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대검찰청 성폭력 수사매뉴얼 중 성범죄 피해자에게 무고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고소사건 수사를 중단토록 한 매뉴얼 개정이 헌법 위반이라는 국민청원에 헌법 위반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다. 청와대는 무고죄 특별법 제정 국민청원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무고죄 형량이 높고, 악의적인 무고사범에겐 엄중처벌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청원은 성폭력 사건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생길 경우 법적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5월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개정해 성폭력 사건 수사 종료까지 원칙적으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무고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고소사건 수사를 중단토록 했다. 지난 3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 등 형사소송절차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라고 정부에 권고했고,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는 권고에 따라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개정했다.

이에 국민청원 게시판엔 성폭력 수사매뉴얼이 헌법상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제27조 제3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는 제37조 제1항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며 개정에 반대한다는 주장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글에 21만7143명이 동의했고 20만명이 넘어 국민청원 의무 답변 게시물이 됐다.

답변자로 나선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19일 성폭력 수사매뉴얼에 대해 “통상 모든 형사 사건은 원 사건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정한 이후 무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성폭력 사건에는 미투 피해자의 2차 피해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별히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7월19일 오전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무고죄 특별법 제정’, ‘성폭력 수사 매뉴얼 관련’ 청원에 답변자로 나섰다. 사진=청와대 영상 갈무리
▲ 7월19일 오전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무고죄 특별법 제정’, ‘성폭력 수사 매뉴얼 관련’ 청원에 답변자로 나섰다. 사진=청와대 영상 갈무리
박 비서관은 “성폭력 사건 고소인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고소가 동성간 벌어졌든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무고 수사절차 일반을 규정한 것일 뿐 차별적 수사 절차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비서관은 “무고 판단의 기초가 되는 성폭력 여부 수사가 계속 진행되기에 수사를 미루는 게 아니라 헌법상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매뉴얼에 따르면 허위 사실을 신고했음이 명백한 경우 무고사건 수사를 진행한다. 대검 성폭력 매뉴얼이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을 위배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무고죄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은 24만618명이 동의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무고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형법 156조)에 처하게 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 프랑스는 5년 구금형과 벌금, 영국은 6개월 이하의 즉결심판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고로 입건된 사람은 1만219명이었지만 1848건만 기소되고 구속자는 94명(5%)이었다.

무고죄 형량은 높지만 현실에선 실형 선고비율이 높지 않고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내려진다. 이에 박 비서관은 “무고죄 처벌이 중하지 않은 것은 무고죄 특성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며 “고소사건에 대한 혐의없음 처분을 무고죄 성립으로 오해하는데, 상당수는 혐의 유무가 아니라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아서다. 이 경우, 무고죄도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할 수 없”고 했다.

박 비서관은 “무고죄 특별법 제정 보다 악의적 무고사범이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더욱 면밀하게 수사하겠다”며 “무고로 인한 피해가 크고 반성의 기미가 없는 경우, 초범이라 하더라도 실형을 구형하는 등 중하게 처벌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비서관은 “성폭력 관련 무고 행위는 엄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무고죄를 신중하게 적용하되 악의적인 경우, 처벌 수위를 높여 근거 없는 폭로가 줄어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청원은 성폭력 사건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되는 경우를 전제로 한 내용이지만 피해자의 성폭력 문제제기를 위축시키고,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릴 사안이어서 청와대 답변이 주목됐다. 특히 무고죄가 성폭력 가해자의 ‘무기’로 활용되는 측면도 있어 성폭력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 중 무고죄 적용을 반대해왔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오면서 청와대가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관심을 모았다. 결국 청와대는 법과 제도상 문제가 없다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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