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불공정한 현실을 폭로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으로 촬영을 떠난 김광일·박환성 독립PD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추모식에 관심을 보였지만 독립PD들은 EBS가 추모식에도 협조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한국독립PD협회는 두 PD의 유족과 함께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1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두 PD는 한국 시각으로 지난해 7월15일(현지 시각 7월14일) 직접 운전해 이동하다가 졸음운전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중앙차선을 넘어와 사고를 당해 숨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두 PD의 죽음과 배경은 이슈가 됐지만 실제 방송계 불공정한 현실, 독립(외주) 인력을 대하는 거대 방송사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각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SNS에 “고 박환성·김광일 독립PD 1주기. 방송계 불공정개선을 체감하는 사람은 아직 적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이날 행사에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류지열 한국PD연합회장, 박정훈 SBS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최승호 MBC 사장 명의로 화환이 왔다. 독립PD협회는 KBS·MBC·SBS·EBS 사장실, 방통위 등에 추모식 초청장을 보냈다.

▲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고 김광일, 박환성PD 1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추모식장에는 KBS, MBC, SBS 사장과 한국PD연합회장, 방송통신위원장 명의로 화환이 왔다. 사진=김현정 PD
▲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고 김광일, 박환성PD 1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추모식장에는 KBS, MBC, SBS 사장과 한국PD연합회장, 방송통신위원장 명의로 화환이 왔다. 사진=김현정 PD

독립PD들은 두 PD가 EBS 프로그램을 위해 남아공에 갔는데 정작 EBS에선 반응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독립PD협회는 추모식에서 두 PD가 생전 촬영했던 프로그램, 독립PD협회 회원들이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작품을 상영했다. 저작권이 방송사에 있기에 독립PD협회는 행사를 위해 협조공문을 보내야 했다. KBS 등 다른 방송사는 협조했지만 EBS에선 답변이 없었다. 독립PD협회는 수차례 메일을 더 보냈지만 답변받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EBS 다큐프라임 영상은 상영하지 못했다.

한 독립PD는 미디어오늘에 “우리에겐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EBS가 독립PD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억울하거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독립PD끼리 모여 슬퍼했을 뿐”이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EBS에 문제제기를 한 건 박환성PD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 고 김광일, 박환성 PD 1주기 추모식장에선 한국독립PD협회 소속 PD들이 각종 행사에서 수상한 작품을 상영했다. 독립PD협회는 EBS의 협조를 받지 못해 다큐프라임을 상영하지 못했다. 오른쪽 화면은 KBS '다큐 공감' 상영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 고 김광일, 박환성 PD 1주기 추모식장에선 한국독립PD협회 소속 PD들이 각종 행사에서 수상한 작품을 상영했다. 독립PD협회는 EBS의 협조를 받지 못해 다큐프라임을 상영하지 못했다. 오른쪽 화면은 KBS '다큐 공감' 상영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EBS 관계자는 지난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독립PD협회에서 보냈다는) 초청장·상영협조공문이 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호용 한국독립PD협회장은 추모사에서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EBS 측) 당사자는 유족에게 직접 사과를 거부하고 여전히 진실을 호도한 채 변명으로 일관한다. 두 PD가 생전에 염원했던 공정한 방송생태계를 만드는 그날까지 이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PD가 생전 공정거래위원회에 ‘EBS가 간접비를 요구했다’는 내용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지난 4월 공정위는 무혐의로 심사를 종료했다. 많은 독립PD는 공정위 결정에 아쉬워했다.

▲ 한국독립PD협회는 고 김광일, 박환성 PD 1주기 행사를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었다. 사진=김현정 PD
▲ 한국독립PD협회는 고 김광일, 박환성 PD 1주기 행사를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었다. 사진=김현정 PD

참석자들은 앞으로 방송계 현실이 나아지길 기대했다.

이날 언론개혁시민연대·한국언론정보학회 등과 함께 낸 공동성명서는 송호용 독립PD협회장과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이 함께 낭독했다. 향후 협회와 스태프노조가 방송계 불공정 개선을 위해 힘을 합하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아직도 유족과 동료들 가슴에 피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방송주권자인 국민과 함께 달콤한 기득권에 취해 공정·상생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역행하는 방송불공정 세력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추혜선 정의당 의원도 “두 PD가 남긴 선물이 얼마 전 창립한 방송스태프노조”라며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모든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또 다른 박환성·김광일에게 연대의 뜻을 밝혔다. 김PD 배우자 오영미씨는 “(김 PD와 나눈) 마지막 메시지 ‘지금 이동 중’이었다. 지금도 어딘가를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사고날 때 번쩍하면서 김광일이 몇백년 전 과거로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며 “2017년 여름에 갇혀버렸다”고 말했다.

박PD 동생 박경준씨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는데 박 PD는 무모해서 모난 돌이 된 게 아니라 밑에서 받쳐줄 모난 돌들이 곁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오늘 두 사람의 넋을 기리고 안타까워하고 많이 웃고 떠들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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