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드라마 등 제작현장에 근로시간 단축이 정착하려면 현실적인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PD들의 요구가 나왔다. 한국PD연합회(회장 류지열, 이하 PD연합회)는 방송사가 구체적 대책을 내놓지 않아 제작 현장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6개월 노동시간 총량제’ 등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PD연합회는 지난 10일 “(근로시간 단축은) PD를 포함한 스태프를 살인적 제작 환경으로부터 보호할 법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지만 제작 현장에선 ‘시행 첫날부터 불법을 피할 수 없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들린다”며 “각사 경영진은 정부의 ‘6개월 유예’ 발표와 노동부의 ‘유연 근무’ 언급에 안도하며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허둥대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KBS, MBC, SBS 등 직원 300명 이상 방송사들은 지난 1일부터 주 68시간, 내년 7월부터 주 52시간 노동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제도 연착륙을 이유로 6개월 동안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한 뒤 방송사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부서별로 자율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하고, 부문별 초과근로 현황 파악, 향후 인력 충원 계획 등을 꾀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재까지 어느 방송사도 노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초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한 드라마·예능 제작현장의 위법 상태는 계속 방치돼 있다.

▲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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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연합회는 가능한 입법 보완 조치로 ‘6개월 노동시간 총량제’를 제안했다. 6개월을 기준 단위로 두고, 몇 달은 초과노동을 인정하되 전체 노동시간이 주 평균 68시간 이내가 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류지열 PD연합회장은 12일 미디어오늘에 “반드시 6개월 단위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니시리즈 제작을 기준으로 연출하면 6개월 정도 필요하다는 대략적인 여론에 기반했다”며 “성명서 요지는 주먹구구식 대안이나 탁상머리 정책에만 몰두하는 경영진이 발 벗고 나서야 하고, 필요한 경우 정책 당국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PD연합회는 방송사 경영진에 “궁극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안착되도록 제작여건 개선을 병행하라”며 △획기적 인력 확대 △지나친 경쟁 지양 △합리적인 드라마·예능 방송시간 준수 및 발전적 편성 △드라마 사전제작제 전면 실시 △스튜디오 제작 콘텐츠 확대 등을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방송협회 산하에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드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고 주문했다.

PD연합회는 “‘주 7일 130~140시간 노동’이라는 살인적 환경에서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현장에 이 제도를 하루 아침에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이 상태로 ‘주 68시간 근무제’를 강행할 경우 드라마 PD는 현장 연출만으로도 초과근로를 하게 되며 이를 피하려면 스튜디오 제작만 하든지 컷을 쪼개지 않고 촬영해야 할 거란 탄식이 이어진다”고 밝혔다. “시간외 수당을 올리지 않고 하루 20시간 노동하는 PD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전했다.

PD연합회는 이어 “‘주 52시간, 주 68시간 근무제’는 우리 방송산업 환경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며 “모든 것은 정책당국과 방송사 경영진의 비상한 결기와 현명한 정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와 산별교섭 중인 언론노조는 탄력근로 확대가 쟁점으로 비춰져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미디어오늘에 “성명서 전반을 보면 방송사가 대안을 내놓으라는 취지인데 방안 중 하나로 제시한 탄력근로기간 확대가 두드러졌다”며 “사용자들은 지속적으로 유연근로제 확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계 특수 사정을 감안해달라는 요구를 전체 산업에 확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중요한 것은 방송사에 드라마·예능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장기적인 이행 계획 로드맵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주68시간 적용이 어렵다면 올 하반기나 내년 초, 궁극적으로 내년 7월 주 52시간이 가능하도록 단계적 이행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이런 계획이 전제되면 노사 합의로 일부 제한적인 유연근로제를 활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탄력근로 확대 요구는 근로기준법 기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시간단축 관련 산별교섭은 노사 간 쟁점을 확인해나가는 단계로 알려졌다. 제작 현장 종사자들로서는 대책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 국장은 “19일 PD연합회 운영위원회 자리에 참석해 법 개정 내용과 언론노조 교섭방침, 대응전략 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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