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 간부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자사 기자들 취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시기는 TV조선이 미르재단과 박근혜 청와대 관계를 파헤치던 때였다. 미르재단은 박근혜·최순실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 ‘모금창구’ 역할을 했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 설립 당시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비선실세 최순실·차은택과 갈등을 빚은 후 재단 배후에 이들이 있다는 것을 폭로한 인물이다.
지난 17일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검찰 수사기록을 통해 당시 TV조선 경제부장이던 정석영 현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이 이 전 총장과 안종범 수석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기자들 취재를 사실상 방해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지난 2016년 7월28일 보도에서 안 수석이 이 전 총장 사퇴를 종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전 총장은 TV조선에 “(안종범 수석이 전화로) 재단을 떠나줬으면 좋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이 전 총장은 재단 정상화와 사무총장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TV조선 취재에 소극적으로 응했다.
TV조선이 청와대와 미르재단의 의혹을 계속 보도하던 2016년 8월16일에도 두 사람은 통화했다. 이 전 총장은 정 부국장에게 “녹음파일이 공개되면 최순실·차은택이 재단 설립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밝혀질 것”, “안종범 수석이 신뢰를 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녹음파일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정 부국장은 이 통화 내용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이 전 총장이 말하는 ‘녹음파일’은 미르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순실과의 회의 내용을 이 전 총장이 녹음한 것으로 최순실 게이트 초 미르재단과 최순실 관계를 입증할 ‘스모킹 건’으로 간주됐다. 당시 미르재단을 취재하던 TV조선 기자들은 이 녹음파일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녹음파일 존재는 그 뒤 JT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최순실과 미르재단 관계에 대한 다양한 물증과 증언들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이 녹음파일 중요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미르재단과 최순실 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장과 통화에서 녹음파일 존재를 인지했는데도 통화 내용을 기자들이 아닌 안 전 수석에게 전한 정 부국장 행위를 ‘취재 방해’로 뉴스타파가 규정한 이유다.
“본부장이 급히 찾아 본부장실로 갔더니 경제부장이 함께 앉아 있었다.(중략) 자리에 앉자 대뜸 본부장 주용중은 ‘미르재단에서 행사 협찬을 받기로 한 걸 알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이진동)는 ‘처음 듣는 얘기다’고 대답했다. 내가 들어가기 전 아마도 경제부장(정석영)이 ‘미르재단에서 협찬받기로 돼 있는데 이 기사가 나가면 곤란할 것 같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짐작됐다. TV조선은 상·하반기에 각 한 번씩 큰 행사를 치르는데 경제부장이다보니 업계와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르재단이 10월에 치를 행사에 협찬을 약속한 모양이다.”
“나(이진동)는 ‘그거 큰일납니다. 기업에서 뇌물로 받은 돈을 우리가 협찬받는 상황이 될 겁니다’하고 발끈했다. 경제부장은 ‘전경련이 합법적으로 돈을 거둬 아무 문제가 없는데 뭐가 뇌물이냐’고 따졌다. 본부장이 잠자코 있는 동안 나와 경제부장 간에 설전이 오갔다.(중략) 경제부장에게 ‘행사가 펑크나지 않도록 다 같이 도와줄 테니 염려마라’고 다독였으나 경제부장은 쉬 물러서지 않았다. 잠자코 지켜보던 본부장이 ‘뉴스 시간이 임박했고 행사도 문제없도록 도와주겠다’고 중재하고서야 끝났다. 뉴스 30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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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 관계와 증거를 두고 정 부국장은 뉴스타파에 “기자로서 어긋나게 살아온 바가 없다”는 말 외에 구체적 답변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 이후에도 침묵 중이다.
미디어오늘도 정 부국장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4월부터 TV조선 보도본부장을 맡고 있는 주용중 본부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뉴스타파 보도) 내용은 안다”면서도 “이진동 부장 책에 다 나와 있고 그 이상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대한 TV조선 보도본부 차원의 대응이나 입장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