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는 인생을 살아오며 언제나 똑같은 원칙이 보였다고 한다. 바로 ‘진실만이 우리를 가장 덜 다치게 한다’는 것.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며 나는 이 말을 더욱 수긍하게 됐다.

4월17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삼성전자서비스 원청과 직고용을 합의했다. 직고용 합의에 탄력을 받은 지회는 650명 수준이던 조합원을 두 달 만에 약 1500명으로 끌어 올렸다. 한켠에선,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둘러싼 노조파괴 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 당했다. 물론 영장 기각이라는 힘 빠지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경찰, 그 외의 공범들이 어떻게 노조를 와해시키려 했는지가 드러났다.

노동계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건만, 정작 이 흐름에 재를 뿌린 인물은 노동계 내부에 있었다. 금속노조 간부가 노조파괴 공범자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노동계는 혼란에 빠졌다. 탄원서 제출을 시작으로, 해당 간부의 각종 유착 의혹도 줄줄이 나왔다. <참세상>은 지난 5월부터 금속노조 간부 조아무개씨의 탄원서 제출 배경과, 조씨가 주축이 됐던 2014년 블라인드 교섭 직후 조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심리상담업체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4년째 위탁계약을 맺고 있으며, 조씨의 조언을 통해 지회 간부가 해당 업체를 선정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최근에는 조씨가 지회 전 간부의 위로금 6천만원 수령 과정에서 중개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기사화했다.

조씨는 내내 ‘전략전술’을 강조하며 본인을 변호했다. 조씨는 자신에 대한 징계절차가 시작되자 금속노조 경기지부 운영위 회의에서 탄원서는 직고용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 교섭, 최 전무에게 탄원서를 써준 것 모두 노조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최근 밝혀진 사실들은 ‘블라인드 교섭’이 결국 노조 파괴의 자장 안에 있었다는 근거를 뒷받침한다. 최근 노동부 장관 보좌관 출신이 노조 대응작업을 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내 종합상황실의 자문위원을 맡아 ‘노조 와해 과외선생’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한겨레의 보도로 밝혀졌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진행된 회의로 삼성전자 관계자까지 참여해 노조 탈퇴 회유, 기획 폐업, 단체 교섭 지연 등을 기획했다고 한다. 또 자문위원 A씨의 조언에 따라 노조원들의 정보(‘이혼하고 부인과 딸은 따로 거주하며 생활비 지원 중’)도 수집됐다. 조 씨가 탄원서를 써준 최평석 전무는 이 종합상황실의 실장이었고, 노조 대응 총괄책임자로서 A씨에게 집중 과외를 받은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이 더 있다. 노동계 정보를 오랫동안 담당해왔다던 경찰청 현직 간부 B씨. 검찰은 B씨가 삼성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고 삼성 측에 노조 동향과 관련한 정보를 건넸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그를 소환해 조사했다. B씨는 노조의 요구 사항을 사측에 전달해주는 ‘중재자’이기도 했다. 그는 블라인드 교섭을 주선하고, 교섭 형태를 바꾸는 등의 역할을 했는데 결국 조씨와 같은 포지션이다.

삼성은 이런 ‘중재자’들을 만들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민주노총 노조 관계자를 만나 상품권 뭉치를 전달하기도 했을까. 물론 당사자는 이를 받지 않았지만 삼성이 전방위 포섭 전략을 펼쳤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조 씨는 탄원서 건으로 결국 면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조 씨가 탄원서를 쓴 배경, 즉 노조 내 왜곡된 교섭 구조와 소통구조 등에 대한 평가와 토론은 이어지지 않는다. 조 씨가 주축이 됐던 지난 블라인드 교섭의 평가는 ‘비공개 1대1 교섭은 첫째 현장 소통에 적절하지 못했고, 둘째 공개교섭·집단교섭·교섭회의록 등 기존 금속노조의 교섭관행을 완전히 파괴했다’에서 그쳤다. 그러한 교섭이 민주노조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선 나온 바가 없다.

▲ 박다솔 참세상 기자
▲ 박다솔 참세상 기자
삼성지회의 날개짓을 응원한다. 노조의 우산 아래 더 많은 조합원들이 모여, 삼성이라는 거대 공화국에 균열을 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난 세월 금속노동자가 세운 원칙, 민주노조 운동 정신이 그대로 발현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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