민단체까지 완전히 연대해서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런 가짜 만들기 몰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그러니까 그런 친북성향 단체들이 … (이 사건을 두고) 가짜다, 군사정권이 했다, 북한이 아니라는 식으로. … 그런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진짜 온갖 자유와 진짜 풍요를 다 누리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북한에 면죄부를 주려는 그런 행위를 하고 있잖아요? 그게 대한민국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그리고 한마디로 민족반역자들이에요”라고도 비난했다.

이를 두고 가족들과 활동가는 “우리가 정부를 상대로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했을 뿐 국가기관이나 방송사와 연대해 활동한 적이 없었고, 객관적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을 뿐 ‘가짜 만들기 몰이’를 한 적이 없었다”며 “가족회와 대책회의가 ‘친북성향 단체’라며 이념적으로 지탄을 받는 단체로 매도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우리를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 발언을 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김현희씨는 지난해 11월27일 VOA(미국의소리) 방송과 인터뷰 [KAL기 폭파 김현희 : “북한은 테러와 거짓의 나라…테러지원국 재지정 환영”]에서 “제가 아무리 진짜라고, 진실을 말해도 그들은 진실이 싫은 것 같습니다. 북한이 했다는 이 테러 진실이 싫고 북한을 이념적으로 옹호하고 싶은가 봅니다”라고 주장했다.

▲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KAL858기 가족회 및 진상규명 대책본부 관계자들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김현희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KAL858기 가족회 및 진상규명 대책본부 관계자들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김현희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AL858기 가족들은 “순수한 진상규명의 요구 활동을 사회와 대중들로부터 이념적으로 지탄을 받는 행위로 매도했다”며 “우리를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 발언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가 지난 2008년 10월 하순경 이동복에게 보낸 서신도 피해자 가족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장에 씌어있다. 이 서신에서 김씨는 대책본부를 ‘조작의혹을 부풀리는 정치성향의 단체’로 규정하여 여기에서 활동하는 고소인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대책본부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고소인들을 ‘국정원의 전위조직’이라면서 국가정보원의 사주를 받은 ‘시위와 선동 주도자’들로 매도했다고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들은 전했다.

“가족들이 만나자고 할 땐 거부하고 종편에 나와 가족 비방“

가족들은 김현희씨가 종편에 나와서도 허위사실을 주장해 자신들과 활동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썼다.

김씨는 지난 2014년 11월5일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의 “정용관의 시사병법” 제135회 ‘KAL기 납치 김현희 “盧정부서 날 가짜로 몰아”’라는 방송에 출연해 “노무현 정부가 이 사건을 뒤집으려는 그런 가짜 공작을 주도적으로 했다…2009년 3월 국정원 자체조사에서 시인했다. (노무현 정권) 청와대, 국정원, 경찰, 방송지상파 3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책위 다 함께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특히 “테러한 북한을 면죄부 주고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는 이적행위를 한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그런 진짜 의지로 사실 지금까지도 버티어 왔다”며 “(KAL858기) 대책위라는 곳은 한 7~8개 종북좌파 단체가 들어가 있습니다. 저를 가짜 만들어서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완전히 종북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현희씨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희생자 가족들의 유대강화와 사건 규명 활동을 하고자 하는 업무를 방해해왔다고 가족회 등은 비판했다.

KAL858기 희생자 가족회와 진상규명 대책본부는 23일 기자회견에서도 “우리는 종북세력도 아니며, 북한을 옹호하고 대변하거나, 이적행위를 한 적이 없다. 민족반역자들도 아니며 조작설 선동을 한 적도 없다. 국정원의 전위조직이나 전위세력은 우리에게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이것이 그동안 김현희 주장에 대한 우리 가족회와 대책위의 명백한 대답”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가족회와 대책본부는 김현희는 적폐세력에 부화뇌동한 70년 수구세력의 대변자이자, 분단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어둠의 세력의 끄나풀이라고 단호히 규정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공격하고 매도해 진상규명 운동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온갖 방해세력의 책동과 도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반드시 그의 입에서 이 사건의 진상을 실토하게 하는 우리의 바램이자 진상규명 운동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고소대리인 채희준 변호사 “김현희 끊임없이 가족 비방 진상규명 방해”

한편, 이날 희생자 가족과 활동가의 김현희 고소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채희준 변호사는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김현희씨의 끊임없는 가족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진실 규명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31년만에 고소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1987년 12월 김포공항에서 압송, 88년 안기부 회견, 91년 법정, 93년 강연, 95년 책 발간 회견, 2009년 회견하고 있는 김현희씨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연합뉴스
▲ 1987년 12월 김포공항에서 압송, 88년 안기부 회견, 91년 법정, 93년 강연, 95년 책 발간 회견, 2009년 회견하고 있는 김현희씨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연합뉴스
채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기 국정원 진실위에서 김현희를 조사하지 않고도 과거 안기부 발표와 동일한 결론을 내는 바람에 가족들과 활동가들 모두 좌절했다“며 ”이후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김현희가 종편, 인터넷방송, 조갑제 닷컴 등에서 더 열심히 떠들었다. 그 때문에 가족들은 더 고통스워했다“고 털어놨다.

채 변호사는 이번 김현희씨에 대한 고소를 통해 진상규명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사건이라 김현희 입장에서는 허위가 아니라는 항변을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가족회와 대책본부가 주장한 내용이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년 가까이 가족회와 대책본부가 김현희씨를 만나고자 했으나 거부한 것을 두고 채 변호사는 ”가족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면담하자는 것이다. ‘당신 자백에 많은 의문을 갖고 있으니 의문에 대해 답을 해달라’는 요구이다. 그런데 김현희는 자신을 가짜로 모는 사람과 얘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며 “자신이 죽였다는 사람의 가족인데,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서 답변해줘야 하는데, 계속 피하는 것을 보니 더욱 더 가짜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해 채 변호사는 “가족회는 여전히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 자신들의 가족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불분명하며, 유품이나 시체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행기 동체라고 해서 몇가지 건져올렸는데, 국과수는 폭발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후 국정원이 그것마저 폐기했다”고 평가했다. 채 변호사는 “향후 대책본부에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준비중이며, 안기부가 발표한 이른바 ‘무지개공작’ 문건의 미발표분을 공개하라는 소송이 현재 진행중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현재 JTBC와 KBS가 심층취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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