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천안함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하려던 생존장병들의 진술서 원본을 장병들 이름과 주요행적, 장소까지 지운채 변호인에 제공해 방어권 침해라는 반발을 샀다. 재판부는 군사기밀을 제외하고 생존장병의 이름과 행적 등을 작성해 제공하라고 주문했다. 천안함 생존장병의 진술서 원본이 법정에 제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이 재판부 제출 전 변호인에 열람 복사시켜준 ‘천안함 생존장병 진술서’에 모든 장병의 이름과 행적, 장소가 지워져 있었다. 검찰은 700쪽에 달하는 분량의 진술서를 누가누구인지 모르게 해놓고 변호인에 줬다.

피고인측 변호인 김종귀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진술서에서) 순서나 내용에 진술인(이름)이 가려져있고, 내용적으로 많이 삭제돼 있다. 진술인이 누군지조차 안 나와있다”고 밝혔다.

이름을 왜 가리느냐는 김형두 재판장의 질의에 윤수진 검사는 “초반에 생존장병 이름을 기재한 것 제출했는데, (변호인에 제공하는) 사본에 등사해주는 것에는 이름을 가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재판부에 제출하는) 원본 자체는 공개돼 있다. 변호인에게 열람은 시켜주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그렇게 되면 우리들에게 전혀 무의미하고 아무 소용이 없다.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증거 제출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나온 CCTV 영상의 한 사진. 이 사진에 나온 김용현 병장은 유일하게 생존했다. 사진=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촬영
▲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나온 CCTV 영상의 한 사진. 이 사진에 나온 김용현 병장은 유일하게 생존했다. 사진=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촬영
김종귀 변호사도 진술서를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진술서엔 천안함 생존장병의 인적사항 자체가 전부 나와있지 않다. 심지어 내용에도 아무개 수병이 어느 누구와 같이 뭘 했는지 지워서 확인할 수가 없다. (많이 지워진 부분을 가리키면서) 전체적으로 지웠다. 700페이지 분량을 열람해서 과연 재판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심재환 변호사는 “검찰이 불리한 부분 삭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윤수진 검사는 “내용상 가린 것은 국방부 자체 조사 중, 작전구역과 군사상 구역 등 생존전후상황이 아닌 다른 군사기밀이어서 가렸다”며 “이 진술서 자체가 침몰 전후사정을 확인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최대한 복사해줬다. 의구심이 나면 가린 부분을 확인해줄 수 있다. 많은 부분을 가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재환 변호사는 “문서작성자를 알아야 (확실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진술인 이름을 지운 진술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더구나 군사기밀여부를 왜 일방으로 검찰이 판단하느냐. 재판부가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원본 그대로를 제출하는 게 맞다”고 했다.

재판장 뿐 아니라 좌배석 판사도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가렸느냐’고 따지자 검사는 형사소송법 266조 3의 2항 ‘증거인멸 염려’, ‘국가안보 우려’, ‘증인보호’, ‘수사방해 우려’ 등이 있을 때 열람 등사 중 일부를 제한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재판 8년 동안 증인에게 위해 상황이 없었고, 이제와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재환 변호사는 “수사방해와 증거인멸 우려는 전혀 없고, 증인보호의 필요성도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남은 건 국가안보인데, 어디에 국가안보가 우려된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김형두 재판장은 “작전구역 등이 있을 텐데, 진술서에 (진술 장병의) 이름 자체를 가린다는 것이 국가안보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했다.

차범준 검사는 “후타실 영상을 김용현 증인이 증언하면서 이를 보는 과정이 힘들었고,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런 점을 고려해 증인보호 필요성을 엄격하게 본 측면 있다”고 말했다. 차 검사는 “등사하면 외부로 나가는 것을 걱정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심재환 변호사는 “그건 빌미일 뿐이다. 외부 유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것은 이와 무관한 것 같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지운 이름을 다 밝히라고 주문했다. 김 재판장은 “작전구역 이름이나 안보상 필요한 부분은 가리되 그것 외에 아까 변호인이 보여준 내용 중 진술한 장병이 언제 (부대에) 전입했는지, 무슨 업무를 맡았는지는 가리지 않아도 된다. 어디에 도착하니 누구와 누구가 있었다는 내용은 절대로 가리면 안된다. 이런 것을 확인하려고 내라고 한 것인데, 누가 무엇을 했다는 취지의 내용, (사고 당시 나와보니) 주변에 누가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 역시 가리면 안된다”고 밝혔다.

▲ 지난 2015년 4월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천안함 함수를 전시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 지난 2015년 4월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천안함 함수를 전시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애초 진술서는 재판장이 검찰에 주문해 제출하도록 했다. 김종귀 변호사는 지난 3월 출석한 생존장병 김용현 증인신문 때 김형두 재판장은 합조단 보고서에 생존자들 진술이 조금씩 수록된 것을 보고 ‘원 자료가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검사가 ‘있다’고 해서 증거로 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3월 열람복사를 신청했으나 3개월이나 지난 6월19일경에 검찰이 허용해줬는데, 검찰이 뭔가를 계속 지우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천안함 CCTV에 찍힌 희생자들 모습과 시신으로 발견된 당시 모습이 그대로라는 것을 유족 증언으로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CCTV에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던 안전당직자 고 박성균 하사가 시신 발견당시 검은색 근무복을 입고 있다는 의문 제기에 윤수진 검사는 “박 하사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발견했는데 법정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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