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 맞죠? 젊었어요. 그때 당시 키도 좀 있고.”

2009년 3월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씨의 소속사 로드매니저였던 김아무개씨는 최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방정오(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차남)가 그날(2008년 10월28일) 분명히 왔던 게 맞다”며 “방정오씨가 먼저 가고 다른 일행분들이 나와서 배웅해줬다. 나는 밖에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는 조선일보 높은 사람을 만나는 줄 알았는데 사장이 되게 젊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한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분(조선일보 높은 사람)이 이분(방정오)이었구나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김씨는 2009년 검·경 수사와 이후 재판에서 장씨가 방정오(40)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당시 조선일보 미디어전략팀장)와 만났던 날 “그날 주점 밖에서 늦은 시간까지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장자연이 차에 와서 누군가와 통화했고 어머니 기일이라면서 울다가 다시 주점으로 내려갔다”고 진술했다. 그는 지금도 당시 상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억했다.

[ 관련기사 : “장자연 사건 수사 때 조선일보 압력 있었다” ]

▲ 지난 1월8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 지난 1월8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김씨는 2011년 방상훈 사장이 고소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김 대표의 심부름으로 룸에 양주 1~2병을 가져가니 룸에 방정오를 포함해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몇 명 있었고 술집 아가씨들도 있었다”며 “김종승(장자연 소속사 대표)이 차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조선일보 사장을 만나는 자리가 있으니 와라’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장자연 리스트’ 사건 본조사 권고와 관련해 “나는 (검찰에서) 연락이 오면 당연해 내가 아는 선에서 진술할 수 있는 건 하겠다”면서도 “그런데 (검찰이) 이 사건을 진짜 (재조사)해서 정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장자연 문건에 명시된 ‘술 접대’ 등 강요가 있었는지, 이와 관련된 수사를 고의로 하지 않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지, 수사 외압이 있었는지 등 의혹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위원장 김갑배)가 지난 2일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2차 본조사 사건으로 권고하며 밝힌 취지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위원회에 제출한 사전조사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표현이기에 구체적 조사 내용과 대상이 누구인지는 아직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대검 진상조사단이 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선 장자연씨가 남긴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방 사장’과 관련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핵심으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검찰 과거사위·대검 관계자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 그동안 가장 많은 국민적 의혹의 중심이었던 ‘조선일보 방 사장’과 ‘방 사장 아들’이 재조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장자연 문건’에는 성 접대가 이뤄진 것으로 의심되는 ‘잠자리 요구’라는 표현이 딱 한 번 나오는데 “김성훈 사장(본명 김종승)은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방 사장님이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지난 3월27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 지난 3월27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검·경 수사 기록에 따르면 ‘장자연 리스트’로 거명된 ‘조선일보 방 사장’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다. 이중 방상훈 사장은 수사 결과 장씨와 만난 적이 없는 걸로 밝혀졌지만, 방용훈 사장은 2007년 10월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중식당에서 장씨와 식사를 함께했다.

장자연 문건에는 “그 후 몇 개월 후 김성훈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 접대를 시켰다”고 나온다. 이 부분은 장자연씨가 잘못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스포츠조선 사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이 아니었다. 2008년 9월 이후 스포츠조선 대표이사는 방성훈이다. 방성훈 대표는 방상훈 사장의 삼촌인 방우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장남이자 현 조선일보 2대 주주다.

방상훈 사장의 아들은 방준오(형) 조선일보 부사장과 방정오(동생)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다. 2008년 10월28일 밤 장자연씨가 어머니 기일에 술자리에 나가 만났던 사람은 방정오 전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5월1일 미디어오늘에 직접 “장자연과 같이 밥을 먹었다”고 밝힌 방용훈 사장은 아예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장씨와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호텔 지하 유흥주점에서 술자리를 가진 방정오 전무는 경찰 내사를 받다가 수사가 중단됐다. 방 전무는 2009년 경찰 조사에서 “(술자리에) 늦게 갔다가 일찍 나온 것은 맞다”면서도 “장자연은 얼굴도 모른다. 이 사건은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 관련기사 : [단독] 방용훈 “장자연과 밥 먹었지만 누군지 몰랐다” ]

MBC는 지난 2일 ‘뉴스데스크’ 리포트에서 “고인이 사망 전 남긴 문건을 보면 ‘방 사장’이라고 불린 사람이 식사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돼 있는데, 역시 충분히 수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이러다 보니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과 검사들도 진상조사단이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JTBC도 이날 ‘뉴스룸’에서 “먼저 당시 장자연씨의 피해 사실을 증언했던 장씨의 동료 배우인 윤모씨를 먼저 소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어 장씨의 매니저였던 유모씨, 그리고 소속사 대표였던 김모씨 등도 주요 소환 대상으로 거론된다”고 밝혔다.

JTBC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람들을 대거 무혐의 처분했던, 성남지청 검사도 조사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던 문건에 적힌 ‘조선일보 방 사장’이 누군지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대검 진상조사단의 재조사는 강제수사권이 없기에 조사에 적극적인 참고인 외 피의자들 소환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과거사위가 장자연 사건 중 공소시효가 남은 강제추행 혐의 재수사를 권고한 것처럼 본조사 결과 재수사 대상이 더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만약 장씨가 소속사와 부당한 전속계약에다가 소속사 대표의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 접대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성매매처벌법의 공소시효(10년)도 남아 있다. 하지만 김태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준경)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성 접대 피의자들이 강압이 아니라 소속사 대표에게 상납받은 거라면 공소시효가 지났고 피해자가 생존하지 않아 처벌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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