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덮은 마스크가 무색하게도, 2만5천 명의 외침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익명의 여성들이 모인 ‘불편한 용기’ 팀이 주최한 세 번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700m에 달하는 거리를 메우고 불법촬영을 엄벌하라고 요구했다.

시위 현장은 시작 전부터 거리낌 없는 활기로 가득했다. 100여 명의 ‘불편한 용기’ 팀 자원 스태프가 ‘자이루(‘자매들 하이루’의 준말이자 남성 성기를 비꼬는 미러링을 동시에 가리키는 말)’를 외치며 길을 안내했다. 참가자들은 같은 인사말로 화답하며 손뼉을 마주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광주·대전·대구·부산 등 전국에서 주최 측이 대절한 버스를 타고 현장을 찾았다. 미리 정한 ‘드레스 코드’에 맞춘 붉은 옷의 행렬이 차곡차곡 집회 장소를 메웠다. 참가자들은 시작점에 설치한 무대 외에 세 개의 대형 스크린을 보며 손발을 맞췄다.

집회 주최 측은 이날 오후 5시께 2만5천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추산치를 발표하지 않았으나 집회 장소가 다 차면 2만7천 명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위가 한창이던 5시께, 시작점인 이화사거리에서부터 5분의4 지점인 혜화역 2번출구 너머까지 행렬이 이어졌다.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가자들은 시위 내내 피켓을 들고 ‘수사원칙 무시하는 사법 불평등 중단하라’ ‘몰카실형 9% 시정하라’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 문재인은 지금 당장 제대로 응답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온라인에서 함께 개사한 ‘나비야’ ‘숫자송’ ‘아기염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주최 측은 스티커, 팜플렛, 피켓, 물, 방석, 부채 등 물품을 무료 배포했다.

촘촘하게 세워진 폴리스라인을 사이에 두고 이따금 긴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주최 측은 참가 혹은 진입 자격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해, 경찰은 남성이 폴리스라인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이날 서울 여성경찰 2중대와 경기 지역 2중대가 현장에 투입돼, 사복경찰 포함 여경 500여 명이 시위 현장을 지켰다. 남성경찰은 2중대(300여 명)가 투입됐다.

경찰과 현장 스태프는 기자와 참가자 외 사람이 사진 찍는 행위를 제지했다. 이따금 남성 행인이 시위대를 향해 사진을 찍다 눈에 띄어 경찰이나 스태프가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참가자들은 ‘찍지 마’를 연호하기도 했다. 현장을 지키는 경찰 관계자는 “보통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을 보이기 위해서 시위를 한다. 하지만 이번 시위의 취지는 ‘자신을 찍지 말라는 것’이다. 주최 측의 의도에 따라 경찰이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최측은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나눠주며 쓰라고 적극 장려했다. 참가자도 대부분 마스크·챙모자·마스크를 착용했다. 피사체로 성적 대상화되기를 거부하는 의미이자 스스로 신상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다.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7일 낮 3시께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시위에선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거부하는 뜻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두 명의 참가자가 무대에 올랐다. 한 참가자는 “(오늘) 머리를 자르기까지 8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제가 예쁘면 사람 취급을 받을 줄 알았다. 지금 제 옷장에는 한 번 빨면 누더기가 되는 홀복으로 가득하고, 신으면 30분도 걷지 못하는 하이힐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나는 공주가 아니다. 못생겨도 괜찮다. 뚱뚱해도 괜찮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떨려오자 행렬 뒤쪽부터 시작된 환호가 삭발식을 진행하는 무대까지 퍼졌다.

삭발에 참여한 다른 참가자는 “우리 모두 불편함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서 만났다. 나는 사회의 눈에 좀 더 불편해지려 한다. 이것이 (여자이기 전) 사람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외쳤다.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삭발식 참여자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삭발식 참여자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참가자들은 남성의 불법촬영에 미온적인 정부와 경찰을 규탄했다. 무대에 오른 한 참가자는 “사람이 먼저고, 우리도 사람이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여성이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접 받지 못한 현실에 대해 성별 간 갈등이라 칭했다. 불편한 용기를 저들에게 보여주자”고 외쳤다. 진행자는 “찍는 놈, 올린 놈, 보는 놈, 파는 놈 잡으라는데 왜 계속 잡지 않느냐”고 외쳤다. 이후 터져나온 함성에 발언이 들리지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불법촬영 적발은 2009년 807건에서 2016년 5185건으로 폭증했다. 최근 5년 간 불법촬영 가해자 가운데 98%가 남성으로 나타났으며, 적발된 가해자의 50% 이상이 2회 이상 범죄를 저질렀다. ‘불편한 용기’ 팀은 보도자료에서 “‘일회성인 정부’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몰카 매매 규제, 2차가해 처벌법 통과, 성인 사이트 해외공조 수사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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