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탄핵 선고 이후 위수령을 발령하고 계엄을 선포하는 문건을 작성한 게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할 시 반발하는 시민들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계엄령 발령과 계엄선포 요건을 따져 진압을 실행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담겼다.

박근혜 탄핵이 기각됐다면 국군기무사령부의 계획대로 계엄이 선포되고 유혈사태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월 기무사령부가 지난해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따르면 당시 “현 상황 평가”에서 “진보(종북)-보수 세력간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특히 촛불집회가 탄핵 기각되면 혁명을 주장한다고 했다. 기무사령부는 “북의 북극성-2호 시험발사(2. 12)에 이어 오는 3월 한미 KR/FE 연습에 맞춰 북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군사도발 가능성 상존”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건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했다.

북의 군사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탄핵 찬성세력을 ‘종북’으로 명시해 위수령 발령 및 계엄 선포의 명분을 확보하려고 했다.

▲ 국군기무사령부.
▲ 국군기무사령부.
기무사령부는 탄핵 기각 결정에 불복해 시위대가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진입 점거를 시도하고 화염병 투척 등 과격양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봤다. 기무사령부는 “진보(종북) 또는 보수 특정인사의 선동으로 인해 집회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학생 농민 근로자 및 시민단체가 가세하고 일부 시위대가 경찰서에 난입하여 방화 무기탈취를 시도하는 등 심각한 치안불안 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핵 선고 전 평화집회를 이어왔는데 탄핵 선고가 기폭제가 돼 폭력집회로 변질될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면서 위수령 발령 및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기무사령부는 위수령과 계엄, 두가지 시나리오를 세우고 시행 요건과 절차 등을 따지고 향후 문제될 위헌 여부도 철저히 검토했다.

위수령이 발령되면 위수사령관은 계엄 상황이 아니어도 재해 또는 비상사태 시 병력을 증원해 주둔지를 방호할 수 있고, 시도지사로부터 병력지원을 요청받을 때 육군총장의 승인을 받아 진압할 수 있다.

기무사령부는 “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하며 대응하고 상황 악화시 계엄(경비→비상계엄) 시행을 검토”한다고 했다. 위수령을 징검다리로 계엄령을 선포해 진압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기무사령부는 위수령 발령 시 “방송 통신 신문 등을 이용해 담화문 발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 3차례 위수령 발령시 대통령이 국방장관 등에게 위수령 발동을 지시하고 위수사령관 명의의 담화문을 발표했다는 참고 내용도 덧붙였다.

기무사령부는 위수령 발령 시 시비 거리를 차단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병력출동 승인을 받을 때 육군총장 승인 후 합참의장과 장관의 별도 승임을 받아 “논란 소지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국군조직법 9조에 따르면 독립전투여단급 이상 부대이동 등 군사 사항은 국방장관은 승인을 얻도록 돼 있다. 헌법소원 제기로 무효를 주장할 수 있지만 위수령은 대통령령에 근거해 군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도 명시했다

기무사령부는 국회가 위수령을 무효화하는 법안을 제정할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당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보인다.

계엄 선포시 시나리오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선포 절차는 “국무총리 보고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 의결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아 선포”한다고 설명했다. “계엄임무수행군”는 기계화 6개 사단과 기갑 2개 여단, 특전 6개 여단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탄핵 선고 시 구체적인 군 병력 동원 인력까지 명시했다.

▲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계엄시행시 시민의 눈과 귀를 막는 언론 통제 방안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계엄협조관(48명)을 중·대령급 요원으로 편성해 24개 정부부처에 파견하고 정부연락관(58)을 소집해 정부 부처를 지휘 감독하기로 했다.

전두환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쿠데타 작업을 한 것처럼 “합동수사본부는 정보수사기관을 조정 감독해 집회 시위 주동자 등 특별조치권을 위반한 계엄사범을 색출, 사법처리”하겠다는 계획도 넣었다.

특히 기무사령부는 “계엄사 보도검열단(48명) 및 합수본부 언론대책반(9명)을 운영”한다며 “군 작전 저해 및 공공질서 침해내용이 보도되지 않도록 언론통제”하겠다고 했다. 또한 “방통위 ‘유언비어 대응반’은 시위선동 등 포고령 위반자의 SNS 계정을 폐쇄하는 등 사이버 유언비어 차단”하겠다고 했다.

이철희 의원실은 “이번 문건은 비상조치의 법적 요건이나 절차를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았다”며 “단계별 발령권자, 증원부대의 지정과 배치, 계엄사의 편성과 업무 등을 망라하는 사실상의 실행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실은 “탄핵 선고를 앞두고 정권 차원에서 군을 동원해 정국을 반전시키려는 위험한 플랜이 가동됐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은 더욱 커지게 됐다”고 밝혔다.

탄핵 선고 시 계엄령을 선포하는 구체적 실행방안이 군 정보기관 문건으로 확인되면서 당시 한민구 전 국방장관의 윗선 개입 여부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건 작성 지시라인 조사도 불가피하다. 실행하지 않은 계획이라서 법적 처벌이 어렵다는 전망도 있지만 기무사령부의 권한을 뛰어넘은 문건이기에 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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