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의 오너 일가 갑질이 연일 도마에 오른다. 지난 주말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청와대 앞에 함께 모일 만큼 파장도 크다. 조씨 일가 퇴진 촛불엔 인하대 동문과 학생도 동참했다. 인하대와 대한항공은 무슨 관계일까. 둘 다 한진그룹 소유다. 인하대는 반발했지만 최근 교육부도 인하대 운영과 관련 조씨 일가의 전횡을 발표했다.

인하대는 이승만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 속에 태어났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공업발전의 기틀을 다진다며 인천에 대학건립을 발의했다. 이렇게 인하대는 이승만의 제2의 고향인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재원은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운영하던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에 하와이 교포들이 눈물겹게 모은 15만달러를 합쳤다. 여기에 정부출연금 6천만환과 국민성금이 보태졌다.

학교 이름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에서 따왔다. 이렇게 1954년 2월 설립된 재단법인 인하학원은 초대 이사장이 이승만의 오른팔 이기붕이었다.

한진그룹을 일군 고 조중훈 회장은 인천 토박이다. 조중훈 회장은 192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지물 도매상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장사를 배웠다. 서울에 있는 휘문고에 입학했지만 배를 타고 싶어서 자퇴하고 경남 진해의 해원양성소에 입학해 2년 만에 기관과를 졸업했다. 일본 가서 2등 기관사를 따고 일본 화물선을 타고 상선의 선원이 됐다.

2년전 파산한 한진해운은 선원이었던 인천 사람 조중훈의 꿈을 담았다. 그래서 한진은 한진상사를 통한 무역이 모태다. 바다 길을 개척했으니 하늘 길도 개척하겠다고 나선 게 대한항공 설립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는 한진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22살 청년 조중훈은 1942년 일본 상선 실습을 마치고 인천에 돌아와 자동차엔진을 수리하는 ‘이연공업사’ 차려 제법 돈을 모았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한 가운데 놓인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 사업가는 좌절했다. 1943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기업정비령에 따라 이연공업사를 일본 군수업체 마루베니에 뺏겼다.

국가권력이 기업과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지녔던 군국주의 시절 몸소 체득한 교훈은 오래갔다. 한국 최초 항공사였던 대한국민항공(KNA) 창업주 신용욱은 안창남과 1년 차이로 비행기술을 익힌 선구자였다. 신용욱은 미나미 총독 시절 일제에 헌신했다. 신용욱은 이승만 정권 들어서자 미국에서 산 비행기 3대에 우남, 만송, 창랑이란 이름을 지었다. 나란히 이승만과 이기붕, 장택상의 호다. 이렇게 신용욱은 제1공화국을 풍미했지만 5‧16쿠데타가 나자 부정축재자로 끌어갔다가 며칠 만에 한강에 투신해 숨진다.

▲ 대한국민항공(KNA)의 1958년 신문광고
▲ 대한국민항공(KNA)의 1958년 신문광고

박정희 새 권력은 신용욱의 KNA 대신 대한항공(KAL)을 만들어 조중훈과 손잡고 경영을 맡긴다.

외국인인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가 수년간 진에어 임원으로 일해 우리 항공법을 위반했고, 아시아나도 비슷한 사례가 나오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매일경제는 지난 14일 9면에 “항공사, 외국인 임원채용 자유보장을”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매경은 국내외 전문가들 입을 빌려 “외국인 등기임원을 단 한 명도 허용하지 않는 우리 항공법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개정을 촉구한다고 했다.

권력과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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