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사장 재임 시절 KBS 내부에서 ‘고대영 호위대’ 비판을 받았던 ‘KBS 기자협회정상화추진모임’(이하 정상화모임)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치가 권고됐다. 세월호 참사 때 KBS 보도행태를 비판한 기자를 보복성 인사발령했던 당시 보도국장의 책임도 묻는다.

과거 KBS 제작 자율성 침해 및 불공정 사례 등을 조사하고 있는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이하 진실미래위)가 지난 10일 조사 보고서를 의결하고 취업규칙 등을 위반한 이들의 인사 조치를 권고했다. 향후 인사위원회가 개최되면 관련자들 징계수위가 결정된다.

KBS 진실미래위는 정상화모임 주축인 정지환 전 KBS 보도국장과 박영환 전 취재주간, 장한식 전 편집주간, 강석훈 전 국제주간 등이 취업규칙 4조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인사조치를 권고하기로 했다.

지난 2016년 4·13총선을 앞두고 보도본부 간부를 중심으로 결성한 정상화모임은 KBS 기자협회의 자사보도 감시활동을 비난했다. 기자협회를 ‘해사 행위’,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집단’ 등으로 규정하면서 “회사를 흔들려는 시도를 기도한다면 그에 걸맞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는 식이다. 앞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상화모임에 대해 “20대 총선,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사드 관련 보도 등 민감한 사안마다 평기자들과 각을 세우며 ‘친 정부 노선’을 노골화했다”고 비판했다.

진실미래위 관계자는 12일 미디어오늘에 “(KBS 구성원들은)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편성규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편성규약 상 기자협회장이 제작 실무자를 대변해서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정상화모임은) 이를 강압적으로 방해하면서 규약 준수 의무를 저버렸다”고 밝혔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편성규약은 방송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해 취재·제작 종사자 의견을 들어 방송 편성규약을 제정해야 한다는 방송법에 따라 지난 2001년 노사 합의로 만들어졌다. 고 전 사장은 재임 기간 내내 이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지난 2015년 11월 KBS 사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그는 “KBS 이름을 붙이고 개인이나 특정집단 의견을 밝히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고, 2016년 업무계획에 ‘편성규약 개정’을 명시해 비판을 샀다. KBS 안팎에서는 기자협회에 대한 정상화위원회 활동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상화위원회 소속 간부들이 요직에 포진했던 당시, KBS 기자들은 자연스레 정부 비판적 보도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진실미래위 관계자는 “(정상화모임은) 국·부장 중심으로 ‘화이트 리스트’ 같은 것을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배척하면서 조직에 엄청난 균열과 불신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실제 자사를 비판한 뒤 보복성 징계를 받은 피해자도 있다. 지난 2016년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개입과 이에 침묵한 KBS를 비판한 정연욱 기자는 3일 만에 제주방송총국으로 전보됐다. 정 기자는 인사명령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 이후 KBS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듬해 원직복귀했다. 역시 ‘고대영 사장-정지환 보도국장’ 체제에서 벌어진 일이다.

진실미래위 관계자는 “정 기자 부당 징계는 법원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일”이라며 정 전 보도국장에게 부당 징계 책임자로서의 인사 조치도 권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진실미래위는 과거 KBS 출연자 등에 대한 ‘블랙리스트’ 의혹, ‘추적60분 – 4대강’ 편과 ‘시사기획 창 – 훈장’ 편 불방 사례를 비롯한 제작 자율성 침해 사례의 진상도 조사한다. 특히 최근 정부가 거짓 공적으로 훈장 등을 받은 이들에 대한 서훈을 취소하면서, 관련 사안을 다뤘던 ‘훈장’ 불방 사태 전말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이경호, 새노조)는 11일 성명에서 “(서훈 취소는) 부조리한 역사의 장면들을 비로소 바로잡은 의미 있는 첫 걸음”이라며 “‘훈장’의 방송을 막고 KBS 탐사 저널리즘의 정신마저 꺾으려 했던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준엄한 심판이 내려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난 2015년 6월 방송 예정이었던 ‘훈장 2부작’은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방송이 연기된 뒤 탐사제작부 방송예정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후 안양봉 탐사보도팀장은 보도국 평기자로, 최문호 기자는 라디오제작부로 발령 났다. 이듬해 ‘간첩과 훈장’ 대신 ‘시사기획 창 – 훈장’으로 제목이 바뀐 1편이 방송됐지만, 2편은 결국 전파를 타지 못했다. 최 기자는 이후 KBS를 떠나 뉴스타파에서 ‘훈장 4부작’을 마무리했다.

최 기자 외에도 인사 문제 등으로 고초를 겪다 KBS를 떠난 기자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독립언론 ‘뉴스타파’ 구성원이 된 가운데, 부당 인사 피해자들이 KBS로 복귀할 문이 열릴지도 관심사다.

KBS 탐사보도팀장 출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 문제를 비판했다 KBS 지역총국으로 좌천, 이후 KBS 보도 비판을 이유로 중징계 처분을 받고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최경영 기자는 2012년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시절 사장을 비방한 이유로 해임 처분을 받고 재심을 거쳐 정직으로 조정됐으나 결국 KBS를 떠났다. 이 밖에도 공정방송 투쟁에 앞장섰던 김경래·박중석·심인보 기자 등이 KBS에 희망이 없다며 뉴스타파로 이직한 바 있다.

KBS 한 관계자는 “과거 재입사 사례도 있다. 필요하다면 ‘원 포인트’ (인사) 규정 개정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외부 인사 복귀에 대한 공식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고, 인사규정 개정은 KBS 이사회 소관이라며 문제 사례들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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