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과 2008년 4월 사이, 고작 반 년 터울인데 언론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2007년 10월엔 보수 언론과 공중파 방송도 삼성 비리에 관심을 뒀다. 김 변호사가 기자회견 했던 서울 제기동 성당은 몰려든 기자들로 빼곡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론, 삼성 비리 의혹 보도가 확 줄었다. 보수 언론과 방송은 확실히 뒤로 물러났다. 진보 매체들의 관심도 식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건 이명박 정부 출범이 미친 영향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언론이 제기한 비리 의혹에 대해 조준웅 당시 특검이 공식적으로 준 면죄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고 본다. 법의 권위가 비리 의혹을 덮었다.
그때 느꼈던 건,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려움이었다. 삼성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래서 다들 무서워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삼성을 너무 무서워하면, 그래서 다들 움츠리면, 삼성의 부당한 힘은 더 강해진다. 그러니까 다시 무서워지는 악순환이다. 그 시동을 건 한 책임이 조준웅 변호사에게 있다고 본다. 삼성 비리는 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그리고 공포. 조 변호사는 법의 권위를 악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포가 깨졌다. ‘삼성을 생각한다’ 같은 책을 내도 별 일 없다는 게 확인된 탓도 있다고 본다. 언론은 다시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선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나왔다. 보수언론도 간혹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삼성에 대한 공포가 강력했던 그 시기에는, 삼성 비리를 공론화하는 일 자체가 중요했다. 진보언론이 삼성에 비판적인 책 광고 게재조차 거부하던 시절이었으니까.삼성전자 전직 전무인 이모 박사가 중국으로 반도체 기술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썼다. 그가 기소될 당시, 모든 언론이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했다. 진보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충분히 풍요롭게 지내던 이 박사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기술을 빼돌릴 동기가 있었을까. 이런 기초적인 의문조차, 언론은 던지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이 박사의 반도체 기술 유출 의혹이 누명이라고 판결했다. 이 박사 기소 당시 언론 보도는 모두 오보였다. 이런 사실을 보도해서, 나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부터 상까지 탔다. 기쁘고 영광스럽다. 하지만 답답함은 남는다. 삼성에 대한 지나친 공포 때문에 언론이 입을 닫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남은 문제가 있다. 삼성 등 재벌의 문제는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하고, 이듬해 조준웅 변호사가 덮어버린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반도체 기술 유출 누명 사건이 그런 사례다. 언론은 조준웅 변호사가 면죄부로 덮어버린 영역 바깥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게 촛불 이후 언론의 과제라고 본다. 언제까지 조준웅의 그물 안에 머물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