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계열사로부터 접대 논란을 빚고 있는 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에 대한 조치가 한 차례 연기됐다. 이사회 임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다수 이사가 김 이사 해임을 건의하자는 안과 현실성을 고려해 자진사퇴를 권고하자는 안을 두고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김 이사는 본인은 공적 업무를 수행했으며 ‘표적 감사’를 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방문진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문진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김 이사의 직무상 의무 위반에 대한 조치를 논의했다. 방문진은 앞서 MBC 감사로 드러난 MBC미주법인과 MBC플러스 등의 김 이사 접대와 관련해 자체 감사를 진행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MBC 감사국은 지난달 21일과 지난 5일 방문진 이사회에 MBC 관계사 법인카드 사용내역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 이사에 대한 접대 내역을 공개했다. 감사에 따르면 김 이사는 지난 2014년과 2016년 해외출장에서 수차례 고가 접대를 받았다. 각각 5393만 원, 3358만 원 상당의 자체 예산을 사용한 출장들이다.

우선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4월24일~5월2일) 방문진 당시 김문환 이사장, 박천일 이사 등과 ‘NCTA 케이블쇼’ 참석차 미국 LA에 방문해 △MBC미주법인 윤동열 사장에게 VIP석 야구 관람과 유니버설 스튜디오 견학, 골프 △MBC 워싱턴 특파원 등으로부터 만찬 접대를 받았다. 케이블쇼 참석은 하루 뿐이었다. LA 출장 기간 한윤희 전 MBC플러스 사장에게도 골프·석식·다저스 기념품·와인 등을 받았다.

MBC 감사국은 김 이사가 지난 2016년 4월17일~25일 김원배 전 이사와 ‘2016 NAB 전시회’ 출장 차 방문한 미국 LA와 멕시코시티에서도 전시회에는 하루만 참석, 윤 전 사장에게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고 밝혔다. 카쇼·후버댐·데이비드 카퍼필드 쇼 등 관광과 골프접대, 유흥 주점 접대 등이 접대 내역에 포함됐다.

김 이사는 해당 사례들이 ‘업무’라는 입장이다. 김 이사가 한균태 방문진 감사에게 전한 입장문을 보면 “감사보고에 ‘접대’라고 제시된 모든 비용은 김문환 이사장을 수행한 행사 비용”이라며 “부적절한 접대가 있지 않았고 공식 참관 행사단 행사를 벗어나 사적 접대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LA다저스 경기와 유니버셜 스튜디오 VIP 관람에 대해선 “적절한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것이라는 감사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MBC 워싱턴 특파원 접대 건에 대해선 “‘접대’를 받은 게 아니라 워싱턴지사와 특파원들에 대한 ‘격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워싱턴 체류 시 공동식사는 물론 ‘뉴스 뮤지엄’ 방문 등 관련 비용은 방문단을 대표한 이사장에 의해 비용 지출했다”며 “의례적이고 상호관계상, 워싱턴 지사 측이 단 한 번 저녁과 맥주를 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이사 해명은 여권 추천 다수 이사들의 반발을 샀다. 최강욱 이사는  “나는 해외 출장 갔을 때 단 한 번도 골프 접대나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 차이점을 얘기해 달라”고 지적한 뒤 “NAB의 경우 매년 참석할 필요도 없다. 방송장비 한 번 보고나서 얻어먹으러 가는 거다. (이게 문제 없다면) 사안 심각성 인지를 못하는 거고, 이사회 모욕하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김경환 이사도 “지금은 김영란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선물도 받아선 안 된다. ‘업무의 일환’이라고 말한다면 방문진 이사들은 출장 가서 행사 하루 참석하고 10여일 관광하고 돌아와도 된다는 선례를 남기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다만 야권 추천 이사들은 MBC 감사 보고서를 문제 삼았다. 권혁철 이사는 “감사보고서 자체가 허위조작, 왜곡됐다는 게 드러났다. 엉터리 감사보고서 결과를 근거로 감사권도 어떻게 방문진 이사 해임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21일 공개된 감사 내용 중에는 허위로 밝혀진 사례들이 있다. △2014년 4월4일 미국 단란주점에서의 여성 접대부 의혹 △2014년 5월29일 미국에서의 1박2일 골프 접대 의혹 등이다. 박영춘 감사는 지난 3일 방문진에 두 사안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접대 당사자였던 제보자가 다른 사람을 김광동 이사로 착각해 오류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NCTA나 NAB 사례의 경우 김 이사도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최강욱 이사는 “허위 조작 엉터리 보고서라고 하려면 전체적인 내용을 꿰맞춰 결론을 의도하는 식으로 돼 있어야 한다. 한두 번 접대했으면 걸렸겠나. 태국 가서 세미나 하면 세미나 하는 거지 코끼리는 왜 타나. 그런 일정 수행하면서 돌아다니고 얻어먹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질책했다.

유기철 이사는 “향응 제공했던 사람들이 한결 같이 연임하거나 요직을 차지했다. 대가성을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의 워싱턴 방문 시 만찬에 동석한 문호철 MBC 기자는 워싱턴 특파원을 마친 뒤 정치부장, 보도국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이완기 이사는 “방문진은 기본적으로 MBC 공적 책무 실현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관리·감독 기구다. 이런 분이 하루라도 방문진 이사로 있어서는 안 된다”며 “해임 건의를 방통위에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 이사들은 이사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김 이사 해임 건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에게 진솔한 반성과 자진사퇴 기회를 주자”(유기철 이사)거나, “해임결의보다는 사퇴권고 쪽이 낮지 않을까”(김경환 이사)는 의견이다.

의견이 쉽게 모이지 않자 김상균 이사장은 관련 안건을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방문진 이사들은 오는 19일 정기이사회에서 김 이사에 대한 조치를 의결할 예정이다.

한편 이인철 이사가 제기했던 박영춘 MBC 감사 해임 건의안은 표결 결과 부결됐다. 이 이사는 이날 박 감사가 권한에도 없는 방문진 조사를 하고, 특정인과 방문진 모해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단정했으며,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해임 사유를 밝혔다.

이진순 이사는 이날 “미주법인 감사 과정에서 방문진 이사 문제가 나오면 감사를 중단해야 하는 것이냐”며 “잘못한 사람이 반성하고 사죄해야지, 사실을 밝힌 사람을 해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만 과했던 부분을 제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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