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터키의 유로 2012 예선이 있던 2010년 10월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경기가 끝난 뒤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 자신의 딸, 슈테판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 등과 독일 대표팀 라커룸을 찾아 3대0 승리를 거둔 선수들을 격려했다.

메르켈 총리가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계 선수 메수트 외질(Mesut Ozil)을 격려하는 사진이 다음 날 독일 스포츠신문에 실렸다. 외질은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독일축구협회(DFB)는 발끈했다. 테오 츠반치거(Theo Zwanziger) 회장은 메르켈 총리가 자신과 상의 없이 불쑥 라커룸을 찾은 것에 몹시 불쾌해 했다. 츠반치거 회장은 경기 관람은 했지만 라커룸 현장에는 없었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0년 10월 독일과 터키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 라커룸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테오 츠반치거 회장은 메르켈 총리가 자신과 상의 없이 불쑥 라커룸을 찾은 것에 불쾌해 했다. 사진=텔레그래프 홈페이지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0년 10월 독일과 터키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 라커룸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테오 츠반치거 회장은 메르켈 총리가 자신과 상의 없이 불쑥 라커룸을 찾은 것에 불쾌해 했다. 사진=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츠반치거 회장은 정치인이 스포츠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당시엔 터키계를 포함해 이민자 논쟁이 뜨겁던 시기였다.

라커룸은 선수들의 사적 공간이자 감독 지시를 공유하는 또 하나의 운동장이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외엔 접근을 불허한다. 결국 메르켈 총리는 츠반치거 회장에게 전화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 일화가 떠오른 건 조선일보 기사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이 끝난 후 대표팀 라커룸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이 아쉬운 패배에 눈물을 쏟는 손흥민 선수를 달래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여러 언론이 이 소식을 영상과 사진, 기사 등으로 다뤘다. 그 가운데 유독 논조가 튀는 기사가 있었다.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비즈’(조선일보는 조선비즈 주식 50%를 소유하고 있다) 기자들이 쓴 “‘손흥민이 어디 갔어?’ 文대통령 선수단 라커룸 격려방문 논란”이라는 제목의 지난 26일자 온라인 기사다.

조선비즈 기자는 “우리 대표팀 라커룸에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문 대통령은 손흥민 손을 잡아끌어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오른팔을 세워 올리는 ‘파이팅’을 시켰다”고 당시 현장을 묘사했다. 문 대통령 내외와 수행단이 강압으로 혹은 선수들을 홍보용으로 동원한 것처럼 보도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비즈’ 기자들이 쓴 “‘손흥민이 어디 갔어?’ 文대통령 선수단 라커룸 격려방문 논란”이라는 제목의 지난 26일자 온라인 기사.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비즈’ 기자들이 쓴 “‘손흥민이 어디 갔어?’ 文대통령 선수단 라커룸 격려방문 논란”이라는 제목의 지난 26일자 온라인 기사.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이 끝난 후 대표팀 라커룸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이 끝난 후 대표팀 라커룸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사진=청와대

그러나 문 대통령이 등을 두드리자 격하게 쏟아진 손흥민의 눈물에서 두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이 기사 작은제목에 “울고 있는 손흥민 끌고와 ‘기념촬영’”, “김여사 락커룸 입장엔 ‘성적감수성 부족’” 등을 달아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이 보도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만 댓글 2만3700여개가 달렸다. 보도 목적이 논란을 부르는 데 있었다면 성공했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종이신문’에선 볼 수 없다. 본지 기자가 아닌 조선비즈 기자들은 온라인 기사만 작성한다. 종이신문은 본지 기자가 담당한다. 애초부터 온라인 독자를 겨냥한 ‘자극 콘텐츠’였다. 조선일보 한 기자도 “의도가 명확한 기사였다”고 혹평했다.

이날 문 대통령 방문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홍명보 전무 등 협회 관계자들과 함께 이뤄졌다. 메르켈 총리의 ‘불쑥 방문’ 논란과 차이가 있다. 방문 소식을 사전에 선수들이 몰랐다면 그래서 선수들이 불편했다면 협회를 비판할 수 있다. 대표팀 선수단 관리 책임은 감독과 협회에 있다. 그럼에도 일부 온라인 비난 여론 등을 끌어모아 ‘문재인 논란’을 생산하는 보도 방식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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