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붕당이라고 하면 흔히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에 또 추가해야 할 세력이 있다. 조선왕조 제17대 왕 효종의 등극을 앞두고 서인 내에서 새롭게 등장한 한당(漢黨)과 산당(山黨)이다. 한당이란, 글자에서도 보듯 한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고, 산당은 충청도의 회덕 등 산골 출신의 정치세력을 말한다. 허나 이는 그들의 거주지를 따라 붙여진 이름일 뿐 그들의 출신지가 단순히 중앙이냐 지방이냐에 따라 정치 성향이 갈린 건 아니었다.

한당의 구성원은 실무관료진이자 정객으로 이름을 날린 후손이 많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당대 왕실과 혼인관계도 맺었다. 이들은 정국의 현안마다 다분히 현실을 중요시하는 이른바 ‘현실론자’들이었다. 이에 비해 산당은 조선왕조 건국이념인 성리학을 연구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자들이었기에 이들은 명분에 죽고 사는 ‘명분론자’였다.

조정이나 왕실과 별다른 관계가 없던 명분론자인 산당이 부상한 배경은 인조반정 이후 정치형태가 공론(公論)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사림정치가 발달해서다. 단순한 권력 다툼보다는 붕당 간의 정책과 이념 대결 구도 상 각 붕당 안에는 자파의 이념을 연구해 밝히고 자당의 정치 명분과 의리를 천명하는 사림의 사표(師表)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을 바로 산림(山林)이라고 하는데, 대표 인물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들 수 있다.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는 즉위의 정통성이나 명분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공신의 막강한 신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재야의 여론을 주도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던 산림이란 존재에 주목해 이들을 적극 조정에 불러들였다. 차츰 산림을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 산당이라는 정치세력을 형성해 기존 공신계를 비롯한 실무관료진 그룹인 한당과 비등한 형세를 이뤘다.

▲ 송시열 74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이 초상화는 송시열의 제자 김창업(金昌業)이 그렸다.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짙은 눈썹, 신선처럼 새하얗고 무성한 수염, 관료가 아닌 유학자의 상징 심의(深衣)를 입은 모습이 다소 과장된 체격으로 그려졌다. 대 정치가이자 산림으로서의 위상을 보는 듯하다. ⓒ 황강영당
▲ 송시열 74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이 초상화는 송시열의 제자 김창업(金昌業)이 그렸다.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짙은 눈썹, 신선처럼 새하얗고 무성한 수염, 관료가 아닌 유학자의 상징 심의(深衣)를 입은 모습이 다소 과장된 체격으로 그려졌다. 대 정치가이자 산림으로서의 위상을 보는 듯하다. ⓒ 황강영당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은 당연 기득권 세력인 한당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척화의 표상이던 청음 김상헌을 이어 명분론의 거두로 등장한 송시열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것은 심해졌다. 한당이 느꼈던 긴장과 불안은 드디어 자파 영수의 입을 통해 적대적인 언사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한당의 영수는 영의정을 지낸 신흠의 손자이며, 선조(宣祖) 부마(왕의 사위) 신익성의 장남으로 왕실의 핏줄도 가지고 있던 신면(申冕)이었다. 그는 대동법 추진으로 유명한 김육이 사돈어른이면서 둘이 함께 한당의 영수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신면은 거두 송시열을 직접 비판했다.

야사인 당의통략(黨議通略)에는 신면이 조정에 출사하려는 송시열 등 산당에게 사람을 시켜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대들은(송시열 등 산당) 마치 봉황새와 같아서 울음소리만 들어도 사람들이 사모하니 간혹 세상에 나와 깃을 펴는 것이야 나쁠 것이 없소. 하지만 아래로 내려와 닭이나 오리와 섞여 바삐 돌아다니면 부녀자와 아이의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이요.” 이 말을 전해들은 산당은 격앙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면은 효종 즉위 후 김자점의 역모사건에 연루돼 죽임을 당했는데, 그의 죽음이 이 말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질 만큼 명분과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던 산당에게는 치욕적인 언사였다.

수년 전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정치에 발을 들였던 교수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또 다른 교수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가, 지난 정권 막바지엔 국무총리에 지명되기도 했다. 그런 분이 이번에는 보수정당의 혁신비대위원장을 흔쾌히 수락했다. 대학에 적을 두고서 정치권에 줄 대는 분들을 우리는 흔히 폴리페서(polifessor; politics(정치)+professor(교수)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그들이 과연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면의 말을 듣는다면 그 반응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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