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현(85) 소설가가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를 냈다. 한겨레신문이 늙은 소설가를 찾아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한겨레 9일자 23면)

소설가 남정현은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 실은 소설 ‘분지’ 필화사건의 장본인이다. 박정희 정권은 그해 7월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하고, 이듬해 7월 구속했다.

검찰은 ‘분지’가 대한민국이 미국 식민지 통치에 예속돼 있고, 주한미군이 야만적 학살과 난행을 자행하며, 한반도가 미군의 식민지 군사기지로 약탈과 착취, 부정과 불의로 가득 차 있고, 대한민국은 오로지 자본가인 정치자금 제공자의 이익을 위해 입법과 행정이 이뤄지고, 반미 감정을 미화시켜 한미 유대를 이간질하고 빈민 대중에게 반정부 의식을 조장해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며 그에게 7년형을 구형했다.

▲ 남정현 소설가가 쓴 ‘분지’
▲ 남정현 소설가가 쓴 ‘분지’
재판에선 홍익대 총장과 문교부 차관을 지낸 이항녕 교수와 소설가 안수길, 문학평론가 이어령도 증인으로 나와 그를 변호했다.

재판이 한창이던 1967년 3월10일자 미국 타임지는 ‘애국자에 대한 보상’이란 제목으로 “한 청년 작가가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에 대한 풍자적 우화를 엮은 단편을 발표해, 그것을 북괴가 자기네 기관지에 실은 것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미국마저도 이 작품이 반미감정 조성과 무관하다고 본 것이다. 소설가 이호철은 남정현을 두고 “애오라지 자신의 삶과 문학을 송두리째 저항에 쏟아 부었다”고 평했다.

북한이 남한의 문학작품을 전재한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북한은 정비석의 ‘자유부인’도 전재했다.

남정현은 1967년 6월 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지만 몸이 많이 상했다.

53년이 지난 오늘 읽어도 ‘분지’는 전율이 느껴진다. ‘분지’에는 항일투사로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성조기를 들고 미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미군에게 겁탈당해 미쳐버린 어머니, 주한미군 스피드 상사의 첩이 된 누이가 나온다. 주인공이 숨어든 향미산은 미군의 핵무기 공격 대상이다. 이 때문에 평론가 임헌영은 ‘분지’를 탈핵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지난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3차 방북협상을 마치고 돌아오자, 미국 언론은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우리 언론은 이를 부지런히 확대재생산했다.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다가 부임도 못하고 낙마한 빅터 차의 입을 빌어 ‘돼지에게 립스틱 칠’하거나 ‘북한이 대가를 원해 미군 유해 송환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 지난 7일 평양에 1박2일간 체류하면서 미·북 고위급 회담을 가진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떠나기에 앞서 평양국제비행장에서 회담 상대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7일 평양에 1박2일간 체류하면서 미·북 고위급 회담을 가진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떠나기에 앞서 평양국제비행장에서 회담 상대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북한을 때리면 비핵화 협상이 무산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우리 언론이 노리는 게 협상 무산이라면 크게 성공한 셈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평소엔 조금 다른 척 하지만 미국의 국익 앞엔 늘 한 목소리였다. 더 정확히는 미국 광고주의 이익 앞에.

불황에 임금이 삭감된 시카고 노동자가 파업하자 뉴욕타임스는 1877년 7월25일자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점령된 시카고’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당시 언론은 인디언 도살에만 열광한 게 아니다. 언론은 신대륙으로 건너온 수백 만 명의 노동자를 봉건시대 농노처럼 다뤘다. 이렇게 미국 언론은 이미 1880년대부터 광고주의 품에 안겼다.

한반도의 운명을 이런 언론에 내맡기는 건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반세기 넘도록 현재진행형인 분지 필화사건을 멈출 맑은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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