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등 지도부 7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옴진리교는 1995년 3월20일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를 저지르고, 1989년 자신들의 사건을 다룬 변호사 사카모토 츠츠미 일가족을 살해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피해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책 ‘언더그라운드’가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1997년 발행됐고 한국에선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2010년 발간됐다.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의 경험자, 피해자 62명의 증언을 모았다. ‘언더그라운드2: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언더그라운드’에 이어 가해자인 옴진리교 옛 신자들과 인터뷰를 실었다.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자신이 옴진리교의 테러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했는지, 피해자 접촉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취재 과정은 어땠는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하루키는 한 잡지에서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테러를 접했다. 하루키는 잡지에서 지하철 사린 테러로 남편이 직장을 잃은 한 여성의 사연을 읽었다. 하루키는 “가혹한 이중의 상처를 생산하는 우리 사회를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고 밝힌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책표지.
▲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책표지.
하루키는 1996년 1월초부터 1년 동안 62명의 증언을 모았다. 책 앞부분에 하루키는 자신이 피해자와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이나 자신이 취해야 할 취재기법을 설명한다. 하루키가 피해자를 인터뷰하면서 보인 자세 중 인상 깊은 부분이 몇가지 있다.

하루키는 증언해 줄 피해자를 찾는데 굉장한 애를 먹었다고 한다. 보통 ‘하루키 정도 유명한 작가라면 쉽게 인터뷰 대상을 찾지 않을까’라는 생각할텐데, 하루키는 인터뷰 응해줄 피해자를 매스컴을 통해 모집하지 않고 함께 작업을 하는 몇 명과 함께 일일이 직접 접촉해 구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하루키는 이렇게 밝힌다.

“‘내가 이런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더라면 좀 더 많은 증언을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취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런 방법을 써보고 싶은 강한 유혹에 이끌렸지만 그 방법은 피하기로 했다. 첫째로 우리는 상대가 찾아와 증언해 주어도 그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추적해 들어가면 그럴 위험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둘째로 적극적인 인터뷰의 비중이 커지면 이 책의 전체적인 인상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무라카미의 무작위 추출의 균형을 중시하고 싶었다. 셋째로 은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매스컴을 불신하는 피해자의 경계심이 한층 강해질 위험이 있다.”(‘언더그라운드 18p)

두 번째로 하루키가 어려움은 증언한 피해자가 자기 이야기를 활자화했을 때 삭제를 요청하거나 아예 인터뷰 게재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할 때였다. 그러나 하루키는 최대한 피해자들이 원하는 정정, 삭제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루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분들에게 곤란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언짢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배려를 하고 싶었다. 매스컴에 대한 일반적인 불신감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말이 아니었는데’라거나 ‘믿고 협력해주었더니 배신당했다’하는 기분은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언더그라운드’ 19p)

세 번째로 하루키는 이 책에서 ‘피해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보통 언론은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 보호차원에서 피해자 정보를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하루키는 반대의 자세를 취했다. 왜일까.

“증언자의 개인적인 배경 취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명확히 부각시키고 싶어서였다. 거기에 존재하는 한 인간을 ‘얼굴없는 많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에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가해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프로필이 메스컴에 의해 세부까지 밝혀져 사생활 폭로에 가까운 정보나 가십으로 세간에 전파되고 있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피해자=일반시민의 프로필은 억지로 만들어낸 듯이 너무도 어색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일반 매스컴의 문맥이 피해자들을 ‘상처받은 순진한 일반시민’이라는 이미지로 고정시켜버렸기 때문일 것이다.”(‘언더그라운드’ 21p)

물론 하루키가 취재했던 당시는 인터넷 때문에 2차 피해가 염려되는 최근의 상황과 다르고, 이를 염두해 읽는 게 좋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소설이 아닌 르포르타주로 만나, 하루키가 어떤 고민을 하며 르포르타주를 써갔는지 보여준다. 사린 테러의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은 덤이다. 조지 오웰이 ‘1984’나 ‘동물농장’ 같은 소설도 썼지만 ‘위건부두로 가는 길’ 같은 르포르타주로 동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눈 것처럼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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