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의원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드루킹’ 김동원씨 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노 의원은 유서에서 “2016년 3월 4000만 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노 의원이 남긴 마지막 공적 발언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와 KTX 승무원들의 직접고용 소식에 대한 감사와 축하 메시지였다.

24일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는 대부분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인 사건을 담았다. 다음은 1면 머리기사 제목.

경향신문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길”
국민일보    진보정치 ‘패닉’… 아이콘을 잃다
동아일보    “경공모 돈 받았다 어리석은 선택 책임”
서울신문    검은돈, 정치인 그리고 도덕성
세계일보    불법자금 의혹에 꺾인 ‘진보 아이콘’
중앙일보    “4000만 원 어리석었다” 노회찬 유서 남기고…
한겨레    진보정치, 아이콘을 잃다

이날 조선일보는 ‘‘경제 버팀목’ 반도체, 너마저…’를 머리기사로 세웠고 한국일보는 ‘양승태‧박병대 출국금지’를 머리기사로 세웠다.

24일자 종합일간지 대다수는 고인을 애도했다. △경기고 시절 유신 반대 학생시위에 앞장서고 △대학 때 용접 기술을 배워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며 △1992년 대선 이후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노회찬 표 ‘촌철살인 어록’으로 유명세를 타고 △‘삼성 X파일’ 관련 ‘떡값 받은 검사 명단’을 공개한 뒤 의원직이 상실되는 등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중심에 있던 노 의원의 정치인생 궤적을 돌아봤다.

▲ 24일자 한겨레 2면
▲ 24일자 한겨레 2면

▲ 24일자 서울신문 2면 사진기사
▲ 24일자 서울신문 2면 사진기사

반면 고인이 죽음을 맞는 순간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하는 보도도 있었다. 중앙일보는 기사 ‘노회찬, 방미 전날 단골 이발소 들러 “별거 아냐, 해결될 거야”’에서 경비원 김아무개씨와 주민 박아무개씨가 당시 소리와 형태를 묘사하는 발언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노회찬 의원이 생전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에 ‘투신 전날, 담담한 표정의 노회찬’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1면에서는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광주동성고 학생들이 우승한 뒤 물을 뿌리며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을 사진기사로 실었다. 이는 노회찬 의원에 대한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와 1면 기사에 배치된 노 의원 사망 기사를 고려했을 때 인간적 감수성이 부족한 지면 편집이라 볼 수 있다. 

▲ 조선일보 7월24일자 1면.
▲ 조선일보 7월24일자 1면.

한겨레는 ‘특검, 여론조작 본류 대신 곁가지 수사하다 난관 부닥쳐’ 란 제목의 기사에서 특검 초반 수사가 본류와 관련 없는 노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여야가 합의한 수사 대상은 △불법 여론조작 △여론조작 수사에서 밝혀진 관련자 불법행위 △드루킹의 불법 자금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사건 등”이라고 짚었다.

서울신문도 ‘특검 “예기치 않은 비보”…드루킹 측근 소환 취소 등 수사 타격’에서 “일각에선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향하던 특검 칼끝이 노 의원을 향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며 “살아있는 권력을 피하면서 노 의원 쪽으로 수사력을 집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 주장을 인용했다.

다수의 종합일간지는 이날 사설을 통해 노 의원을 추모했다. 한겨레는 ‘‘진보정치 상징’ 노회찬 의원의 죽음 앞에서’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 의원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했던 그를 불법의 사슬로 묶어버린 게 바로 한국 정치의 현실이기에, ‘인간 노회찬’을 비난하기란 쉽지가 않다”고 밝혔다. 또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이 지금과 같은 지지를 받으며 뿌리내린 중심엔 항상 노회찬 의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노회찬 의원의 충격적인 죽음…이런 비극 다신 없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 의원의 금전수수가) 유서 주장대로 ‘어떤 청탁이나 대가와 무관한 자금’의 처리 절차를 위반한 정도라면 범법의 정도가 위중하다 할 수는 없다”며 “대형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확정되지 않은 혐의가 유출되거나 기정사실처럼 회자되고 당사자가 결백 증명을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노회찬 의원 비보’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 의원의 유서를 보면) 결국 평생을 헌신해 쌓아온 진보정치의 진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셈”이라며 고인의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짐작했다. 이 신문은 “‘정상적 후원 절차를 밟지 않은’ 정치자금을 받은 게 ‘불법 정치 자금 수수’로 공개되자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을 터”라고 적었으며 “그런 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일방으로 피의 사실이 공표되어 사전에 인격살인을 당하게 되는 후진적 수사관행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일방의 피의사실공표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껏 언론이 검찰 발 피의사실 공표에 가장 앞장서오며 ‘단독’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 24일자 경향신문 사설
▲ 24일자 경향신문 사설

서울신문은 ‘‘드루킹 불법자금 의혹’ 노회찬의 안타까운 죽음’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사회에 진보세력에만 극히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닌지 의문도 있다”고 밝힌 뒤 “현행 정치자금법에도 맹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역 국회의원은 평소에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치신인이나 낙선한 국회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가 되는 6개월 전에는 후원금을 받을 통로가 막혀 있다는 것.

중앙일보도 ‘안타까운 노회찬의 죽음이 남긴 숙제’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현실적인 정치자금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후원회를 통해서만 모금할 수 있는 현행법은 특히 인맥이 부족한 소수당 의원과 의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 신인들에게는 지극히 불리한 제도”라며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치 신인들이 친구나 친척 등의 도움을 받아 활발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문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중앙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노 대표의 죽음으로 인해 드루킹 특검이 영향을 받거나 위축돼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노 의원의 사망과 관련해 사설을 내지 않았다. 대신 조선일보는 1면 코너 ‘팔면봉’을 통해 “노회찬 의원, 투신 전 마지막 남긴 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진보 스타 정치인도 못 피해간 정치자금의 유혹”이라 평했다. 동아일보는 논설위원 칼럼 ‘노회찬의 비극’에서 “노 의원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그렇다고 드루킹 수사가 흔들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이 비리와 부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정치권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고 밝혔다.

▲ 24일자 조선일보 1면
▲ 24일자 조선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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