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보도에 저와 김(종천 신임 의전)비서관 사이의 갈등이나 인사 문제를 이야기하던데 정말 조선일보는 지난 1년 내내 참 대단하다. 그 ‘신박’한 해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의를 밝혔다가 거둬들인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달 30일 오전 경향신문에 전한 메시지다. 그는 조선일보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날 조선일보는 “‘맞지도 않은 옷 너무 오래 입었다’ 탁현민, 사의 암시? 인사 불만 표출?”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탁 행정관과 김종천 신임 의전비서관의 ‘인사 갈등설’을 제기했다.

▲ 2018년 6월30일자 조선일보 6면.
▲ 2018년 6월30일자 조선일보 6면.

조선일보는 이 보도에서 “김종천 비서관은 임종석 비서실장의 최측근”이라며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탁 행정관이 이번 인사에서 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탁 행정관을 “직급은 2급이지만 ‘실세 왕(王) 행정관’으로 불렸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년여 간 ‘왕 행정관’ 관련 보도를 집요하게 쏟아냈다. 지난해 5월부터 현재(2018년 7월3일)까지 조선일보 지면 가운데 ‘탁현민’ 이름 석 자가 언급·등장하는 기사·칼럼 등은 모두 81건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일보(43건), 경향신문(42건), 한겨레(36건) 등을 압도했다. 같은 보수 언론으로 분류되는 동아일보(45건), 중앙일보(44건), 문화일보(20건)와 비교해도 조선일보의 ‘탁현민 집착’은 유별나다.

언론이 탁 행정관을 주목한 까닭은 그가 쓴 책이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을 담아서다. 더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끈끈한 인연도 작용했다. 

▲ 지난해 5월부터 현재(2018년 7월3일)까지 조선일보 지면 기사 가운데 ‘탁현민’ 이름 석 자가 언급·등장하는 기사·칼럼 등은 모두 81건이다. 사진=미디어오늘
▲ 지난해 5월부터 현재(2018년 7월3일)까지 조선일보 지면 기사 가운데 ‘탁현민’ 이름 석 자가 언급·등장하는 기사·칼럼 등은 모두 81건이다. 사진=미디어오늘
그럼에도 조선일보가 타 신문사 보다 2배, 많게는 4배 가까이 탁현민 보도를 쏟아낸 건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한다. 4·27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4월25일자 4면 제목은 “‘DJ 민어’ ‘노무현 쌀’ ‘윤이상 문어’… 정치색 듬뿍 친 만찬메뉴”였다.

청와대와 회담 준비 관계자들이 정상회담 성공을 바라며 남북 평화에 심혈을 기울였던 인사들을 상징하는 만찬 메뉴를 준비한 것이었지만 조선일보는 제목에서 “정치색 듬뿍 친 만찬”이라고 평가절하한 뒤 만찬을 “탁현민 스타일의 과도한 의미 부여”라고 비판했다.

지난 5월26일자 토요일판에는 “특낙·불낙·생낙… 정권 바뀌어도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은 ‘신(新) 화이트리스트’라는 부제와 함께 “임종석 비서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한병도 정무수석, 탁현민 선임행정관 등 광흥창팀 멤버 대부분이 청와대로 직행했다”라고 썼다. 문재인 정부가 능력보다 ‘코드 인사’를 중시하고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대동소이하다는 취지였다.

▲ 조선일보 2018년 5월15일자 10면.
▲ 조선일보 2018년 5월15일자 10면.
앞서 5월15일자 제목도 다소 악의적이다. 기사 제목이 “판사가 정한 선고일 ‘王행정관’ 탁현민 ‘그날은 안됩니다’”였는데 ‘왕 행정관’인 탁 행정관이 판사보다 더 위에 있다는 뉘앙스다.

지난 4월28일자 “‘세상과 바람났다’는 여사님… 뒷심은 숙녀회?”라는 기사에서도 탁 행정관이 등장한다. 조선일보는 “김(정숙) 여사가 드루킹 사건에 연루됐는지가 화제가 된 이유는 역대 영부인 중 가장 강력한 ‘실세 영부인’으로 불리기 때문”이라며 “김 여사의 대표적인 기반은 ‘숙명여고 동창회’, 일명 ‘숙녀회’다”라고 썼다. 이어 “숙녀회 외 김 여사 인맥으로 분류되는 사람 중에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있다. 탁 행정관은 ‘문의 남자’로 알려졌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와 더 가깝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 문갑식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지난 2월24일 “탁현민과 이윤택·오태석·고은은 막상막하다”라는 칼럼을 썼다.
▲ 문갑식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지난 2월24일 “탁현민과 이윤택·오태석·고은은 막상막하다”라는 칼럼을 썼다.
저서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비하했다는 비판받는 그와 실제 성폭력 가해 의혹을 산 인사를 동일선에 놓고 보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 3월7일자 기사 제목은 “이윤택·탁현민서 與당원까지… 野 ‘좌파 성도착 증세’”였다. 문갑식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이보다 앞서 2월24일 “탁현민과 이윤택·오태석·고은은 막상막하다”라는 칼럼을 썼다. 문 전 편집장은 “세 노인(이윤택·오태석·고은)이 치사하다면 탁현민은 엽기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밖에도 “이벤트 솜씨 얼마나 좋기에… 장관·실장도 손 못대는 ‘王행정관’”(2017년 8월23일), “아무도 못 막는 ‘쇼’ 행정관”(2017년 8월23일 만물상), “‘여성 비하’ 탁현민 경질 꺼냈다가… 오히려 경질 압박받는 여성부 장관”(2017년 8월31일), “평양 가는 탁현민, 남북 문제까지 보폭 확장”(2018년 3월22일), “王행정관 떠나면 靑 행사 누가 하나”(2018년 6월30일 팔면봉) 등의 기사·칼럼은 탁 행정관 영향력을 과도하게 해석했다.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등 그가 스스로 자초한 논란과 별개로 조선일보의 ‘집착’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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