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98년 울산의 현대자동차 노동자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그녀들을 떠올렸다. 얼굴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98년,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하던 생산직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밥을 해먹이던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삭제시키면서 회사와 ‘타협’에 이르렀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밥·꽃·양’이라는 영화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밥을 짓던 그녀들이 어느 순간 투쟁의 꽃이었다 희생양이 되어, 밥 먹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3년. 그녀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가?”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이야기로 우리가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한다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왜 여성노동자가 먼저, 그리고 그렇게 쉽게 삭제되는가. 왜 그녀들이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정리해고 되어야 하는가(‘밥·꽃·양’ 제작 일지 중에서).” 그런 질문들이 이 영화 속에 있다. 20년을 훌쩍 넘어 지금 이 공장의 그녀들에게서 같은 질문을 듣는다.

“노예같이 15년, 16년 일해 온 자리를 어떻게 내놓아요? 왜 여자들 자리를 빼앗냐고요.”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한탄에 가깝다.

▲ 기아자동차 여성 비정규직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강제전적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뒤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 기아자동차 여성 비정규직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강제전적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뒤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여성들이 설 땅이 없다

원래 없었다고 했다. 정규직 제조생산공정에 여성들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왜?”라고 묻지 않았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아차에서는 여성은 안 뽑는대요. 원래부터 정규직(제조생산공정)에 여성들은 없었다는 거예요. 원래 그런 게 어딨어요? 헌법도 잘못되면 뜯어고치는 세상인데.”

기아자동차에 입사한 지 올해 11년째인 조수현(가명)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는 정규직에 여성을 뽑았더라면, 여성도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갈 곳은 사내하청자리 뿐이었다고, 들어가보니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여성들이 설 땅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고, 그녀는 한탄하고 있다.

기아현대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모두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나온 후, 정규직이 되고 싶으면 각자 소송을 걸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선심쓰듯 특별채용이라는 미끼를 던졌다. 법원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회사는, 특별채용에 합격한 사람에 한해 ‘신규채용’하겠다고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특별채용에 합격된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소송(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길고 지난한 소송을 견디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별채용에 응시하고 있다. 회사를 압박할 수 있는 불법파견 소송 판결을 받아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둘 줄어가고 있다. 회사는 근속을 전부 인정해줘야 하는 정규직 전환 대신 특별채용이라는 전략을 쓰면서 정규직 전환에 들어갈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특별채용에 합격된 노동자들과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을 가르면서 노동자들을 파편화시키고 있다. 비용도 절감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 결집력도 약화시키니 회사로서는 1석 2조의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회사의 꼼수조차 그간 함께 투쟁해 온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여성들은 회사의 시나리오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 ‘선택’된다는 것은 누군가는 ‘선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년 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공정을 떠맡았다. “힘들고 더러워서 아무도 안 하려는 자리”는 월 50만원, 60만원에 외주화되었다. 값싸고 해고가 쉬워지자 여성들이 대부분인 공정도 생겼다. 제조생산직에 여성을 들이지 않는다던 회사는 값싸고 해고가 쉬운 생산직 비정규직 자리에 여성들을 들였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해고였어. 겨울엔 난로 하나를 안 줘서 쓰레기봉투 까만 거 뒤집어쓰고 일했다니까. 참 나, 그런 것 생각하면. 노조 없었을 땐 그런 세월을 살았어.”

박소은(가명)씨는 자신이 처음 공장에 들어왔던 17년 전을 그렇게 회상한다. 그녀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면서 ‘힘들고 더러운 공정’의 복지를, 노동강도를 개선시켰다. 원래부터 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줄여나갔듯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봉투 뒤집어써가며 일했던 박소은씨의 자리엔 지금 근속이 높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와 일하고 있다.

“지금 비정규직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공정들은 남성들조차 힘들어하는 공정이었어요. 예를 들어 여성들이 많은 품질검사 부서 같은 곳은 품질을 완벽하게 검사를 해야 하거든요. 놓치는 부분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정규직들이 기피하는 공정이었던 거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지회 박찬진 여성부장은 지금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육체적 피로도가 덜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정’은 원래부터 육체적 피로도가 덜한 공정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정 중에 완성차의 엔진을 품질 검사하는 공정이 있었어요. 자동차 앞면의 무거운 본네트를 들어 올려서 검사를 해야 했고 남성 정규직들이 기피해서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이 이 업무를 맡아서 했죠. 예전에는 본네트 여는 게 수동이어서 그 무게를 여성 노동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고 노동강도가 높아 어깨 물리치료 받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성능이 좋아지면서 스위치를 눌러 문을 열면 본네트가 자동으로 쑥 올라가요. 업무가 쉬워져서인지 그 공정을 몇 년 전에 정규직 공정으로 가져가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힘들게 일 해온 공정을 빼앗기게 되었어요.”

투쟁해서 얻어낸 결과가 고스란히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넘어가자, 그 업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식농성을 했다. 그녀들에겐 고용과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20년 전에는 ‘육체적 피로도가 높아’ 아웃소싱 되었던 공정은 여성노동자들의 자리를 삭제하면서 정규직의 자리로 인소싱 되었다. 그리고 지금, 특별채용으로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택되면서 선택되지 못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리를 잃고 있다.

선착순으로 삭제되는 여성들

기아차는 최근까지 특별채용의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해왔다. 지금까지 790명의 노동자들이 신규채용되었지만, 그 중 여성노동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하청업체 공정들이 인소싱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정규직 특별채용으로 여성들을 뽑지도 않으니 선택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십수년 일해 온 일자리를 빼앗기고 강제전적 당했다.

그녀들은 강제전적을 당하면서도 ‘선착순’에 내몰렸다. 어차피 정규직은 될 수 없으니 빨리 전적을 가야 조금 더 쉬운 자리로 갈 수 있다고 회사는 그녀들을 협박했다. 회유와 협박에 못이겨 전적을 가보니, 15년을 일해온 공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소한 공정인데다,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맡게 되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박찬진 여성부장은 말한다.

“풀 뽑아가면서 공장을 같이 만든 분도 있어요. 정년이 다 되셨는데도 싸움을 멈추실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억울하신 거야.”

비정규직 라인이 정규직 라인으로 전환되는 만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기아자동차 하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14년간을 일해 온 안수현(가명)씨는 일하던 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해 관절 수술을 하고 병가 및 산재요양 중이었다. 병가를 마치고 현장에 복귀해보니 자신이 일하던 공정이 원청과 계약해지되면서, 안수현씨는 이미 다른 업체로 강제전적이 된 상태였다. 전적된 업체는 수술한 부위에 무리가 올 수 있는 공정이어서 통증과 스트레스로 수면장애가 발생한 상태다.

“이 통증은 저밖에 모르잖아요. 먹고 살기 급급해서 낫지도 않은 상태로 출근하긴 했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너무 막막해요.”

기아자동차에 들어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지 17년째인 박소은(가명)씨는 16년 동안 ‘랩 공정’에서 일을 했다. 최근 특별채용 등 회사가 사내하청 업체를 정리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운전을 하는 업체로 강제전적 되었다. 16년 동안 한 공정에서만 일해 온 그녀는 자신이 운전을 하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녀가 전적을 간 업체에는 20~30대 남성노동자들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처럼 강제전적당한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업체에서는 하루에 4사람이 한 팀이 되어 완성차 600대를 옮겨놓아야 한다. 한 사람당 140대에서 150대를 옮겨야 하는 꼴이다. 1, 2분 정도 운전해 나간 후 차를 두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걸어가야 한다. 그 일을 하루에 140번 하는 것이다. 그걸 주야간 교대로 종일 하고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되어서 밥도 못해먹는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은 50대 후반이지만, 60대 중반의 언니들도 전적을 당해 같이 일하고 있다고 있단다.

“지난 겨울 전적을 갔는데, 지난 겨울이 또 얼마나 추웠어요. 눈이 오고 얼음이 어는데 여기는 염화칼슘 같은 거 못 뿌린다는 거예요. 차가 녹이 슨대, 그거 뿌리면. 그래서 꽝꽝 언 채로 일을 하는 거야. 운전을 할 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너무 주니까 알이 배겨요. 걸어서 돌아올 때도 미끄러우니까 너무 위험하잖아요. 실제로 넘어져 산재를 당한 65세 언니도 있어요.”

그녀가 들어온 자리는 원래 젊은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던 자리였단다. 그곳에서 일하던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특별채용에 합격하여 나갔다고 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자리를 빼앗기고,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되어 나간 자리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가 서울 세종로청사 앞에서 여성 비정규직 차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가 서울 세종로청사 앞에서 여성 비정규직 차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앞이 안 보여요. 죽지 못해 살아요, 그냥.”

강제전적을 앞두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생소한, 혹은 힘든 공정으로 가게 될지 몰라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다.

“일이 손에 안 잡혀요, 불안해서.”

비정규직 투쟁의 산 역사,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20년간 우리가 해온 것은 뭐예요? 왜 우리의 역사를 지워버려요? 나이 먹은 제가 싸우고 있잖아요. 제가 산 역사예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조수현씨(가명)은 이렇게 소리친다. 1대 1로 인터뷰를 진행했음에도 그녀는 마치 세상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속을 우렁우렁 울려가며 이야기한다. 목소리에 핏대가 올라있다. 비정규직이어서, 여성이어서 그간 오래 설움 당하며 싸우고, 해고당하고 또 싸우며 만들어온 현장이다. 그녀가 이야기하듯 그녀들 모두가 산 역사다.

“우리는 이름이 아줌마였어요. 아무개씨가 아니라 아줌마요. 나는 조수현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그런데 공장에서 일할 때는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있었다니까요.”

이름을 잃으면서 일해 온 결과가 이것이라니. 그녀들의 목울대의 핏대는 그 지난하고도 치열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무리 핏대를 올려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는 양, 세상은 20년간 싸워온 그녀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다. 마치 여성들은 원래부터가 비정규직이었던 양, “원래가 그렇다”, 하고 회사는 그녀들을 꾸짖는다.

그녀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며 회사의 탄압에 대해 “원래 그런 것이란 없다”고 소리쳤다. 그 결과 지난달 28일, 기아차 특별채용 합격자 명단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26명이 포함됐다. 기아차는 애초 채용하겠다고 한 180명 이외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추가로 뽑았다. 박찬진 여성부장은 이 추가 채용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가 아직 마련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여론의 뭇매에 못 이겨 회사가 부랴부랴 집어넣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조립 라인에 투입되어야 할 인원이 180명이었어요. 특별채용인원도 그 데이터에 맞는 180명이었어요. 그런데 합격 발표를 지연시키면서 여성 26명을 추가로 뽑은 거죠. 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뽑힌 거예요.”

이후 이 여성들이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갈지 현장엔 소문만 무성하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지회는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을 회사에 요구하며 특별채용에 응시하지 말고, 함께 투쟁하자고 조합원들을 설득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채용에 응시하여 합격한 조합원들이 있다. 하지만 남은 조합원들은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조수현씨도 그랬다.

“사람인지라 응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죠. 심지어 정년이 2년밖에 안 남은 사람도 이번에 특별채용 응시해서 됐어요. 오죽했으면 2년밖에 안 남은 사람이 응시해서 됐을까요. 얼마나 비정규직이라는 걸 떼보고 싶었으면 응시를 했을까요.”

박찬진 여성부장 역시 이 모든 것이 회사가 만든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신규채용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여전히 우리의 동지”라고 그녀는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충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를 빼앗아가면서 해소하기 보다는, 회사측에 노동강도를 완화할 수 있는 설비 충원, 인원 충원을 요구해야 맞는 거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내 자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마땅한 거예요. 그 마땅한 것을 우리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요.”

박찬진 여성부장의 말대로 지금 일 하는 자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여성들을 위한 화장실, 복지시설 등을 다시 마련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이번에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기 위한 작은 움직임도 만들어가고 있다 했다.

“작은 힘이긴 한데 하나하나 해보려고요.”

조수현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의 인권이라는 거는 이렇게 함부로 쥐락펴락할 수 없는 거예요. 저 목소리 냈다고 자른다 그러면 나 또 싸워. 저 이제껏 투쟁 좀 했어요. 날 뭐 어쩔거야.”

그녀는 우렁우렁 소리쳤다. 너털웃음소리에도 힘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이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산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녀들은 그 역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치킨게임의 딜레마, 해답은 간단하다

한 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치킨게임의 딜레마를 끝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게임의 참가자가 서로를 향해 겨눈 총을 게임의 룰을 만든 자에게로 향하면 된다. 게임의 룰을 박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게임대 위에 정규직 남성노동자들만 오르게 될 것이다. 지금 자본은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겨누게 하지만, 나중에는 정규직 남성노동자들 각각 총을 쥐어주고 게임대 위에 세울 것이다. 회사는 계속해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역사는 이미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나.”

밥꽃양의 말미에 떠오른 물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밥꽃양은 역사다. 여성노동자들의 자리가 누구보다 먼저 지워졌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144명의 여성노동자들을 앞세워 해고시켰지만,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라인 밖의 노동자들이 먼저, 그리고 라인 안의 노동자들이 다음으로 해고의 위협은 계속되어 왔다.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144명의 여성노동자들을 내친 것이 아니라, 144명의 훌륭한 투쟁 동력을 잃은 것이다. 거대한 자본에 맞서 우리가 믿을 것은 한명이라도 더 어깨 기대고 같이 투쟁할 동료들이다. 144명을 잃고, 다음엔 1000명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10000명을 잃을 것이다. 나중엔 누구와 함께 싸울 건가? 이렇게 동료들을 잃는 방식으로는 살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원하청 연대는 그냥 나온 구호가 아니다. 누구도 치킨게임의 게임대 위에 오르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것이다. ‘최선’은 그렇게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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