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낙태약’ 이미 인터넷에서 마구 유통…안전은 실종”(SBS, 2017년 11월6일)
“인터넷 판매 ‘먹는 낙태약’ 의사들 ‘불완전 유산 위험’”(중앙일보, 2017년 11월6일)

지난해 10월30일 청와대 청원의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 청원이 23만5372명의 서명을 받은 이후 이와 비슷한 보도가 나왔다. 보도 내용은 자연유산 유도약(이하 미프진)은 현재 불법임에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증명된 의사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미프진을 사용한 약물적 유산은 임신중절을 하려면 대부분 불법시술을 해야만 하는 한국에서는 더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5일 서울의 여의도 국회를 찾은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Rebecca Gomperts)는 약물 유산할 때 임신 12주까지는 집에서도 가능하며, 성공률도 높다고 했다. 레베카 곰퍼츠는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의 설립자로 선박과 드론, 로봇, 인터넷을 이용해 임신중절이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에게 임신중절약을 보내는 활동을 해왔다.

▲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는 선박을 이용해 임신중절이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인터넷을 통해 임신중절약을 제공하는 활동을 하는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의 설립자다. 사진=네이버영화 '파도위의 여성들' 스틸컷.
▲ 산부인과 의사인 레베카 곰퍼츠는 선박을 이용해 임신중절이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인터넷을 통해 임신중절약을 제공하는 활동을 하는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의 설립자다. 사진=네이버영화 '파도위의 여성들'.
레베카 곰퍼츠에 의하면 약물적 유산은 두 가지가 있는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리스톨을 함께 사용하면 성공률이 99%이며 미소프롤스톨을 단독으로 사용하면 성공률은 94%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해당 약품을 일반 처방으로 사고, 영국은 병원에서 처방해주고, 캐나다는 약국에서 산다.

임신중절이 금지된 나라에서는 합법 임신중절을 제외하면 이 약을 처방받지 못하기에, 신원을 모르는 이들에 의해 약을 처방받는 부작용이 생긴다. (한국의 경우 부모가 우생학적‧유전학적 장애나 질환이 있거나, 강간 또는 준간강에 의한 임신, 혈족 간 임신 등에는 합법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그래서 청와대도 지난해 11월25일 청원 답변에서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당초 입법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 7월5일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 세계적 연대로 만들어가는 재생산건강과 관리'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7월5일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 세계적 연대로 만들어가는 재생산건강과 관리'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그러나 임신중절이 불법이라서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는 보도보다, 해당 약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더 많다. 미프진 같은 약물이 인터넷에서 유통되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배경은 임신중절이 불법인 현실 때문인데, 이를 짚지 않고 인터넷에서 약을 구하는 게 위험하다는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일보의 “인터넷 판매 ‘먹는 낙태약’ 의사들 ‘불완전 유산 위험’” 기사는 “산부인과 의사 중 이 약의 합법화, 나아가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별로 없다. 대신 위험성을 경고한다”며 “출혈이 심하면 산모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멘트를 넣었다.

조선일보의 “‘낙태약 구해요’ 인터넷 올리니 몇 시간 만에 손안에” 기사 역시 “전문가들은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낙태약 상당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짜 약으로 추정되고, 정품이라 할지라도 의사 처방 없이 함부로 복용할 경우 위험한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기사에서 이런 상황이 임신중절 불법 때문에 생겼다는 건 짚지 않고 인터넷에서 구하는 이런 약은 위험하다는 주장만 강조한다.

▲ 임신중절과 관련된 언론기사 제목들.
▲ 임신중절과 관련된 언론기사 제목들.
리포트 제목이나 내용에 ‘낙태’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임신중절 혹은 임신중지라는 용어가 나온 배경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형법 269조는 ‘낙태’라는 용어를 쓰지만 ‘낙태’라는 단어는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임신중절에 부정적 낙인을 찍는 단어다.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은 의학용어인 임신중절, 임신중단, 임신중지 등을 사용한다. 지난해 11월25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도 낙태죄에 대한 청원 답변하면서 “‘낙태’라는 용어부터 ‘낙인’찍기란 논란이 있으므로 오늘 답변은 가급적 ‘임신중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용어 정리를 했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저에게 인터뷰 따러온 기자들도, 제가 설명한 앞뒤 맥락을 생략하고 결국은 임신중절이 위험하다는 기사를 쓴 걸 봤다. 의사들도 약물적 임신중절 경험이 적기에 전향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주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런 코멘트만 따서 기사를 구성한다”고 지적했다.

윤정원 전문의는 언론이 임신중절을 다루면서 만삭의 임산부 사진, 후기 태아의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임신중절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 임신중절과 관련된 보도를 하면서 후기 태아의 사진을 이용하는 언론보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94%의 임신중절은 12주 내에 실행된다.
▲ 임신중절과 관련된 보도를 하면서 후기 태아의 사진을 이용하는 언론보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94%의 임신중절은 12주 내에 실행된다.
201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절 시행시기는 8주 이내인 경우가 73%이며 12주 이내가 94%이고, 24주 이내가 99%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성장이 거의 완료된 태아 사진을 첨부한다. 한국에서 임신중절이 늦어지는 이유는 불법시술 가격이 비싸 돈을 모으느라, 시술을 받을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워서인데 이런 문제점을 놓치는 보도도 많다. 

윤 전문의는 “외국의 임신중절 관련보도나 인포그래픽 자료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례를 많이봤다. 임신중절과 관련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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