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없는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6월28일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던 당사자들은 바빠졌다. 2009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오정민씨는 최근 병역거부 선언을 했던 때만큼 바쁘다. 그는 2009년 1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그해 6월 법정구속돼 수감됐으며 2010년 8월 출소했다. 

“2008년 12월24일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가 노무현 정부 말기에 검토했던 대체복무제를 뒤집은 뒤의 첫 양심적 병역거부여서 언론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국방부가 일방으로 여론을 핑계로 ‘시기상조’라고 했다.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헌재 결정으로 변환점이 생겼다.”

당시 오씨는 ‘정부가 바뀌니 제도가 바뀌고, 병역거부 관련 방향도 바뀐다’고 생각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같은 걸 느꼈다. 오씨는 “2008년 경험이 안 좋은 사례라면 이번 헌재 결정은 분명 좋은 방향”이라면서도 “정부가 바뀌면서 제도가 바뀌는 것 자체에는 문제의식이 있다. 인권과 평화의 가치가 정부에 따라 변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제도가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어떻게 대체복무제도를 만들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 2009년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같은해 수감됐으며 2010년 출소한 오정민씨.현재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2009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같은 해 수감됐으며 2010년 출소한 오정민씨.현재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7월9일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인권재단사람 사무실에서 오정민씨를 만났다. 사진=이우림 기자.
그러나 당장 대체복무의 기간과 방식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부정적 여론도 상당하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대체복무제 관련 청원도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군대갔다온 사람은 양심 없는 건가요?’, ‘양심적 병역거부 폐지’, ‘병역거부자를 지뢰제거와 유해발굴 등에 동원해주십시오’와 같은 청원도 있다.

“부정적 여론을 안다. 난민혐오‧이주민 혐오‧여성혐오‧성소수자 혐오에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혐오가 추가된 느낌이다. ‘양심’‧‘비양심’의 이분법은 악의적이다. 대체복무제 운영에서 대체복무 대상자를 어떻게 심사할지가 중요하다. 다만 대체복무제도가 악용된다는 이유 때문에, 대체복무를 징벌처럼 만드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대체복무’라는 이름의 또다른 감옥을 만드는 일이 돼선 안 된다.”

일부 언론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혐오를 부추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국내에 처음 알린 한겨레21처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깊이있게 꾸준히 보도하는 언론도 있는 반면 이들을 특정종교의 틀에 가두고 혐오를 부추기는 언론도 있다. 

▲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를 국내에서 처음 제기한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 사진=한겨레21 홈페이지.
▲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국내에서 처음 제기한 한겨레21 표지이야기. 사진=한겨레21 홈페이지.
오씨는 “국민일보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일부 종교의 문제로만 보도하고, 특정종교에 특혜를 준다는 프레임으로 보도한다. 조선일보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종교적 병역거부’라고 쓰면서 특정 프레임 안에 병역거부자를 가두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헌재 결정 다음날 사설에서 ‘특정 종교 위한 병역거부의 길, 과연 타당한가’라는 사설을 냈다. (관련기사:한겨레 “환영” vs 국민 “특정교단 봐줘” vs 세계 “위험천만”)

▲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다음날인 6월29일 언론보도. 종교계 언론인 국민·세계일보는 “안보 근간이 흔들렸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다음날인 6월29일 언론보도. 종교계 언론인 국민·세계일보는 “안보 근간이 흔들렸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오씨는 “한국의 병역거부자 중 90% 이상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자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한 종교인이 많다고 단지 그들만의 문제인 건 아니다. 불교나 개신교 병역거부자도 있고, 평화주의 신념 때문에 종교가 없어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특정종교 문제로 한정지어 보도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언론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혐오를 부추기거나 종교의 이야기로 국한시키기도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 개인의 불행에만 초점을 맞춰 피해자처럼 보이게 하거나 영웅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오씨는 이런 보도에도 아쉬움을 느낀다.

“나에게 오는 질문이나, 주변의 병역거부자들이 받는 대부분의 질문은 ‘감옥에서 얼마나 힘들었나’, ‘감옥에 다녀온 후 취업 등에 어떤 불이익을 당했는가’ 등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물론 수감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들의 사회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초점만 부각하는 것은 아쉽다.”

▲ 7월9일 서울 망원동 인권재단사람 사무실에서 오정민씨를 만났다. 사진=이우림 기자.
▲ 7월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오정민씨. 
“가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강한 신념을 가진 영웅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렇게 용기백배해서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나도 겁이 났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해서 평생 순도 100%의 신념으로 사는 게 아니다. 계속 고민하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영웅시하는 모습도 일종의 남성주의라고 생각한다. 남성 히어로물 같은 느낌이랄까.”

오씨는 군대가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라고 생각했고, 반전 평화의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했다고 한다. 오씨는 한국사회의 군사문화가 성차별을 강화하고, 젠더 정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병역거부가 종교 외에도 평화운동 등 다양한 지점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성주의도 그 한 축이라고 했다. 오씨는 오는 26일 서울의 책방 ‘달리,봄’에서 평화운동으로 병역거부 운동이 어떻게 페미니즘과 만나는지 이야기하는 행사에 참여한다.

“여성 병역거부 활동가가 있는데, 일부 사람들은 왜 여성이 병역거부운동을 하냐고 묻는다. 병역문화는 젠더 이분법을 강화하고, 사회에 군사주의 문화를 퍼뜨린다. ‘남성은 여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 6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기 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6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기 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오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각자의 주체성이 부각되고, 병역거부자와 함께 해온 인권활동가들의 성과도 강조되는 보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 일이 많다. 8월30일 대법원 공개변론도 남아있고, 공개변론은 헌재 결정만큼 중요하다. 대체복무제를 총괄하는 부서가 국방부, 국무총리실, 별도 독립기구 등 어디로 정해질지, 대체복무 기간과 복무 관련 입법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 국방부, 국회 등은 합리적이고 인권적인 제도 설계를 위해서 적극 시민사회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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