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운동에서도 확인했다. 성폭력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때 미디어는 ‘폭력’이 아닌 ‘성’에 집착한다. 음란한 사회다. 미투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존중한다면서도 미투 운동을 선정성으로 포장했다. 피해를 필요 이상으로 묘사하고 재연 영상을 보여준다.

‘폭력’이라고 여기지 않으니, 피해 여성이 ‘꽃뱀’이었다는 소문도 쉽게 나돌았다. ‘성’에만 집착하니, ‘펜스룰’을 해법으로 여기는 이들도 나타났다. 사석에선 ‘이성끼린 술도 못 먹겠다’는 발언도 꽤 나왔다. ‘미투 부작용’이란 말이 수많은 기사 제목에 등장했다. 모두 어렵게 입을 연 이들을 향한 2차 가해다.

급기야 미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나왔다. 이 자체로 문제다. 미투 운동은 가십거리로 소비할 일이 아니라서. 영화 ‘미투 숨겨진 진실’(감독 마현진)의 포스터와 예고편 영상이 공개됐다. 제목부터 논란이다. 마치 2018년 상반기 내내 이어진 미투 운동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 영화 '미투 숨겨진 진실' 포스터
▲ 영화 '미투 숨겨진 진실' 포스터

이 영화는 학생이 대학교수에게 성상납하고 학내에서 이득을 취한다는 스토리다. 학생을 ‘꽃뱀’으로 묘사하며 스스로 교수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예고편엔 등장한다. 공개된 예고편 영상은 ‘19금 영화’라는 수식어와 함께 떠돈다.

예고편 영상은 한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제 안에 괴물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폭로 이후 기자들 앞에서 해명하던 몇몇 유명인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성욕을 참지 못한 개인의 일탈로 성범죄를 그렸다. 이런 설정부터 오류다.

외환위기 이후 가정폭력이 증가했다는 명제가 퍼졌다. 스트레스 받은 가장이 아내에게 화풀이 했다는 해석이다. 가정폭력의 원인이 스트레스일까. 스트레스 받은 아내가 남편을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약자는 내면에 괴물이 들어왔다고 강자에게 화풀이 하지 않는다. 가정폭력은 부부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보여줄 뿐이다.

직장이나 동종업계에서 벌어진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권력 행동에 이유를 찾는 건 어렵고, 큰 의미도 없다. 폭력을 조장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공론장에서 폭력을 다룰 땐 폭력이 가능했던 조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조건을 제거해가는 게 미투 운동 이후 과제다.

영화의 설정부터 왜곡했으니 이후 전개는 포르노로 흐를 수밖에 없다. 영화인 모임 ‘찍는 페미’는 지난 28일 “영화계는 그 특유의 수직적·남성 중심적 분위기로 인해 권력형 성폭력이 난무하는 업계”라며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고 규탄하기는커녕 미투 운동의 당사자, 성폭력 피해자들을 성적 대상화한 ‘미투 숨겨진 진실’을 만들었다”고 지적한 뒤 “이 영화는 제작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영화는 성범죄를 축소하거나 합리화할 우려가 있다. 포르노그래피(예고편을 다 보면 부인하기 어렵다)는 성폭력을 ‘정상적이지만 자극적인 성관계’로 묘사한다. 이를 위해선 여성도 관계에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다는 설정이 필요하다. ‘꽃뱀’이 포르노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영화 '미투 숨겨진 진실' 예고편 일부
▲ 영화 '미투 숨겨진 진실' 예고편 일부

미투 운동 국면에서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존경했다거나 혹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정치적으로 비난할 동기가 있다는 식의 마타도어가 퍼졌다. 피해자도 특정한 목적으로 권력자에게 접촉해놓고 뒤늦게 뒤통수를 쳤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예고편 영상을 볼 때 이 영화가 말하는 ‘숨겨진 진실’은 ‘도덕적으론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합의한 관계였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현재 SNS에선 ‘#미투_상영_반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다. 상영반대 운동은 처음이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범죄를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은 영화 ‘토일렛’(감독 이상훈)도 지난해 상영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감독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이용했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지만 해명은 더 큰 비난을 불렀다. ‘토일렛’ 홍보 문구는 살인사건을 ‘우발 범죄’로 표현했다. 역시 폭력을 합리화하거나 축소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다.

‘찍는 페미’는 “‘토일렛’ 제작 사실이 알려지며 영화계는 거센 비판에 부딪혔다. 많은 여성이 연대했던 #토일렛_상영_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미투 숨겨진 진실’과 같은 영화가 또 다시 제작된 건 영화계 내 젠더감수성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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