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주지와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부의장을 지낸 설조 스님(87)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시민연대) 사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지난 5월1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MBC PD수첩을 통해 보도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과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의 비리와 불법행위 등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단식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설조 스님의 기자회견 내용은 비장했다.

불교개혁을 위한 노승의 비장한 실천

“1980년 이후 적주(賊住: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지 않은 승려)가 행정대표를 하면서 때로는 군화가 전국 사찰을 짓밟았으며, 때로는 민주를 자처한 정권의 경찰봉이 난무하여 총무원을 수라장으로 만들었으며, 때로는 노름꾼의 수괴가 많은 불자들의 존경을 받는 크신 선지식 스님을 종단 밖으로 내모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며, 근자에는 음주로 실성한 자가 살인을 하고 정재를 가로채고 그 악행의 유례가 없는 자가 종단의 행정대표가 되어도 거침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적주와 그 무리들에게 눈치 보며 짓눌리는 유약한 비구와 비구니의 승보에 의지하여 바른 삶을 살려는 재가불자와 이 사회의 정서적 안정을 바라는 많은 이웃을 위하여 적주비구들은 본래의 신분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지금 점유하고 있는 교단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설조 스님은 은처자, 부정축재 등 의혹을 받고 있는 설정 스님과 성추행과 성매매 의혹에 휩싸인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등의 사퇴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뜻이 관철될 때까지 곡기를 끊겠다고 밝힌 것이다. 2016년 10월 말에 시작된 촛불집회가 혁명으로 발전한 데 힘입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사회의 주요 부문에서 개혁이 추진되었지만 조계종은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자승 집행부에 의해 승적을 박탈당한 명진 스님이 지난해 여름에 20일 가까이 단식을 하며 조계종의 적폐 청산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명진 스님과 개혁세력을 오히려 ‘해종(害宗) 행위자들’이라고 몰아붙였다. 결국 인내의 한계에 이른 설조 스님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절을 버리고 시자(侍者)들에게 비장한 ‘유언’을 전한 뒤 귀국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주류언론의 무관심 심각한 문제

설조 스님의 단식이 12일째로 접어든 7월1일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주류언론으로 불리는 신문과 방송 그 어디에도 이 의미심장한 사건에 관한 보도는 전혀 없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다수 언론은 설조 스님의 이러한 단식 투쟁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2018년 7월1일 오후 5시까지 네이버에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는 일간지와 방송통신사, 인터넷 언론사, 지역지와 전문지 고작 10개 매체뿐이었다고 한다. 그마저도 7개 매체(BBS NEWS, BTN불교TV, 가톨릭프레스, 뉴스렙, 불교포커스, 천지일보, 현대불교신문)는 종교전문지로 분류되는 곳이고, MBC조차 설조 스님 단식 등 이후 상황을 보도로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MBC가 내놓은 것은 조계종 적폐 관련 피디수첩 제작에 참여했던 피디가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이 전부라고 한다.

관련 보도를 내놓은 비종교 전문매체는 연합뉴스, TBS 교통방송, 더팩트 세 곳에 불과하다. 연합뉴스는 설조 스님이 단식을 선언한 20일 ‘‘PD수첩’ 여진 계속…조계종 혁신위 성과 낼까’(6월20일) 기사를 한 건을 내놓았을 뿐이다. TBS 교통방송 ‘인터뷰 제4공장/싱가포르 공동성명부터 북·중, 한·러 정상회담까지, 한반도 정세 전망!’(6월25일)도 당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4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일 뿐이었다. 더팩트 ‘조계종 의혹 관련, 설조스님 ‘종단 변화할 때까지 단식 선언’’(6월22일)은 사진 기사이다. 한마디로 주류언론이 ‘침묵의 카르텔’이 아니라 ‘묵살의 카르텔’로 일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주류언론이 보인 ‘묵살의 카르텔’과는 대조적으로 소규모 매체인 불교닷컴은 설조 스님의 기자회견 이래 거의 날마다 관련 기사를 쏟아내 왔다. 답답한 마음을 다스릴 수 없던 나는 지난 금요일 오후 5시께 설조 스님의 단식 현장을 찾아갔다. 천막 앞에는 ‘면회는 5분 이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설조 스님은 30분이 넘도록 대화에 응해 주셨다. 단식을 열흘이나 하신 분이 시종 꼿꼿한 자세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셨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불교닷컴 기자가 그날 밤 대화 내용을 기사로 내보냄으로써 내가 스님을 인터뷰한 셈이 되어버렸다. 관심 있는 분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그 기사를 아래에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 관련기사 : 불교닷컴) “내가 죽어도 반응 없을 총무원…” ]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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