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직원연대(이하 직원연대)가 ‘조양호 일가 퇴진 운동’을 지속하는 가운데, 직원연대 직원들이 최근 석연치 않은 전근 발령을 받았다. 일부 직원들은 색출·채증을 해 온 회사가 ‘맛보기’로 표적 탄압에 나섰다고 추측했다.

대한항공 일반직 A씨(48)와 정비본부 소속 B(49)·C(44)·D씨(51)는 최근 인사 이동 명령을 받았다. A씨는 지난달 21일 60여 일 간 부산으로 파견되는 출장 명령을, B씨는 지난 22일 기한 없는 제주 전근 명령을 받았다. 정비사 C·D씨도 지난달 25·26일 차례로 부산으로 전근됐다. 모두 직원연대 내 의결기구인 운영위원회 소속으로 20년 넘게 김포·인천에서 근무했다.

▲ 대한항공직원연대(직원연대)는 6월21일 오후 12시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 거리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 을 촉구하며 게릴라 캠페인을 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 대한항공직원연대(직원연대)는 6월21일 오후 12시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 거리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 을 촉구하며 게릴라 캠페인을 열었다. 사진=민중의소리

인사 명령은 사전 상의없이 갑자기 통보됐다. 통상 전근 인사가 날 땐 지원자를 우선 배정하고, 지원자가 없으면 관리자가 후보자와 사전상의한 뒤 전근 대상을 정한다. 이들은 상의 절차없이 전근되기 불과 2~3일 전 인사 이동을 통보받았다. C씨는 자격 기준에 미달됐고 전근 지원자가 다수 있었음에도 인사가 강행됐다. 4명 모두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 기약없이 가족과 떨어져 지낼 상황에 놓였다.

이들이 지난 5월 본격화한 직원연대 주축인 점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회사 색출 작업이 가동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30년차 직원 E씨는 “공문 형식은 다 갖춰놨겠지만 20년 넘게 김포에서 일하던 사람을 뭣하러 이 시점에 갑자기 부산에 보내겠느냐”며 “직원들 위축시키기 위한 간보기 작업”이라고 말했다.

특히 E씨는 A씨가 회사와 법정 싸움을 오래 한 ‘찍힌 직원’이라는 점에서 쉽게 선택된 거라 추측했다. 2000년 노조 민주화 운동을 했던 A씨는 2003년 대기발령을 받고 2005년 부당해고돼 법적 다툼 끝에 2008년 복직했다. A씨는 승무원이었지만 복직 후 대한항공이 일방적으로 직군을 일반 사무직으로 바꿔 전직무효확인소송까지 치뤘다.

표적 탄압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지금처럼 노조 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1990~2000년대에 직원들이 겪은 부당 인사와 유사해서다. 1991년 입사해 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정비사 이아무개씨(47)씨는 1999년 갑자기 대전의 연구소로 발령받고 1년 간 팩스 수·발신, 문서 정리 등의 일을 했다. 이씨는 당시 결혼을 앞두고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는 아버지를 부양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노조가 회사 상대로 크게 투쟁했던 1995년에도 갑자기 제작부서로 전보돼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넣기도 했다.

▲ 1995년 부산테크센터 창공회관(민주광장)에서 당시 노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이 근무제도개악을 막기 위해 집단 삭발을 하며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 1995년 부산테크센터 창공회관(민주광장)에서 당시 노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이 근무제도개악을 막기 위해 집단 삭발을 하며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 지난 6월 인사이동 관련 대한항공 직원들 카카오톡 익명 단체 대화방.
▲ 지난 6월 인사이동 관련 대한항공 직원들 카카오톡 익명 단체 대화방.

김해 정비공장의 박아무개씨(47)도 1995년 복직되며 제주로 발령났다. 박씨는 노조 민주화운동을 하다 1993년 불법집회 주도, 불법 유인물 유포 등의 사유로 해고됐다. 박씨는 4여 년 간 제주에서 근무하다 김해로 복귀했다.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서울 김포 정비사들도 일방적인 인사 발령을 받고 자리를 옮겼다. 방아무개씨는 1990년대 후반 광주공항으로 일방 전근됐고 조아무개 과장은 2000년대 초반 경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전근된 뒤 3여 년 후에 귀국했다.

E씨는 “물리적으로 동료를 떼어 놔 세력을 약화시키고, 거기다 회사가 회유를 하면서 동료 간 불신을 유발할 수 있었다. 당사자도 크게 위축된다”며 “인사권은 회사 재량이니 형식만 갖추면 부당 인사를 감출 수도 있다. 유용한 도구인 셈”이라고 말했다.

부당 전보 피해자인 이씨는 “일방적 전근은 당사자에게 매우 고통스럽다. 가족 문제, 아이 학교 문제도 있고 그 동안 맺은 모든 관계가 자신이 살아온 근거지에서 이뤄졌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으로 혼자 떨어지는 셈”이라며 “회사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그때와 똑같이 하니까 안타깝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인사부에서 발령낸 것이 아니라 각 본부에서 일상적인 업무지원형태로 이뤄진 전근이다. 업무지원이 필요한데 지원자가 없을 경우 대상을 정할 수밖에 없다”며 “본부는 당사자가 거부할 경우 원직 복귀를 시켜줄 수 있다. 회사는 직원연대를 색출·채증한 적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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