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 간부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자사 기자들 취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시기는 TV조선이 미르재단과 박근혜 청와대 관계를 파헤치던 때였다. 미르재단은 박근혜·최순실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 ‘모금창구’ 역할을 했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 설립 당시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비선실세 최순실·차은택과 갈등을 빚은 후 재단 배후에 이들이 있다는 것을 폭로한 인물이다.

지난 17일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검찰 수사기록을 통해 당시 TV조선 경제부장이던 정석영 현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이 이 전 총장과 안종범 수석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기자들 취재를 사실상 방해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지난 2016년 7월28일 보도에서 안 수석이 이 전 총장 사퇴를 종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전 총장은 TV조선에 “(안종범 수석이 전화로) 재단을 떠나줬으면 좋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이 전 총장은 재단 정상화와 사무총장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TV조선 취재에 소극적으로 응했다.

▲ 뉴스타파는 지난 17일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 뉴스타파는 지난 17일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날 보도가 나간 지 30분 뒤 이 전 총장은 정석영 부국장과 26분 동안 통화하며 “언론(TV조선) 보도는 인터뷰를 짜깁기한 것”, “안종범 수석님은 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단지 도와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만 유지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TV조선 취재에 응하긴 했으나 재단을 정상화하고 사무총장 자리를 지켜주면 안종범 개인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정 부국장은 이 전 총장과의 통화를 녹음한 뒤 녹음 파일을 안 전 수석에게 보냈다. 뉴스타파는 보도에서 “이런 사실을 검찰의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검찰이 안종범 휴대전화를 압수해 복원하자 이성한과 언론사 간부 사이 통화 녹음 파일이 나온 것”이라고 출처를 분명히 했다.

TV조선이 청와대와 미르재단의 의혹을 계속 보도하던 2016년 8월16일에도 두 사람은 통화했다. 이 전 총장은 정 부국장에게 “녹음파일이 공개되면 최순실·차은택이 재단 설립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밝혀질 것”, “안종범 수석이 신뢰를 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녹음파일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정 부국장은 이 통화 내용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이 전 총장이 말하는 ‘녹음파일’은 미르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순실과의 회의 내용을 이 전 총장이 녹음한 것으로 최순실 게이트 초 미르재단과 최순실 관계를 입증할 ‘스모킹 건’으로 간주됐다. 당시 미르재단을 취재하던 TV조선 기자들은 이 녹음파일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녹음파일 존재는 그 뒤 JT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최순실과 미르재단 관계에 대한 다양한 물증과 증언들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이 녹음파일 중요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미르재단과 최순실 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장과 통화에서 녹음파일 존재를 인지했는데도 통화 내용을 기자들이 아닌 안 전 수석에게 전한 정 부국장 행위를 ‘취재 방해’로 뉴스타파가 규정한 이유다. 

▲ 정석영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왼쪽)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진=뉴스타파 화면
▲ 정석영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왼쪽)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진=뉴스타파 화면
TV조선에서 후배 기자들을 이끌고 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한 이진동 전 사회부장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에는 당시 경제부장이던 정 부국장에 대한 서술이 있다. 그가 TV조선의 청와대-미르재단 의혹 보도를 협찬을 이유로 막으려 한 정황이다. TV조선이 미르재단 모금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최초 보도했던 2016년 7월26일 보도가 나가기 한 시간 전 TV조선 보도본부장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본부장이 급히 찾아 본부장실로 갔더니 경제부장이 함께 앉아 있었다.(중략) 자리에 앉자 대뜸 본부장 주용중은 ‘미르재단에서 행사 협찬을 받기로 한 걸 알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이진동)는 ‘처음 듣는 얘기다’고 대답했다. 내가 들어가기 전 아마도 경제부장(정석영)이 ‘미르재단에서 협찬받기로 돼 있는데 이 기사가 나가면 곤란할 것 같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짐작됐다. TV조선은 상·하반기에 각 한 번씩 큰 행사를 치르는데 경제부장이다보니 업계와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르재단이 10월에 치를 행사에 협찬을 약속한 모양이다.”

“나(이진동)는 ‘그거 큰일납니다. 기업에서 뇌물로 받은 돈을 우리가 협찬받는 상황이 될 겁니다’하고 발끈했다. 경제부장은 ‘전경련이 합법적으로 돈을 거둬 아무 문제가 없는데 뭐가 뇌물이냐’고 따졌다. 본부장이 잠자코 있는 동안 나와 경제부장 간에 설전이 오갔다.(중략) 경제부장에게 ‘행사가 펑크나지 않도록 다 같이 도와줄 테니 염려마라’고 다독였으나 경제부장은 쉬 물러서지 않았다. 잠자코 지켜보던 본부장이 ‘뉴스 시간이 임박했고 행사도 문제없도록 도와주겠다’고 중재하고서야 끝났다. 뉴스 30분 전이었다.”

이러한 사실 관계와 증거를 두고 정 부국장은 뉴스타파에 “기자로서 어긋나게 살아온 바가 없다”는 말 외에 구체적 답변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 이후에도 침묵 중이다.

미디어오늘도 정 부국장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4월부터 TV조선 보도본부장을 맡고 있는 주용중 본부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뉴스타파 보도) 내용은 안다”면서도 “이진동 부장 책에 다 나와 있고 그 이상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대한 TV조선 보도본부 차원의 대응이나 입장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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