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수습 기간이 나았어요. 그땐 내가 노동을 하고 있다고 인정은 해줬으니까.”

한 지역방송사 막내 기자 A씨는 휴일인 주말에도 새벽 5시40분에 일어난다. 지역 내 각 소방서와 경찰서 지구대에 전화를 걸어 사고가 발생했는지 확인한 뒤, 이 내용을 6시에 선배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사건체크’ 보고는 밤 11시까지 이어진다. 1시간 간격으로 총 18번 같은 일을 한다. 회사가 휴일로 치는 날에도 하고, 평일 출근 전과 퇴근 후에도 한다. 수습 기간은 진작에 끝났지만, A씨는 막내 기자라는 이유로 이 일을 1년 가까이 떠맡고 있다.

국내 지역방송사에서 막내 기자에게 업무 외 시간에 전화 보고 등 취재를 시키면서도 근로로 인정하지 않는 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법한 관행은 지역 민영과 공영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퍼졌다.

A씨는 이 ‘사건체크’를 한 달에 격주 주말(4일)을 제외하고 매일 한다. 만약 사건이 생기면 현장 화면을 구해 선배에게 전달해야 한다. 본인 이름으로 단신 기사를 쓰고, 선배 지시에 따라 직접 출동해 리포트도 한다. A씨는 “주말에 (방송사 위치한) 지역 밖을 벗어날 수 없다. 지역이라 이동하려면 운전을 해야 하는데, 1시간 마다 전화체크를 해야 하니 불가능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 지역방송사의 막내급 기자들은 근로시간을 인정 받지 못한 채 주 100시간 안팎 노동에 시달린다.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입니다) ⓒgettyimagesbank
▲ 지역방송사의 막내급 기자들은 근로시간을 인정 받지 못한 채 주 100시간 안팎 노동에 시달린다.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입니다) ⓒgettyimagesbank

A씨 업무를 근로로 인정하면, A씨 회사 업무 체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A씨의 실제 노동시간은 하루 18시간, 주 평균 108시간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A씨 회사가 정한 기본 근로시간도 주 45시간(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이다. 그러나 회사는 막내 기자에게 업무를 떠맡기는 비공식 관행을 지속해왔다. 회사는 A씨가 하는 전화 취재와 보고·현장화면 구하기·단신기사 작성·TV리포팅 가운데 TV에 얼굴이 나오는 리포팅만 근로로 인정한다. 그나마 리포팅을 하고도 추가근로수당이 아닌 유류비만 받는다. A씨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시행한다.

다른 지역방송사에 다니는 B씨는 “막내가 24시간 대기조”라고 말한다. B씨는 ‘주말·평일 사건체크’에 더해 24시간 제보전화도 책임 지고 응대한다. “선배가 해야하는 일도 막내 기자가 떠맡는 체제예요. 막내가 이 생활을 버티면, 선배들은 저녁시간이 보장되니까.” 또다른 막내 기자 C씨도 동기와 주말 ‘사건체크’를 전담해, 이틀 가운데 하루는 무조건 붙박이 신세다. C씨는 “이곳 기자는 리포트 꼭지 5개, 단신 등 소화해야 할 리포트 양이 있다. 여기에 막내들은 사건체크 보고까지 한다. 주말에도 마찬가지니, 개인 취재는 엄두도 못 낸다”고 토로했다.

A씨와 B씨, C씨는 모두 회사 당직 순번이 따로 없다. 선배 기자는 돌아가며 당직을 하지만, 최저연차 기수는 매 주말 자리를 지키는 게 당연한 분위기다. “당직표가 나오면, 선배 이름만 적혀 있고 막내들 이름은 없어요. 저희끼리 직접 자기 차례를 (상의해) 써 넣어요. 선배 당직자는 당직수당을 받는데, 막내는 아예 ‘당직자’가 아닌 거죠.” B씨가 말했다. 이들은 언제까지 ‘막내 노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규모가 작은 지역 방송사는 정기 공채를 하지 않고 필요 시 수년에 1차례 신입을 뽑는다. C씨는 “선배들에게 들은 바로는 앞으로 4년 후에나 신입 공채를 한다”고 했다.

▲ 지역방송사의 막내급 기자들은 근로시간을 인정 받지 못한 채 주 100시간 안팎 노동에 시달린다.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입니다) ⓒgettyimagesbank
▲ 지역방송사의 막내급 기자들은 근로시간을 인정 받지 못한 채 주 100시간 안팎 노동에 시달린다.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입니다) ⓒgettyimagesbank

B씨는 “나라는 인력이 소모품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소모품은 닳아 없어진단 생각이라도 하는데, 막내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인력으로 (회사가) 취급한다.” B씨는 “폭언이 겹칠 때도 있다”며 “회사 생활이 영혼을 갉아먹는 느낌이다.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정도(에 이른다)”고 털어놨다. A씨는 “전화체크를 하는 효용성이 전혀 없다. 통신사도 아니고, 방송기사 뉴스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쓸모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이들이(A·B·C씨) 하는 업무를 실근로시간으로 쳐야 한다”며 “이들 사례는 명백한 위법”이라고 밝혔다. 김유경 노무사는 “최근 연합뉴스는 52시간 근로 상한제에 들어가면서 부서 단체톡방에 지시할 수 있는 시간대를 아예 정해놓았다. 심지어 그 이외 시간에 지시하면 시간 외 근로로 인정한다는 지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례는) 기자실 등에서 대기하다 선임이 지시를 하면 어딘가 가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심지어 거부할 수 없는 지시이므로 명확한 업무 지시”라는 것이다.

김 노무사는 또 “이 분들이 1시간마다 전화로 20분 정도 업무를 한다면, 나머지 40분도 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당연히 주 68시간을 넘어가고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포괄임금제를 시행해도, 주당 연장근로 한도를 12시간 넘어가면 그 자체로 위법”이라고도 지적했다.

이들 막내 기자는 노동조합 선배들에게 문제 제기도 해봤다. 세 기자는 “선배들에게 이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전혀 없다”고 입을 모은다. A씨는 “노조 안에서도 저연차 기자 근로인정은 사각지대”라며 “선배들은 인정되는 근로시간을 가지고 싸우지만, 아예 근로로 인정되지 않는 문제는 논의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C씨는 “선배들도 문제를 알고 인정하지만, 경영진과 마찰이 두려워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노동조합 선배들에게 호소해 봤지만, ‘모든 기수 선배들과 합의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이미 법에 정해진 것을 왜 합의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B씨는 “(선배 기자들이) ‘기자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방송기자에게 신문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이유가 있다’고 정당화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노동조합은 지방방송사 저연차 사원이 처한 노동조건을 공식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최정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지방방송사 저연차 기자 노동시간과) 관련해 따로 조사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며 개별 언론사 노동조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노조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제도를 안착시키는 데 집중하느라 지역방송사를 조사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은 상황이다.

최정기 정책국장은 “해당 지부가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노조 중앙에서 조치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정책국장은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바뀌는 흐름이 있다. 당초 회사 구성원들이 인력 충원 요구를 해야 하는데, ‘나는 고생했으니 후배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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