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4월4일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순덕씨 부고기사에서 이씨를 “관부재판 마지막 원고”라고 소개한 건 오보였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가 해당기사를 인용하면서 논란이 됐다.

관부재판을 다룬 최초의 영화 ‘허스토리’로서는 옥의 티가 됐다. 다만 영화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부분은 아니다. 영화가 다 끝난 뒤 엔딩자막에 지난해 4월4일 ‘관부재판’에 참여한 마지막 원고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관부재판은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1992년 12월부터 약 10년간 하‘관’(시모노세키)과 ‘부’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 등을 요구한 소송으로 공식 명칭은 ‘부산 종군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이다. 1심에서 위안부 피해자 3명은 일부승소했다.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은 1인당 30만엔(약 300만원)을 선고했고, 근로정신대 7명은 패소했다.

▲ 관부재판 1심 판결에서 근로정신대 사건이 기각되자 판결에 비통해 하는 아사히신문 보도 속의 양금덕 할머니 모습. 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 관부재판 1심 판결에서 근로정신대 사건이 기각되자 판결에 비통해 하는 아사히신문 보도 속의 양금덕 할머니 모습. 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하지만 실제 원고 10명 중 2명이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정신대로 관부재판에 참여했던 양금덕씨는 관부재판 패소 이후 1999년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패소했다. 2012년 다시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고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머물고 있다. 또한 도쿄 아사히토 방적공장에 동원된 이영선씨도 살아 있다.

영화 제작사 측은 지난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난해 4월4일 뉴스에 보도된 내용이라 엔딩에 문구를 넣었는데 개봉 이후에 한 분이 생존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감독님 등이 함께 양금덕 할머니를 찾았다”며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연출진은 양금덕씨가 사는 광주를 찾아 사과하고 영화의 의미 등을 공유하며 오해를 푼 것으로 전해졌다.

이순덕씨가 세상을 떠난 지난해 4월 초 언론보도를 보면 많은 매체가 이씨를 ‘관부재판 마지막 원고’라고 표현했다. 이는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가 SNS에 이씨를 관부재판의 마지막 원고라고 쓴 것을 언론이 검증 없이 옮긴 결과다. 미디어오늘 역시 윤 대표의 발언을 인용하며 오보를 냈다.

윤 대표는 지난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근로정신대가 아닌) 위안부 할머니 중 마지막 원고였다”고 설명했다.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단체이므로 윤 대표는 관부재판에 참여한 위안부 3명 중 이순덕씨가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원고라고 한 것이다.

▲ 관부재판 원고 일부승소 소식을 다룬 일본 신문 보도. 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 관부재판 원고 일부승소 소식을 다룬 일본 신문 보도. 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결과적으로 성노예로 끌려가진 않았지만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근로정신대를 외면한 꼴이 됐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대표는 지난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감독과 제작진이 광주에 와서 양금덕 할머니께 사과를 했다”며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실관계는 바로잡아야 했지만 영화 자체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상영금지가처분이나 다른 법적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안부를 중심으로 다루긴 했지만 영화 ‘허스토리’가 그간 한국사회에서 구분하지 못했던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이는 한국 정부의 무관심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정신대와 위안부 피해자 간에 또는 국민들 사이에서 용어에 대한 혼동을 부채질하거나 방조한 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오랜 세월 정신대란 말은 곧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사용됐다. 따라서 강제노동착취를 당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위안부는 아니지만 일제에 피해를 당했다’고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자칫 위안부와 선을 그으며 위안부를 공격하는 모양새로 비칠까 우려해서다.

▲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이 대표는 현실을 감안해 문제제기 과정에서 오보를 낸 언론이나 이를 전한 영화 ‘허스토리’를 크게 탓하지 않았지만 인권 이슈를 다루는 언론의 부실 검증을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대표는 “무관심 속에서 오해나 잘못된 표현이 굳어지고 보편화됐다”며 “앞으로 근로정신대 관련 연구물이나 예술작품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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