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떠올리면 따라붙은 말이 있다. ‘패싱’이다. 김 장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패싱’으로 귀결된다. 고정된 틀 안에 가둬버리면 헤어나올 수 없는 프레임의 위력이다.

포털 다음에서 “김동연 패싱 논란”으로 검색된 기사는 400건에 이른다. 언론 보도만 보면 실제 김 장관은 패싱당했고 현재도 패싱되고 있다.

최초 패싱 논란의 계기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에서다.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다른 의견을 주고 받았다. 언론은 일제히 장하성 실장과 갈등설을 쓰고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으로 볼 때 김동연 장관이 패싱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언론은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 컨트룰타워는 누구인가’라고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지난달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놓고 헤프닝이 벌어졌다. 애초 문 대통령의 발언 원고에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주시고”라고 적혀 있자 언론은 김동연 장관이 패싱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현장에서 (대통령이)말씀하실 때는 ‘우리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라고 (김동연 장관에게)힘을 실어줬다”고 전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일부 언론에서 오늘 재정전략회의 분위기와 관련해 김동연 부총리의 판정패나 패싱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며 “오늘 회의는 김동연 부총리가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고 주도적으로 의견을 조정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언론은 대변인의 해명을 김동연 장관 패싱 논란의 소재로 재차 쓰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의 프레임을 강화시켰다.

지난 8일 급기야 김동연 장관은 패싱 논란에 입을 열었다. 김 장관은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컨트롤타워 논란은 빛에 의해 나타나는 그림자를 쫓는 그림자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언론 보도를 질타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김 장관 주재회의에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참석했으니 컨트롤타워 논란이 수그러드는 것이냐고 물었다. 기자들은 늘 김 장관 앞에 패싱 논란을 전제로 깔아놓고 김 장관이 컨트롤타워가 맞느냐고 물었다. 김 장관은 이에 “누가 회의에 참석했다고 컨트롤타워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논란에)연연할 일도 없고 경제팀이든 수석이든 자기가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다 컨트롤타워”라고 말했다.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 관련 서울-세종간 영상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장관들과 영상을 통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 관련 서울-세종간 영상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장관들과 영상을 통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김 장관은 패싱 논란에 적극 해명했지만 패싱 논란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논란을 조장하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20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를 마치고 나온 김동연 장관과 장하성 정책실장이 한 발언을 소개한 중앙일보 보도가 대표적이다.

기자는 회의 대표실에 나온 김 장관에서 “장 실장과 불화는 없냐”라고 물었고, 김 장관은 “여러가지 의견을 다양하게 토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자는 “다양하게 토의하는데 불화는 있는 것 아니냐”고 재차 질문했다. 불화가 있다고 인정하라고 강요한 셈이다. 이에 김 장관은 답하지 않았다.

이어 장하성 정책실장이 나오자 기자는 “김 부총리와 의견 조율이 잘 되나”라고 질문했고, 장 실장은 “물론이다. 갈등하면 이렇게 일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를 두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미묘한 장면을 연출했다”고 결론을 지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쳤느냐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충돌하면서 불화설이 제기된 상태”라는 것도 상기시켰다.

청와대와 부처 사이 이견은 종종 표출된다. 갈등설이 나올 수 있고 실제 갈등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동연 장관 패싱 논란은 언론이 김 장관이 패싱을 ‘당하고’ 있다는 프레임에 가둬놓고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가상의 덫에 가깝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리기로 했던 규제개혁 점검회의의 전격 취소에도 언론은 김동연 장관에게 경고장을 보냈다고 해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것과는 관계없다”며 “대통령께서 속도가 뒷받침이 안되는 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며 속도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김 부총리와 기획재정부에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규제혁신점검회의 속을 들여다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속도’를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일례로 이날 보고될 규제혁신 보고서에 자율주행차 장기과제 완료시점을 ‘2035년’이라고 명시했다. 자율주행차 육성은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안이다. 관련 부처는 국토교통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격 회의를 취소한 것은 김동연 장관의 손발이어야 할 정부 부처들의 안이한 인식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높다. 규제혁신의 수장으로 김 장관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준 것이다. 김동연 장관도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연기한 것은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언론이 프레임을 덮어씌우니 이제 패싱을 하고 갈등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로 변한 것도 사실”이라며 “언론이 보는 것과 실제 차이가 큰데 결국은 김동연 패싱 논란이 문재인 정부 정책 흔들기로 확산되더라. 언론이 무섭긴 무섭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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