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노동자 집회가 열렸다. 30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조합원 약 8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은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양 차로를 가득 채웠다. 민주노총 조합원 80만 명 가운데 10분의 1에 달한다. 민주노총은 이날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여하려고 조합원들이 타고 온 상경 버스만 900여 대라고 했다.

민주노총 산하 지부별로 다른 옷 색깔은 광화문 광장을 색색으로 채웠다 장마가 시작되고 태풍이 예고된 날인데도 이들은 각각 사전집회와 행진을 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여당의 노동정책이 연이은 노동법 개악과 재벌·자본 편향 노동정책으로 180도 전환하면서 노동존중사회 기조가 구호로 전락했다. 이번 집회는 현장 노동자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결과”라고 밝혔다.

취재진과 만난 노동자들도 기대했던 정부에 실망을 드러냈다.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김명호 부일인쇄지회장은 “최저임금법을 엉망으로 만든 정부와 국회에 화가 나서 참석했다”고 밝혔다. 충남 논산에서 온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와 올해 총 4번 집회에 참여했는데 오늘 규모가 가장 크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정규직 집단을 세밀하게 관찰해 빨리 공약을 실행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 민주노총은 이날 전국 각지 조합원 8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사진=노컷뉴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 민주노총은 이날 전국 각지 조합원 8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사진=노컷뉴스

이들은 최저임금법 개정을 ‘개악’으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해온 가운데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됐지만, 상여금과 복리후생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한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임금이 인상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관련 ‘속도 조절론’을 펴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런 흐름을 두고 ‘사실상 공약 폐기’라며 반발한다.

집회에 참석한 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은 “집권 여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연봉 2500만 원 미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 개악 피해가 없다고, 피해가 생긴다면 사퇴하겠다고 했다”며 “내가 피해자다. 당장 우리 통장에 들어올 월급이 매월 19만 원씩 줄게 생겼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최저임금 1만 원, 정규직 임금의 80% 공정임금제, 노동존중 세상을 약속했다”며 “이런 약속들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누구 말처럼 ‘이니가 알아서 다 해줬나?’”라고 비판했다.

무기계약직 전환 직종을 대상으로 한 직무급제인 표준임금제도 논란이다. 표준임금제는 청소, 경비, 조리·사무, 시설관리 등 등급별로 근속년수에 따른 기본급을 정하는 제도다. 근속 16년차 이상이 1년차에 비해 약 20만 원 인상되는 구조라 근속수당이 무력화된다는 점에서 비판 받는다.

김성환 전국민주연합노조 위원장은 “평생 가도 정규직 임금의 38% 수준이다. 1등급 한우 얼마, 2등급 한우 얼마 하는 식으로 사람을 신분으로 나눈다”고 말했다. “20년을 일하든 30년을 일하든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맴돈다. 현대판 노예제, 신분제”라고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자회사와 무기계약직 고용, 임금 차별형 직무성과급제 도입 등 엉터리 비정규직 제로정책으로는 노동존중 정부라 불릴 자격이 없다”며 “주52시간 미적용 처벌 유예, 탄력근로시간제 기간 확대 추진 등 자본 요청을 온전히 수용하고 있는 정부가 어떻게 노동존중 정부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법 개정도 요구했다. 전체 노동자의 10% 이상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처분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선 해고 대상자, 외주·하청 노동, 저임금 등에 내몰린 가운데 전체 노동자 90%는 단체협약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집회를 시작으로 △노동적폐 청산 △노동 기본권 확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목표로 하반기 총파업과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집회 참여자들은 “말로만 노동존중 문재인 정권 규탄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투쟁으로 쟁취하자”. “기다림은 끝났다 총파업 총력투쟁 비정규직 철폐하자”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각각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국무총리 공관, 헌법재판소를 향해 행진했다. 행진은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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